잼버리 사태의 근본원인…왜 전북도는 해창갯벌 고집했나 [이정현이 소리내다]

이정현 2023. 8. 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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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막이에 전북 갯벌 90% 소실
기후위기에 갯벌 역할 재조명
새만금 공항 건설 재검토해야
환경단체들은 새만금 잼버리 부지에 대해 갯벌을 농지 용도로 만든 탓에 생태계와 환경 파괴를 불러왔고, 잼버리 장소로도 부적합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매립 공사를 반대하며 장승을 세우기도 했다. 김주원 기자

지난 11일 태풍이 지나고 스카우트 대원들이 떠난 쓸쓸한 새만금 잼버리 부지를 내려 보면서 황지우 시인의 시 ‘뼈아픈 후회’가 떠올랐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온통 폐허다….’

23년째 새만금에 오가면서 잠시 쉬어가던 부안군 하서면 바람모퉁이 전망대. 이틀 전만 해도 새만금 세계 잼버리 부지 텐트촌을 보러 온 시민들과 취재 차량, 경찰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여그서 먼 텐트를 치고 잼버리 헌다고 그랬데야, 다 떠죽게 생겼고만”, “한 번 나와보지도 않았는가 보네, 다 진창인디” 두런두런 잼버리 이야기가 들린다. 동료는 이러다 준비 부족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새만금 잼버리가 ‘다크 투어리즘(역사 교훈 여행)’ 명소가 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방조제가 막히기 전만 해도 잼버리 텐트가 쳐진 곳은 기름진 하구 갯벌이었다. 칠산바다 물고기들이 산란하러 모여들고, 질 좋은 백합과 바지락이 지천이었다. 멀리 남반구 뉴질랜드에서 북반구 툰드라까지 약 3만Km를 오가는 도요물떼새 등 많은 국제적인 이동 철새의 휴게소였다. 법정 보호종만 40여 종에 이르는 생태계의 보고다.

육지 숲보다 탄소 흡수력이 50배 이상 빠른 블루 카본 갯벌로 이용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 귀한 전북 갯벌의 90% 사라졌다. 2006년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고 갯벌과 갯등은 육지로 변하고 있지만 잼버리를 유치하던 당시만 해도 일부는 갯벌이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단 2주 간의 행사를 위해 편법으로 기름진 갯벌을 매립하는 공사가 진행됐다.

태풍 '카눈'이 지나간 11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가 열렸던 전북 부안군 야영지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연합뉴스

개영식 직전 두 차례 야영 부지를 둘러본 후 불길함이 엄습했다. 아니나 다를까. 폭염과 더러운 화장실, 곰팡이 핀 음식 등 대혼돈의 잼버리가 됐다. 여야 정치권과 정부 부처, 전라북도 간 책임 공방이 치열하다. 혼돈의 야영장 사태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100% 준비 부족이다.

이번 사태를 키우고 해결을 어렵게 만든 근본 원인은 부지다. 바닷모래와 펄을 퍼 올려 갯벌 위에 논을 만든 잼버리 부지가 사상누각(沙上樓閣)이었다. 이곳은 작고 가는 펄 모래를 쌓아 올린 무른 땅이다. 최근에야 매립이 끝나 비가 내려도 굳어질 시간이 없었다. 적은 비에도 진창이 되고 웅덩이가 생겼다. 모기가 들끓고 해충이 창궐했다. 필요 이상으로 넓게 매립해서 물 빠짐도 오래 걸린다. 너른 논을 만든 거니 기울기가 거의 없어 자연 배수가 되지 않는다.

전북도와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몰랐을까. 2016년 새만금개발청과 2017년 전북도가 발주한 보고서는 모두 부지 조건에 따른 폭염과 폭우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강조했다. 2020년 공사가 본격화하자 환경단체는 2017년 준공한 계화도 앞 농생명 용지, 야영장으로 당장 이용할 수 있는 200만㎡ 넓이의 신시도~야미도 구간 관광레저 용지, 혹은 새만금 상부의 자연 상태 노출지에서 대회를 열라고 촉구했다. 마지막 남은 갯벌을 파괴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 달라고 여성가족부에 공문을, 세계스카우트연맹 총재에겐 호소문을 보냈다.

전북도는 왜 문제의 해창갯벌 일대를 잼버리 부지로 고집했을까. 유치 추진 당시, 새만금 담수호의 물은 썩고, 물고기는 떼죽음하고, 노출지에는 먼지만 날렸다. 전북도의 셈법은 첫째, 새만금 공공 매립을 확대하고 기반 시설 조기 건설을 통해 개발 속도를 높여보자는 것이었다. 2018년 11월 ‘세계잼버리지원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행사에 대한 지원이 가능해지면서 새만금 SOC 사업도 탄력이 붙었다. 전북도는 새만금 신공항 예비타당성 면제,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조기 착공, 동서 2축, 남북 2축 도로 개통, 새만금 신항만, 수변도시 공공 매립 추진 등 새만금 내 19개 사업 추진의 명분으로 삼았다. 중앙정부의 예산 투자도 대폭 늘었다.

둘째, 변산반도와 가까운 관광레저 용지의 공공 매립을 앞당기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하지만, 새만금 수변도시 공공주도 매립이 비슷한 시기에 결정되면서 잼버리 부지 매립은 농지관리기금을 쓰기로 했다. 환경단체는 농지기금을 편법으로 사용해 사업을 추진한 농어촌공사 사장과 새만금위원회 공동위원장을 고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지금이라면 과연 똑같은 처분을 내렸을지 의문이다.

셋째, 잼버리 부지 매립 면적도 당초 계획인 389㏊의 두 배 이상인 884㏊로 늘어났다. 예산도 그만큼 늘고 공사 기간도 길어졌다. 실제 첫 삽을 뜬 것은 2020년 봄, 잼버리를 불과 3년 반 남겨둔 시점이었다. 현장을 제대로 모르는 정치인들이 새만금 사업 매립 속도전을 위해 잼버리를 이용한 결과, 꼬인 매듭이 더 엉켰다. 더는 전북도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국책사업에 맞게 중앙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새만금 수라갯벌. [중앙포토]

우선 현재 하루 두 번 이뤄지는 ‘해수 유통 물관리’를 공식 선언하고, 배수갑문 증설과 조력발전소 건설로 물놀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질을 개선해야 한다. 바닷물이 더 많이 들고 나면 갯벌 생태계가 회복되고 수산업도 살아난다. 매립 면적을 줄여서 국가적으로 필요한 RE100(재생에너지 100%) 산업단지와 이차전지산업단지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 남은 수라갯벌을 훼손하고,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는 새만금 신공항은 예비타당성 조사 수준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갯벌이 탄소를 흡수하는 블루카본으로 주목받고 있다. 2021년 서울대 연구팀은 갯벌의 탄소흡수 역할과 기능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우리나라 갯벌이 약 1300만t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으며, 연간 승용차 11만 대가 내뿜는 수준인 26만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무리한 추가 개발을 접고 자연의 갯벌로 돌아가야 할 때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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