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동이 ‘왕의 DNA’를 가졌다고? 부모 두 번 죽이는 ‘사이비 치료법’

오상훈 기자 2023. 8. 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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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민간연구소는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자폐는 완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사진=유튜브 캡처
자폐 등 발달장애 아동에 대한 근거 없는 ‘사이비 치료’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 사무관이 초등학생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부당한 요구를 담은 편지를 보내 갑질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해당 편지에는 ‘왕의 DNA’와 ‘극우뇌’라는 생소한 표현이 담겨 있었는데 출처는 자폐를 완치할 수 있다고 주장한 민간연구소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논란이 된 민간연구소는 극히 일부일 뿐이며 부모들에게 자폐 등 발달장애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자폐 치료하려면 혈액 통째로 교체해야 한다는 곳도…
왕의 DNA라는 표현은 극우뇌 아동을 왕자나 공주처럼 어르고 달래야 한다는 맥락에서 사용됐다. 극우뇌는 논란이 된 민간연구소의 두뇌 구분법에 등장한다. 자체 기준에 의해 ‘대인관계가 나쁘고 분노조절이 어렵지만 천재과’로 분류된 발달장애 아동들이다. 강우뇌, 강좌뇌, 약우뇌 등도 있다. 연구소는 각각 유형의 특징에 맞는 ‘무약물 상담치료’를 진행하면 틱과 ADHD, 자폐를 완치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해당 기관의 분류법이나 치료법엔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특히 무약물 치료 주장이 극단적이라 평가한다.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현주 교수는 “ADHD는 소아 정신질환 중에서 약물치료의 효과가 가장 큰데 약 80%는 분명한 증상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폐도 마찬가지이므로 약물을 무조건 거부하면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들에게 근거 없는 치료법을 제시하는 건 해당 연구소뿐만이 아니다. 당장 포털 검색창에 ‘자폐 치료’라고만 검색해도 완치가 가능하다고 홍보하는 업체들이 많다. 서울교대 유아특수교육과 권정민 교수는 “가볍게는 체육, 미술부터 굿이랑 안수기도, 킬레이션, 동종요법, 백신 거부, 고압산소치료, 혈액을 통째로 교체하는 방법 등이 자폐 치료법으로 제시된다”며 “얼마나 많은 사이비 치료가 있는지 통계는 없지만 발달장애, 특히 자폐 치료를 위해 사이비에 접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게 부모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했다.

◇단기간, 딱 한 번의 솔루션이라는 감언이설
발달장애는 완치보다는 관리라는 개념에서 접근한다. 최종 목표는 소아의 잠재력을 최대화해 나중에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약물치료, 특수 교육, 언어치료 등을 병행한다. 다만 그 효과는 매우 느리게 나타나는 편이다. 부모들은 절박하고 도움 받을 곳은 부족하기만 하다. 소위 사이비 치료사들은 이 틈을 파고든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꾸준하게 관리하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질환일수록 가족들은 단기간, 딱 한 번의 솔루션이라고 홍보하는 비과학적인 치료법에 의존하기 쉽다”며 “실제 사이비 치료법을 홍보하는 팸플릿을 들고 와 괜찮은지 물어보는 부모도 있고 6개월 간 불상의 치료 프로그램을 받다가 아이의 증상이 나빠져 내원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이비 치료법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높은 성공률이나 완치를 주장 한다 ▲표준 치료법을 깎아내린다 ▲치료법 관련 효과, 논문보다는 사례, 증언만 제시한다. 비용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당장 왕의 DNA로 논란됐던 민간연구소만 해도 자체 프로그램의 등록비용을 2019년 기준 ADHD·틱 학생은 170~200만원, 지적장애는 200~250만원 수준으로 산정했다. 통상 사이비 치료사들은 제시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이유를 들어가며 추가적인 프로그램을 권고한다. 투입한 비용이 아까워서 몇 년씩 끌려 다니면 부작용은 물론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발달장애는 치료시기를 놓치면 개입이 더 어려워지는 특징이 있다.

◇정보·전문가 없는 현실, ‘정보 부족’에 헤매다 사이비로…
중요한 건 부모들이 사이비 치료법에 기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완치가 없는 질환의 특수성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 없다. 발달장애를 진단한 의료기관에서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안내하는 게 끝이다.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되고 몇 살이 되면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특수교육 서비스를 받으려면 무슨 검사를 받아야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많은 것들이 빈칸이다.

물어볼 전문가를 만나는 길도 쉽지 않다. 부모들이 선호하는 대학병원 대부분은 최소 대기 기간이 1년이 넘는다. 대기 시간은 길지만 상담 시간은 짧다. 한국의 수가체계에서 상담 시간은 길수록 손해기 때문. 이러다보니 대학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들은 오전 외래에만 40~60명의 환자를 본다. 진료 시간은 부모들이 만족할 만한 조언을 구하기엔 턱없이 짧다. 대학병원 교수 대신 친절하게 상담해주고 조언해주는 게 사이비 치료사다.

권정민 교수는 “아이가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로드맵을 제공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당장의 급한 치료 관련 정보만 제공한다”며 “최소한 공공기관에서 가지 말아야 할 길, 받지 말아야 할 치료 정도는 명시해줘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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