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양식과 모던 디자인의 조화, 호텔 크베스트 #호텔미감
매거진 화보 속 귀퉁이에 적힌 로케이션의 이름은 크베스트라는 디자인 호텔을 발견하게 된 단서였다. 업무 차 방문한 쾰른. 한 건축가와 인터뷰를 마치고, 지친 걸음으로 찾아간 호텔 앞에서 새로운 국면과 만났다. 고딕 양식의 클래식한 파사드, 옛 로마인의 흔적이 남은 작은 광장, 지어진 지 1000년이 넘은 성당이 만들어낸 그림자까지. 6월 초여름의 화사한 연둣빛이 나무에서 찰랑거리던 오후였다.
호텔로 들어가 고요가 감도는 프런트에서 체크인하는 사이, 리셉션에 놓인 두 개의 바르셀로나 체어를 흘깃 봤다. 계단 위로 조 콜롬보의 검정색 에다 체어가 놓여 있다. 여기서 호텔 크베스트의 아이덴티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1897년, 쾰른 시의 문서보관서로 지어진 건물의 화려한 석조 장식부터 객실마다 채워진 20세기 모던 디자인의 정수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미감까지. 34개의 룸이 각기 다른 디자인과 구조, 가구로 채워진 사실을 알고 더욱 상기됐다.
내가 선택한 방은 꼭대기 층의 디럭스 룸. 조지 넬슨의 코코넛 체어와 시즈 브락만의 데스크, 부홀렉의 실링 램프가 조화로운 공간이다. 거기에 나지막한 천고와 광장을 향해 있던 여러 개의 아치형 창문은 아늑함을 더해줬다. 숨을 고르며, 방 안의 모든 것을 살펴봤다. 컨셉트가 탁월한 호텔에서는 산뜻한 흥분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을 보내고, 조식이 준비된 1층 다이닝 바로 내려갔다. 훨씬 높아진 창 사이로 들이친 햇살이 다이닝 바의 위용이 느껴지는 대리석 기둥까지 닿았다. 임스의 푸른색 라 폰다 체어 수십 개가 새하얀 테이블 커버와 함께 꽤 지적인 톤을 만들어낸다. 서슴없이 창가 자리를 택한 나는 디카페인 티를 주문했다. 곧바로 뷔페식이 아닌, 3단 트레이에 빵과 치즈, 햄과 과일을 내온다. 한껏 여유로운 아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호텔 맞은편에 있는 성 게레온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오자, 이 모든 아름다움 속에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강렬했던 그 순간은 쾰른에 다시 와야 할 명분을 주었다. 이후 여러 해에 걸쳐 크베스트 호텔을 방문해 그간 궁금했던 다른 객실을 경험했다. 어떤 때는 복도 끝의 오두막 같은 싱글 룸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고, 어느 가을에는 커다란 페인팅이 걸린 스위트룸에 앉아 타치아 램프 밑에서 편지를 쓰기도 했다. ‘Hideaway’라는 부제처럼 크베스트 호텔은 한동안 내 은신처가 돼주었다. 내밀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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