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화가’ 카라바조, 40년 뒤쫓은 자료 책으로 엮었죠

이후남 2023. 8. 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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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그림 ‘뱀에 물린 청년’. 로베르토 롱기 재단 소장품이다. [사진 한길사]

“카라바조의 작품은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에 6점 있어요. 다른 데는 많아야 두세 점이나 한 점 정도인데도 간판급 소장품으로 소개되곤 하죠.”

카라바조(1571~1610)가 이탈리아에서 얼마나 큰 사랑을 받는 화가인지를 고종희(62) 전 한양여대 교수는 이렇게 전했다. 새로 출간된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한길사·사진)는 그가 1980년대 초 이탈리아 피사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카라바조의 작품을 처음 접한 이래, 40년 동안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그 삶과 작품에 대해 쓴 책이다.

고종희

이탈리아 곳곳에 전시된 카라바조의 작품들을 직접 보고 쓴 책이기도 하다. 그는 “8m 그림도, 40㎝ 그림도 책에서 보면 한 페이지”라며 “직접 그림을 볼 기회를 운 좋게도 많이 누렸다”고 22일 간담회에서 말했다. 조각가인 남편 한진섭 작가가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설치되는 김대건 신부 조각상 작업을 위해 최근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는 본문 내용의 확인 등을 위해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카라바조는 바로크 양식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자 벨라스케스·루벤스·렘브란트 등에 영향을 미친 거장이다. 자연주의라고 불린 사실주의적 묘사로 유명하다. 성경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참수당하는 세례자 요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등의 작품은 사실적이고도 잔혹한 묘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고 교수는 카라바조가 어느 법정에서 했던 말을 전했다. “그림은 장식이 아닙니다. 진실입니다.”

그의 전체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다 카라바조’는 카라바조 출신이라는 뜻이다. 한데 그가 카라바조 마을이 아니라 밀라노에서 태어난 사실이, 투자회사에서 일하다 은퇴 이후 뒤늦게 미술사를 공부한 만학도이자 아마추어 미술사가에 의해 2007년 밝혀졌다고 한다.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

당시 이탈리아에선 큰 화제가 된 일인데, 고 교수도 지난해 카라바조의 고향을 직접 갔다가 뒤늦게 알게 됐다. 그는 “국내에서 미술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출간하는 카라바조 연구서에 주인공의 출생지를 잘못 쓰는 오류를 저지를 뻔했으니 식은땀이 났다”고 책에 썼다.

당대에 카라바조가 주목받은 이유를 그는 종교개혁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통해 설명한다. 가톨릭에서도 쇄신 운동 등을 펼치면서 장식을 절제하는 등 카라바조의 화풍과 맞아떨어졌다는 것. 한데 다시 교회의 분위기가 바뀌었고,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사후 60여년 뒤, 1672년 처음 나온 전기에 쓰인 ‘자연주의자’라는 말은 본래 부정적 의미였다고 한다.

다시 평가가 바뀐 건 1855년 파리 세계만국박람회 때, ‘리얼리즘’을 내건 쿠르베의 전시와 그 맥락을 설명하는 평론가들을 통해서였다. 현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포스터의 그림도 마침 카라바조의 작품이다.

카라바조는 죽음도 극적이었다. 밀라노에서 도제 생활을 거쳐 로마에서 유명 화가로 활동하다가 테니스 상대를 칼로 찔러 죽이고, 4년간 도피생활을 했는데 교황의 사면 소식을 듣고 로마로 돌아가는 길에 39세로 병사했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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