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라임라이트]"웬즈데이 솔직담백함, 청소년들에게 필요해"
콘진원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참석차 방한
'아담스 패밀리' 장녀 10대 삶 초점, 이야기 새로 써
슈퍼맨 유년기 '스몰빌'처럼 캐릭터 인간적 측면 부각
"지극히 미국적 색채, 세계인과 통하는 보편적 매력"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는 시작부터 강렬하다. 웬즈데이(제나 오르테가)가 같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동생 퍽슬리(아이작 오르도네즈)를 발견하고 보복한다. "이름 대!" "누구였는지 몰라. 진짜야. 순식간에 벌어졌어." "퍽슬리, 감정은 곧 약점이야. 뚝 그쳐, 당장!" 그는 냉담한 얼굴로 가해자들을 찾아간다. 실내수영장에서 수구를 즐기는 남학생 무리다. 주저 없이 물속에 피라냐 떼를 풀어버린다. 투명한 물빛이 핏빛으로 물들자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내 동생은 나만 괴롭힐 수 있어."
냉담한 캐릭터의 뿌리는 미국 만화가 찰스 애덤스가 1930년대에 선보인 '아담스 패밀리'다. 전형적인 미국 가족상을 공포와 어둠이 저변에 깔린 고딕 문화로 비틀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진실하다. 하지만 음산하고 괴기한 분위기 때문에 오해를 사거나 각종 사건에 휘말린다. 부조화는 삶의 비정형성과 그로 인해 생기는 불안, 위협 등을 웅변한다. 약 90년이 지난 현재도 유효해 드라마(1964·1998), 영화(1991·1993·1998), 애니메이션(1973·1992·2019) 등으로 제작됐다.
'웬즈데이'가 접근한 방식은 조금 다르다. 장녀인 웬즈데이의 10대 삶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새로 만들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 표독스러운 눈 등 기존 작품 속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 부조리한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담았다. 예컨대 봉쇄된 눈물은 후천적 의지로 설정했다. 여섯 살 때 기르던 반려 전갈 네로가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무참히 죽으면서 다짐한 결의다. "네로의 잔해를 묻는데 눈이 왔어. 내 검은 심장이 터져라 울었지. 근데 울어도 소용없더라고. 그래서 다신 울지 않기로 했어."
모난 성격은 여느 작품처럼 포용과 화합으로 귀결하지 않는다. 웬즈데이는 타인의 규정을 거부하며 사회에 내재한 혐오, 차별, 위협 등에 맞선다. 비관적 시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사회와의 간격을 좁혀간다.
개인의 주체성과 자유 확립을 10대의 성장 동력으로 제시한 장본인은 앨프리드 고프와 마일스 밀러. 이미 '스몰빌'로 지적재산(IP) 확장 능력을 인정받은 쇼러너(대본 집필, 예산 배정, 인력 채용 등 드라마 제작 전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자) 콤비다. '스몰빌'은 슈퍼맨 클라크 켄트의 유년기를 재조명한 SF 시리즈.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열 시즌이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동력은 익숙한 배역과 새로운 시대의 균형 있는 조응. 과거의 유산에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주입해 공감을 끌어냈다.
'웬즈데이'도 다르지 않다. 웬즈데이만의 자유분방한 사유와 언행에 진취적이고도 개혁적인 요소를 버무려 6주(2022년 11월 21일~2023년 1월 1일) 연속 넷플릭스 TV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지난 16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2023'에서 두 쇼러너를 단독으로 만났다. 이들은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드라마는 오락거리다. 무엇보다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앨프리드 고프, 마일스 밀러와의 일문일답
-'웬즈데이'의 뼈대는 약 90년 전 만화와 관련 작품(드라마·영화·뮤지컬)이다. 어떤 점에 매료돼 스핀오프(오리지널 작품으로부터 새롭게 파생된 작품)를 창작하게 됐나.
고프 "아담스 가족은 서로 부족함과 불안정성을 끊임없이 보완하는 집단이다. 핵심인 사랑은 맹목적이고 절대적이다. '우리 가족도 저런 관계를 형성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그럴 것 같았다.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마음이니까. 그걸 조명하고 싶었다."
밀러 "통상 가족에는 보이지 않는 불신과 불만이 내재해 있다. 아담스 가족은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원만한 유대관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웬즈데이도 마찬가지다. 태생적으로 밉상이지만 속내는 누구보다 여리고 따뜻하다."
-영국 민요 '마더 구스'의 가사(수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슬픔이 많다)에서 따온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캐릭터다. '아담스 패밀리'에서 아홉 살인데 열여섯 살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밀러 "청소년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그래서 기존 작품의 귀여움을 철저히 배제했다. 게정대고 제멋대로 굴어도 밉지 않은 매력은 더 부각했고. '아담스 패밀리' 시청자들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기획 단계에서 위험 부담이 있어 약화하자는 지적이 있었지만 강하게 밀어붙였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진정성을 보여준다면 해결되리라 믿었다."
-IP 확장을 시도하는 창작자 대부분은 원작 팬과 새로운 시청 층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 어려워한다.
고프 "우리는 어떤 작품을 만들겠다는 명확한 계획이 있었다. 특히 캐릭터의 발전 방향이 분명했다. 이야기만 적절한 조율을 거쳐 새로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어떻게 펼칠지에 대한 고민이 바로 접점을 찾는 길이 아니었나 싶다. 팀 버튼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교류하며 손발을 맞춰줬다. 전체적인 윤곽을 먼저 잡고 퍼즐을 맞춰가는 형태였다."
