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지 못한 김용균… 여전히 우리 삶에 있다

손영옥 2023. 8. 2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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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노동자 그리는 원로 민중미술가 노원희 개인전
원로 노원희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길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79년 민중미술의 진원지 현실과발언 창립 멤버로 출발한 노 작가는 2020년대인 현재까지도 산업재해를 소재로한 작품을 제작하는 등 현실에 대해 발언한다. 작품은 2022년 신작인 ‘씩씩한 청년’. 아르코미술관 제공


한 청년이 등을 보인 채 걸어간다. 발걸음이 당당해보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검은 회오리에 둘러싸여 그의 신체 상반신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걸어갈수록 보이지 않는 힘에 삼켜지듯이 말이다. 그는 산재 사망 노동자의 대명사 김용균이다. ‘화력발전소’(2022)라는 제목이 붙은 이 아크릴 작품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도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노동자 김용균에 대한 헌화다. 도저히 색을 넣을 수 없어 검은색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민중미술의 뿌리를 가진 원로 여성화가 노원희(75·사진)의 다짐, 그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원희 개인전 ‘노원희: 거기 계셨군요’가 서울 종로구 동숭동길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최근 개막한 이 전시장에서 단연 눈에 들어온 것은 고공농성의 주역인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씨,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의 주인공 등 산업재해를 주제로 그린 작품들이다. 추상미술인 단색화가 미술시장에서 고공행진을 하고, 구상 미술이라도 불편하지 않는 주제의 그림들만 쏟아지는 미술계에서 70대 중반 여성 작가가 이렇게 안전 불감증의 한국, 거대 자본의 심장을 건드리는 결기가 놀랍다.

2022년 신작인 '화력발전소'. 아르코미술관 제공


걸걸한 여장부 스타일을 기대하고 나간 인터뷰 장소에서 예상 밖으로 부드러운 인상을 풍기는 얼굴을 만났다. 부산 동의대에서 1982∼2013년 미술학과 교수를 지낸 경력이 얼굴에 겹쳐진다.

노원희는 미술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며 1979년 출범한 민중미술의 진원지 현실과발언 동인이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스승들에게서 배운 대로 처음 추상화를 그렸지만, 당시 참여문학론을 주창하며 창간된 창작과비평사의 계간지를 탐독하고, 거기서 나온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읽으며 현실 참여적인 미술을 그리게 됐다.

현실과발언 창립전은 정부 검열로 무산되고 1년 뒤 동산방화랑에서 선보였다. 당시 그의 작품은 군사독재정부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번 개인전은 민중미술 첫 전시가 무산된 그 장소 아르코미술관(당시 문예진흥원미술관)에서 열려 흥미롭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그 작품 ‘거리에서’(1980)도 나왔다. 실업자들이 야바위를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제5공화국 정권은 이를 시위 모의하는 불온한 그림으로 봤던 것이다.

1980년 현실과발언 창립전에 선보인 '거리에서'. 아르코미술관 제공


그로부터 40년 넘게 흘렀다. 한국사회에서 절차적인 민주화는 달성됐다. 민중미술 기치를 드높였던 미술가들은 이후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을까. 그런 궁금증을 질문했더니 작가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군부 통치는 해소됐다. 치열한 전장이 사라진 것은 맞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헤맸던 것은 사실이다. 저는 가족의 죽음을 잇달아 겪으면서 개인적인 주제를 탐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주제가 가족이 사는 집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다.

정치구조가 바뀌어도 사회·경제적 모순은 그대로 남는다.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는 시대, 노원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산업재해 문제로 옮겨졌다. 2007년 삼성반도체 공장 근로자 황유미씨 산재 사망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후 2009년 용산 철거민 과잉 진압 사망 사건,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사태 등 자본의 폭거와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건과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김용균 사건을 목도하면서 산재를 본격적으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고 지난 2년은 이에 매달렸다. “화력발전소에 취직됐다고 아직 앳된 청년이 새 양복 입고 부모 앞에서 부끄러운 듯 웃는 모습의 영상을 차마 잊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는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등 산재 현장을 찾아 소재를 채집했다. ‘씩씩한 청년’도 그렇게 해서 나왔다. “한 청년이 막 씩씩하게 걸어왔어요. 그런데 가까이 온 그는 한쪽 팔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양팔이 다 없는 아주머니 등 우리 사회가 숨겨놓은 산업재해의 민낯을 만났다. 생존과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는 청년과 노동자, 투쟁하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신작들이 다양하게 나왔다.

지금 작가는 1980년대처럼 여전히 현실사회의 모순을 다루지만 과거보다는 상징적으로, 초현실적으로, 함축적으로 그린다. 작품 속에는 머리는 없지만 몸은 한껏 부푼 권력자들이 나와 보이지 않게 우리를 조종하는 권력과 자본의 실체를 비판한다. 억장이 무너져 말이 안 나오는 심정은 빈 네모를 관람객의 울분으로 그 공간을 채우게 한다.

“빈 네모에는 원래 말을 써놓으려고 했던 것인데 써놓고 보니 울림이 적었다. 그래서 지웠다. 삼켜진 문장처럼….” 지운 상태에서 다시 보니 침묵과 저항 등 온갖 의미로 되살아났다. 애도의 현장에 붙여진 포스트잇에서 착안해 천에 쓴 글을 포스트잇처럼 작품이 붙이는 작법도 쓴다.

여전히 현실사회를 작품 속에 반영하는 작가, 민중미술 작가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민중미술 작가로 불리는 걸 명예롭게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교수를 하는 등 중산층의 삶을 살아온 내가 그런 명예로운 이름을 공유할 만큼 살고 있나 고민한다. 진짜 민중미술작가로 살수 있으면 더 바랄게 없다”고. 11월 19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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