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신임 전경련 회장 “무거운 책임감…벤치마크 대상은 CSIS”
“국내·외 다른 경제단체나 경제연구원과 협력·아웃소싱(위탁)을 통해 질 좋은 보고서를 기업에 제공하는 싱크탱크가 되겠습니다. 또 일본·미국 등과 교류를 활용해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한 소규모 회원사들과 다른 나라를 매칭하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22일 열린 임시총회에서 제39대 회장으로 취임한 류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풍산 회장)은 취재진에게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벤치마크 대상으로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꼽았다. “(전경련의 지향이) 헤리티지재단보다는 CSIS가 더 맞는다”면서다. CSIS는 국제·안보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중립적 기관으로 알려진 반면 헤리티지재단은 보수 성향의 정치적 색채를 띤다고 평가받는다.
“헤리티지보다 CSIS가 전경련에 맞아”
류 회장은 전경련이 과거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것과 관련해 “당시 (전경련) 부회장으로서 내부 시스템 부재로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 부끄럽다”면서도 “부회장을 20년 동안 했기에 과거 같은 잘못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신설하는 윤리위원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윤리위에서 일정 기준 이상 기금 모금을 심사해 반대하면 할 수 없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SK·현대차·LG 등 재계 4대 그룹의 복귀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류 회장은 “기업들이 어려운 선택을 했다”며 “고(故) 최종현 SK 선대회장,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등 선친들을 다 안다. 그분들이 꾸려온 전경련이 중간에 불미스럽게 됐지만, 국민이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인연합회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을 모아 새출발 하는 뜻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이어 “누구나 한 번 잘못할 수는 있다. 미래지향적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연락했느냐는 질문에는 “인간 이재용을 좋아한다”며 “큰 기업, 작은 기업 간 대화 창구가 없었는데 이 회장도 어려울 때 돕는 것이 기본(자세)이라 좋은 점이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4대 그룹 어려운 선택…인간 이재용 좋아해”
자산 4조5000억원(지난해 말 기준) 규모의 중견그룹인 풍산이 재계 대표성을 지니기 어렵지 않냐는 견해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소신을 밝혔다. 그는 “50대 그룹 같은 기준이 아닌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가 중요하다”며 “(방산·구리 가공 등에서) 세계 1위라 자부심이 있고, 큰 재벌이 아니라 위·아래를 연결하는 데 플러스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 회장은 2021년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2년을 제외하고, 2001년부터 20년 넘게 전경련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전경련은 ‘정경유착에 얽매인 이익 집단’ ‘글로벌 변화에 뒤처진 구시대 조직’ 등의 비판에서 자유로운 기업인을 신임 회장으로 물색했고, 무엇보다 류 회장의 글로벌 역량을 높이 평가해 회장으로 추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차례 고사 끝에 회장에 오른 그는 “어려운 시기 중책을 감당할 적임자인지 고민이 많았지만 국민의 신뢰 회복에 보탬이 되고,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쟁에서 활로를 찾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수락했다”며 “마지막 봉사로 여기겠다”고 다짐했다.
류 회장은 고 류찬우 풍산 창업주의 아들이다. 2000년 풍산 회장에 올랐으며 주요 재계 주요 리더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한쪽에 쏠리지 않은 인맥으로 신임을 받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은둔의 경영자’에서 재계 대표로
자신의 활동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로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하지만 역대 정부마다 대(對)미국 관계에서 막후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어와 일본어 등에 능통하며 광범위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그의 첫째 주특기로 꼽힌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일가와 친분이 깊으며 로버트 게이츠·리온 파네타 전 미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우치야다 타케시 전 토요타 회장, 마츠모토 마사요시 스미토모전기공업 회장 등과도 가깝다. 외국에서 귀빈이 올 때면 항상 그 수행원의 식사까지 챙기는 세심함을 보인다고 한다.
류 회장은 전경련 쇄신은 물론 ▶윤리경영 체제 마련 ▶싱크탱크로서 재계 미래상 제시 ▶신산업 분야 기업 영입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한미·한일 관계에서도 비중 있는 역할이 요구된다.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금처럼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어느 때보다 재계 수장으로서 역할이 중요하다”며 “류 회장이 보유한 글로벌 인맥을 국부 창출과 산업 발전에 의미 있게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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