밀러 "행운도 따랐다. 요즘 미국 청소년들은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길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제약 등을 두려워한다. 웬즈데이는 정반대다. 비관적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것이 더 큰 공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스몰빌'도 의도치 않게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 측면이 있다. 9·11 테러가 발생하고 한 달여 뒤 처음 전파를 탔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미국 사회에서 원하는 영웅이 나타난 듯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특수한 캐릭터의 이야기를 보편적 정서로 풀어낸 점도 주효한 듯하다.
고프 "'스몰빌' 때부터 캐릭터의 인간적 측면을 부각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출발은 '슈퍼맨은 10대를 어떻게 보냈을까'라는 물음이었다. 다양한 일을 겪으며 자기 능력을 인정하고 이를 선하게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전개하고자 했다. '웬즈데이'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다. 웬즈데이는 매사 까탈스럽게 구는 청소년이지만 속내는 판이하다. 여느 또래처럼 부모·친구·선생님 등과 잘 지내고 싶어 한다. 체감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걸 구체화하고 싶었다."
밀러 "기존 작품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만큼 신경 쓸 부분은 많았다. 8부 분량의 대본이지만 예상보다 집필에 많은 시간(약 2년)이 걸렸다."
-아무래도 현실성을 가미하는 작업이 어려웠을 듯하다.
밀러 "그렇다. 찰스 애덤스가 살아있다면 어떤 이야기에 끌렸을지 생각하면서 썼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을 듯했다. 그가 원했던 세상을 오늘날 사람들도 바랄 테니까. 그래서 긴장을 고조하고 흥미를 부여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즐기는 드라마로 만들고자 했다."
-그 색채가 지극히 미국적인데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고프 "세계적으로 성공한 한국 영화·드라마도 지극히 한국적이지 않나. 그것이 곧 보편적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웬즈데이'가 이 정도로 인기를 얻을 줄 몰랐다. 원인을 분석해보니 캐릭터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 같더라. 웬즈데이만의 솔직한 매력이 보편적 이야기가 가진 감동이나 쾌락을 배가했다고 생각한다. 그 저변에 깔린 정서의 공감은 국적과 관련이 없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에 내재한 소득 불평등 등의 문제를 미국인들이 자기 일처럼 느끼듯이."
-폭넓은 공감에 실제 청소년이나 비관론자가 말할 법한 대사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고프 "웬즈데이가 어떤 표정과 말투로 대사를 전달할지 생각하며 대본을 썼다. 웃음을 유발하지만 절대로 우스꽝스럽게 보이면 안 되겠더라.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하는 사건에 혼자 '맞다'라고 주장하며 뛰어드는 청소년이다. 형사나 다름없어 반대되는 논리를 설파하는 말들에 힘을 실어줘야 했다. 그만큼 대사도 사실적으로 써야 했고. 비슷한 또래인 딸의 말을 많이 빌렸다. 예컨대 '원래 생일이 싫었던 건 아니야. 죽음의 싸늘한 포옹에 1년 더 가까워졌단 뜻이니까 싫어할 이유가 없잖아?'라는 대사는 딸이 실제로 했던 말이다."
밀러 "내게도 딸이 있다. 고프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웬즈데이'를 구체화했다. 이전까진 웬즈데이를 10대로 설정하지 않았다.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내 딸처럼 알면 알수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어졌다. 주연한 제나 오르테가가 대사를 맛깔나게 연기해줬다. 오디션 때부터 좋은 예감이 있었다. 약 4개월여 진행하며 200명 이상의 배우를 만났는데 단연 눈에 띄었다."
-팀 버튼 감독의 색깔도 이야기와 잘 맞아떨어진 듯하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물론 의상, 소품 등에서 '가위손',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등이 연상됐다. 애초 연출자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써 내려갔나.
밀러 "그렇지 않다. 대본을 완성하고 누가 연출을 맡으면 좋을지를 고민하다 버튼 감독을 떠올렸다. 본인의 고교 생활과 내용이 비슷하다고 얘기하더라. 운명 같았다."
고프 "피칭(투자 유치)을 앞두고 버튼 감독이 '웬즈데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사진과 영상 자료를 만들어줬다. 거기 담긴 '가위손', '비틀쥬스' 등의 느낌이 완성본에 그대로 담겼다고 보면 된다. 함께 작업하며 냉소적 유머 감각을 되찾은 것 같아서 뿌듯했다. '비틀쥬스 2'도 훌륭한 작품으로 완성될 것이다."
-피칭에서 넷플릭스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였다고 들었다. 시들했던 세간의 예상을 깬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밀러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서 힘들어도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굳은 신념이 있었고, 성과를 낼 자신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하지만 대본에 확신이 있다면 절대 흔들려선 안 된다."
-굳은 신념의 근원이 알고 싶다.
고프 "웬즈데이만의 독특한 성장이다. 성장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소심하게 지내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문제를 해결한다. 웬즈데이는 다르다. 처음부터 세상을 흑백으로 바라본다.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그 안에 회색이 있다는 걸 배우게 된다."
밀러 "오락거리에 초점을 둔 구성도 자신이 있었다. 시청자는 드라마에서 교훈이나 지혜보다 즐거움을 원한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고르게 느껴야 만족감을 표현한다. 대본을 다시 읽으며 지루할 틈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최고의 만찬 같았다. 모든 시청자와 함께 나눠 먹을 시간이 찾아왔다고 믿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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