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도 군인도 아닌 '사람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연녹 2023. 8. 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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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목소리] 하은성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사무처장 인터뷰

[연녹]

2016년 서초1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을 하다가, 민원인의 반복된 폭언 등으로 인해 자살로 내몰렸던 최준씨의 비극이 있었다. 최준씨를 비롯해 매년 10명가량의 사회복무요원이 복무 중 자살했다.

사회복무요원이 처한 부당한 조건이 점차 드러났고, 2022년에는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은 2023년 5월 '사회복무요원 350명 복무 환경 실태조사'를 발표하며 사회복무요원이 겪는 만연한 괴롭힘 등의 실태를 세상에 끄집어냈다. 6월엔 '모든 사회복무요원의 안전 복무를 위한 병역법 개정안'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회복무요원들은 지금 어떤 요구를 내걸고 싸우고 있는지, 지난 7월 5일 하은성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사무처장을 만나 들어봤다. 하은성 사무처장은 현재 사회복무요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2022년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은성이라고 합니다.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에서 사무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릎이 자꾸 빠졌는데, 이전까지는 계속 현역 판정을 받았어요. 무릎이 자꾸 빠져도 제 불찰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자주 빠지니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검사 후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 후 4급 판정을 받았고 사회복무요원 근무를 하게 됐어요.

현재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고 있는 사람은 6만 명 정도 됩니다. 요양원이나 사회복지시설 등의 사회복지영역, 사무보조나 민원 등의 행정영역, 환경안전이나 교육문화 등 다양한 부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행정영역으로 분류되는 구청 소속 사회복무요원이 구 관할 어린이집이나 요양센터로 파견을 가서 실제로는 사회복지영역과 동일한 일을 하기도 해요."

-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의 노동 조건은 어떻게 되나요?

"사회복무요원은 기본적으로 지역 배정인데, 근무지 특성에 따라 편차가 심한 편이에요. 어떤 곳은 8시간 내내 거의 못 쉬고 일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곳도 있어요.

사회복무요원은 현행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점심시간에 아이들을 돌보며 같이 밥을 먹는 등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휴게시간만큼도 못 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양원이나 아동센터, 시설 같은 곳을 가장꺼리는 편인데, 처우도 낮고,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을 인원을 뽑지 않은 채 사회복무요원에게 넘기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의 스케줄표를 보면 굉장히 빡빡해요. 연차를 쓴다 했을 때 직원 스케줄에 맞추라고 한다거나, 병가 요청을 거절한 경우도 많아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전문성 없이 혼자 노인 돌봄 등에 투입되다 보니, 충분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렴한 인건비로 노동력을 쓸 수 있는 대체재라고 보는 거죠.

도서관 등 공공기관 같은 경우는 그렇지는 않아요. 사람을 못 구해서 없다기보다는 제도적으로 국가에서 이렇게 쓰라고 권하기도 하고, 인건비가 저렴하기도 하니까 사용하기도 해요. 저는 도서관에서 주로 카운터 업무를 했었는데요. 노동 강도 자체는 높지 않았는데,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이유로 '여유 있을 때도 다른 거는 하지 말라'는 등 노동 통제를 받기도 했어요. 괴롭힘도 있었고요. 다른 직원이 책이 청구기호대로 꽂혀 있지 않은 걸 무조건 저의 잘못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병가가 총 30회밖에 없어요. 더 쉬려고 하면 무급이에요. 저도 병으로 잠시 쉬는 동안 무급으로 연장했어요. 그래서 아파서 쉬고 싶어도 못 쉬는 경우가 많아요. 그 기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에, 밥값 등 생활비를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복무요원들도 많아요. 소위 '정상 가족'에 속해 있거나, '집에서 밥 먹으면 돈이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예를 들어 탈가정하신 분 같은 경우, 마땅한 주거지가 없어 찜질방에서 지내기도 해요. 청년주택전세자금대출을 받으려 해도 은행에서 사회복무요원의 소득이 비과세 소득으로 분류된다는 이유로 사회복무요원에게 대출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 고 최준씨의 비극 이후, 사회복무요원들의 업무에 변화가 생겼나요?

