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새출발, 4대 그룹도 돌아왔다…류진 "무거운 책임감"
재계 단체의 ‘맏형’ 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55년 만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간판을 바꿔 달고, 새 회장을 선임하며 쇄신의 첫발을 내디뎠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로 탈퇴했던 4대 그룹도 복귀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흡수해 싱크탱크로서 기능을 강화하고, 윤리경영위원회를 도입한다. 이를 실행할 시스템을 갖추고, 정책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당면 과제다.
전경련은 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기관명을 한경협으로 바꾸고, 새 회장에 류진 풍산 회장을 선임했다. 또 정관을 개정해 목적 사업에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사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지속가능성장 사업을 추가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동반성장과 ESG 등을 명시함으로써 새롭게 출범할 한경협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55년 역사 뒤로하고 초심으로”
류 회장은 취임사에서 “55년 전경련 역사를 뒤로하고, 한경협 시대로 나아간다. 1961년 창설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끄러운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과감하게 변화하지 못한다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무겁게 입을 뗐다.
류 회장은 새로운 전경련에 대해 ▶한국 경제가 글로벌 도약의 길을 열고 ▶국민과 소통하며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며 ▶신뢰받는 중추 경제단체로 거듭날 것을 약속했다. 또 “윤리위원회 신설로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신산업과 신기업으로 외연을 확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요 7개국(G7) 대열 참여를 목표로 글로벌 무대에서 퍼스트 무버(선구자)가 되는 것이 기업보국의 소명을 다 하는 길”이라며“이 길을 개척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취임사를 마무리했다.
내부통제 시스템으로 윤리위 신설
신설하는 윤리위원회는 회원사에 대한 물질적·비물질적 부담을 심의한다. 류 회장은 “위원장을 뽑았지만 추후 공개할 예정이며 위원은 5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은 이날 ‘외부의 압력이나 부당한 영향을 단호히 배격하고 엄정하게 대처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윤리헌장도 발표했다.
삼성을 포함한 4대 그룹은 조심스런 입장이었다. 2016~2017년 전경련에서 탈퇴했지만 한경연 회원으로 남아있던 삼성(삼성전자·SDI·생명·화재), SK(SK㈜·이노베이션·텔레콤·네트웍스), 현대차(현대차·기아·현대건설·모비스·제철), LG(㈜LG·LG전자) 등 15개사는 이날 한경협 회원사로 합류했다. 다만 “실질적 활동은 결정된 것이 없다”며 일정 부분 선을 긋는 모습이었다.
이날 삼성 측은 “삼성전자 등 4개사는 전경련의 지속적 요청을 받고, 수차례에 걸친 준법감시위원회 회의와 이사회의 신중한 논의를 거쳐 최고경영자(CEO)가 한경협으로의 흡수 통합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준감위는 “부도덕하거나 불법적 정경 유착 행위나 회비·기부금의 부정한 사용 등이 있으면 즉시 한경협을 탈퇴하라”로 권고한 바 있다. 회비 납부 시 준감위 사전 승인 등도 명시했다.
4대 그룹, 회비 등 실질 활동에는 신중
단 삼성증권은 준감위의 반대 의견 등으로 미복귀를 결정했다. 준감위는 협약사가 아닌 삼성증권이 합경협에 통합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뜻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LG와 LG전자는 각각 ESG위원회에서 재가입을 논의해 합류를 결정했지만 내년 2월 정기총회까지 한경협이 글로벌 싱크탱크로의 전환이라는 혁신안을 제대로 실행하는지 살펴보고, 필요한 부분은 제안·요청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붙였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별다른 반대 뜻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한경협 합류와 관련해 이달 말 각 계열사 이사회 산하 지속가능경영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삼성증권을 제외한 4대 그룹 계열사가 법적으로 한경협 회원사가 됐지만 회비 납부, 회장단 참여 등 실질적 활동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류 회장은 재정 운용에 대해 “다시 봐야 할 것 같다”며 “과거에는 (회비 납부를) 큰 기업 위주로 했다면 이제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회원 모두를 위한 조직이 되는 것이 바람”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어 “그동안 (회장단이) 제조업 위주였는데 정보기술(IT)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뜨고 있는 지금 회장단을 다양하고 젊게 해 젊은이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경협으로의 명칭 변경과 4대 그룹 재가입은 이르면 다음 달 초 산업통상자원부의 정관 개정 승인 후에 이뤄질 예정이다. 전경련은 이 시기에 맞춰 상근부회장과 윤리위원장 등도 공개할 예정이다. 상근부회장으로는 김창범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가 거론된다.
“국내외 소통 힘써주길 바라”
지난 2월부터 전경련 쇄신 작업에 참여한 김병준 전 회장직무대행은 이날로 임기를 마쳤다. 류 회장은 앞으로 김 전 직무대행의 역할에 대해 “고문으로 모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자문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직무대행이 정치인 출신이라는 지적에는 “6개월 동안 전경련을 이끌어 예외 사례이며 제 임기 동안 정치인을 고문으로 영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총회에는 류 회장을 비롯해 김병준 전 직무대행과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구자은 LS 회장, 이희범 부영주택 회장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총회에 참석한 한 회원사 대표는 “지난 정부에서 전경련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없었다”며 “글로벌 무대에서 탁월한 소통 능력을 보이는 류 회장이 국제 관계에서는 물론 경영 애로나 규제 개선 같은 기업의 건의 사항이 잘 알려질 수 있게 국내에서도 소통에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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