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흑자 내던 우량 기업이었는데…‘5분기 연속 적자’ 위기의 롯데케미칼
롯데그룹 핵심 계열사 롯데케미칼이 절체절명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2분기 이후 5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내면서 갈수록 적자가 쌓여가는 모습이다. 롯데케미칼이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자칫 롯데그룹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2분기 영업손실 770억원
롯데케미칼은 올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5조24억원, 영업손실 770억원을 기록했다. 5분기 연속 적자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9% 줄었고, 영업손실 폭은 지난해 2분기(595억원)보다 커졌다. 당기순손실도 1403억원에 달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범용 화학 소재가 공급 과잉에 직면한 데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석유화학 수요 감소 영향이 컸다.
롯데케미칼은 한동안 조 단위 흑자를 내온 회사다. 2019년 1조1073억원 영업이익을 낸 데 이어 2020년 3569억원, 2021년 1조5356억원 등 꾸준히 수익을 올렸지만 지난해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정경희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석유화학 업황 회복이 기대에 못 미쳤고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나프타 가격 하락으로 롯데케미칼 손실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사업 부문별로 보면 핵심 부문인 기초소재 사업 실적 악화가 뼈아팠다. 기초소재 사업 매출은 2조7557억원, 영업손실 82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적자폭이 363억원 늘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석유화학 수요 부진과 국제유가, 원료 가격 하락에 따른 ‘역래깅(원재료 투입 시차)’ 효과가 반영돼 수익성이 급감했다. 지난 5월 초부터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주요 원료인 나프타 투입 가격이 1분기 688달러에서 2분기 600달러로 떨어진 탓에 대규모 손실을 봤다.
해외 자회사도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법인인 롯데케미칼타이탄은 2분기 매출 5437억원, 영업손실 1116억원을 기록해 손실 규모가 1000억원을 넘어섰다. 동남아시아 지역 증설 물량에 따른 공급 부담, 수요 부진이 지속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향후 전망도 불안하다. 최영광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리오프닝 이후에도 수요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석유화학 업체들이 점차 가동률을 축소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공급 부담은 여전하고 중국 자급률의 가파른 상승세로 석유화학 업황 회복이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롯데케미칼이 부진한 실적을 보이면서 주가도 급락했다. 실적 발표 이후 롯데케미칼 주가는 8월 9일 하루에만 6.58% 하락하며 14만3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후에도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14만원 아래에서 횡보하는 중이다. 롯데케미칼 시가총액은 연초 대비 20% 넘게 빠지면서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도 50위권에서 60위권으로 밀려났다.
증권가도 일제히 목표주가를 낮췄다. 골드만삭스는 롯데케미칼 매도 의견을 유지하면서 목표주가를 기존 11만5000원에서 10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현 주가보다 30%가량 낮은 수준이다. 키움증권은 롯데케미칼 목표주가를 16만4000원에서 13만9000원으로 낮추면서 사실상 매도 의견을 내 눈길을 끌었다. NH투자증권도 목표주가를 20만원에서 16만5000원으로 하향 조정하고 투자의견도 매수에서 보유로 낮췄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그룹 전체 시가총액의 30%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인 만큼, 그룹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다.
롯데케미칼뿐 아니라 또 다른 핵심 계열사 롯데쇼핑 실적 역시 부진하다는 점도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2분기 연결 기준 롯데쇼핑 영업이익은 51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 감소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이 경영난을 겪는 상황에서 롯데케미칼마저 부진을 겪어 롯데그룹 입장에서도 고민이 클 것”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 한목소리다.
동박 생산 늘리지만 투자 부담 변수
위기에 내몰린 롯데케미칼은 수익성 낮은 사업을 정리하는 한편 신사업으로 반등 기회를 찾겠다는 포부다.
롯데케미칼은 올 초 파키스탄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설비를 정리하는 한편, 최근에는 중국 화학 기업과의 합작공장인 롯데삼강케미칼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롯데삼강케미칼 생산 제품인 에틸렌옥시드(EO)는 계면활성제, 부동액, 합성섬유인 폴리에스터의 원료다. 롯데삼강케미칼은 2021년 138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손실은 375억원으로 불어났다.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증설로 미래가 불투명한 범용제품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한편에서는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한편에서는 신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2차전지 분리막용 폴리머, 태양광 소재 등 고부가 제품 비중을 늘리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수소, 배터리, 재활용 등에 총 11조원을 투자해 친환경 신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2030년 총매출 50조원 시대를 연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3월 롯데케미칼이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전북 익산(2만t), 말레이시아(4만t)에서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동박(구리막)을 생산한다. 향후 스페인 카탈루냐주 몬로이치에도 5600억원을 투자해 하이엔드 동박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2025년 완공 이후 연간 3만t 동박 생산이 목표다. 이를 포함하면 회사 전체의 동박 생산량은 2028년 24만t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커지면서 동박 시장 전망도 밝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3조5000억원 수준에 그쳤던 세계 동박 시장 규모는 2025년 10조원 이상으로 커질 전망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동박 분야의 ‘강력한 맞수’ SK넥실리스와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는 점이다.
SKC 자회사 SK넥실리스는 국내 동박 분야 선두 주자로 연간 5만2000t 생산능력을 갖췄다. 2025년 25만t까지 키울 계획이다. SK넥실리스는 오는 9월 상업 가동을 시작하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공장에서 연간 5만7000t의 동박을 생산할 계획이라 롯데와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2차전지 소재 사업을 키우려면 대규모 투자가 절실하지만 롯데케미칼 자금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악재다. 롯데케미칼 순차입금은 2021년 말 연결 기준 3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3조1000억원, 올 3월 3조9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에 2조원 넘는 자금을 쏟아부은 데다 인도네시아 NCC(나프타 분해시설) 신설 등 설비 투자 부담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신용평가사 한국기업평가는 “롯데케미칼의 영업현금 창출력이 약화된 데다 인수자금 부담으로 재무안정성이 악화되고 있다. 멀리 보면 해외 신증설, 2차전지 소재 등 연간 3조원 이상의 투자 부담이 이어질 전망이라 단기간 내 재무안정성 회복은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실적이 부진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2분기 매출 1982억원, 영업이익이 15억원에 그쳐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동박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동박 업체들의 증설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져 과거 수준의 마진율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절치부심한 롯데케미칼이 보란 듯이 실적 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지 재계 이목이 쏠린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3호 (2023.08.23~2023.08.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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