"사회복무요원들에게 민원인들이 더 심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어요. 최준씨 같은 경우도 서초1동 주민센터 자체가 법원 근처에 위치해서 그런지 특히 고압적인 민원인들이 많았다고 해요. 조금만 늦어져도 '왜 안 되냐, 왜 이렇게 느리냐' 등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개인 정보 보호 등 때문에 주민센터 민원 업무는 사회복무요원이 해야 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기피 업무라는 이유로 위법의 경계를 넘으며 사회복무요원에게 떠넘긴 거죠. 최준씨 자살 이후 서초구청에서는 사회복무요원들이 민원 상대 업무에서 빠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모든 행정 분야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곳들이 꽤 있을 거고 그거를 다 알 수는 없어요. 민원이 아닌 팩스 보조 등으로 이름만 바꾸고 같은 업무를 하게 한 경우도 있고요."

- 사회복무요원이 군인이지 무슨 노동자냐, 현역보다는 낫지 않냐 등의 얘기를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우리가 '그래도 간접 고용 노동자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보다는 처우가 나으니 만족하고 다녀라'고 얘기하지 않잖아요. 누군가의 권리가 열악하다는 것이 권리를 제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역 군인의 처우 문제도 정말 중요하죠. 우리는 현역이랑 싸우자 혹은 우리가 현역보다 높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권리는 다 연결돼 있기에 같이 올라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6만 명이면 정말 많은 숫자인데 잘 드러나지 않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어디 가서 사회복무요원이라고 얘기 안 하고 다니잖아요. '혜택받았다, 약한 애들이다'라는 시선이, 사회복무요원이 처한 현실을 잘 드러내지 못하게 했다고 봐요. 당당하게, 우리가 이런 문제가 있고, 해결해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토대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쉬쉬하고 금기시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사회복무요원은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맞다고 봐요. 사회복무요원으로 바뀌기 전 이름은 공익근무요원이었는데, 국가적으로 사회복지나 서비스 분야의 노동력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을 투입해서 모자라는 노동시장의 불균형을 맞춰보겠다는 제도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 자체로는 노동자가 맞잖아요. 그 자리에 현역을 '못' 가는 사람들을 배치하는 거고요. 국가가 일종의 인력 공급업체, 파견업체 역할을 하는 건데 그거에 대해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게 오히려 의문이죠."

-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에서 진행한 실태조사가 이슈가 됐는데, 이를 비롯한 조합 활동을 설명해 주십시오.

"저희는 지난 4월 30일, 제1회 '사회복무요원 노동자의 날'을 선언했어요. 이후 노동절인 5월 1일부터 사회복무요원의 노동 및 복무 환경에 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350명의 결과를 정리했는데, 약 44%가 복무 중 폭행, 폭언을 겪었고, 93.7%가 1인 최저생계비 기준보다 낮은 소득으로 생활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이러한 문제를 현장 증언과 함께, 5월 31일 실태조사 발표회와 6월 7일 국회토론회 등을 통해 알렸습니다. 6월 22일에는 최준씨의 7주기를 맞아 기자회견과 행진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저희는 모든 사회복무요원이 안전하게 복무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핵심 내용은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직장 내 괴 롭힘 금지를 명시할 것, 괴롭힘 등으로 도저히 근무를 이어갈 수 없는 사람에게 복무 기관 긴급 재지정권을 부여할 것, 4급 판정 사유와 관련한 업무지시에 대한 거부권을 명시할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국비 지원이 줄어들고 있어요. 복무 기관이 전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돼서 이들도 사회복무요원을 잘 안 받으려고 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저출생과 징병제라는 명목으로 유지, 관리되는 지금의 군대 구조를 유지하는 게 과연 최선인지, 과연 이 사회복무라는 제도 자체가 지속 가능한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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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연녹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8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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