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아' 외치는, 희나씨와 엄마의 돌봄일기

정진영 2023. 8. 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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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지닌 딸과 엄마의 30년 동행기 '우리, 희나'를 읽고

[정진영 기자]

서른 두 살의 희나씨는 이모, 엄마와 셋이 제주도에 산다. 희나씨는 진공청소기나 음식물쓰레기 처리기와같은 기계를 좋아하고, 냉장고나 서랍 물건을 정리하기를 좋아하며, 각 잡고 빨래 개키는 것을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옷을 제자리에 정돈해 두고, 양치를 한 다음 마른 수건으로 칫솔에 묻은 물기를 닦아낸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먼저 실내복으로 갈아입는다. 엄마가 그대로 소파에 앉기라도 하면 여지 없이 옷을 거두어간다. 최근 출간된 책 <우리, 희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희나씨와 가족들의 30년 여정을 그렸다. 

'소방수' 희나씨
 
 오한숙희 작 <우리, 희나>, 도서출판 나무를 심는 사람들
ⓒ 장희나, 나무를심는사람들
 
엄마와 이모가 말다툼을 하면 희나씨는, 엄마 입을 손으로 막아 말을 못하게 만든다. 갈등 상황을 싫어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화가 난 사람의 입을 막아 불을 끄는 희나씨의 별명은 '엄마 전속 소방수'이다. 

표현하는 일에도 아주 적극적이다. 부탁할 일이 생기면 건물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남이 보든 말든 말 대신 엄마 볼에 뽀뽀를 한다. 멀쩡하게 생긴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엄마 볼에 쉴 새 없이 뽀뽀 세례를 하는 모습은 사람들 눈에 띄기 마련이다. 못 본 척하는 아저씨, 짠하게 생각하는 아이엄마, 어쩌다 그렇게 되었나 궁금해하는 오지랖 넓은 사람, 자식과 같이 사는 걸 부러워하는 독거노인까지. '뽀뽀 모녀'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갈린다.

희나씨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네 살 때 1급 중증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희나씨가 학급당 인원이 6명이던 특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주간센터에 다닌다. 미술작가들과 만나는 예술 활동 시간을 좋아해서 밥 먹는것도 잊고 여섯 시간 넘게 집중한 적도 있고, 어려서부터 해온 특유의 쌓기 기법으로 그린 그림으로 2020년에는 제주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소주 한 잔 권하는 '친구'
 
 책에 실린, 장희나 작가의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
ⓒ 장희나, 나무를심는사람들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와 고향 제주에 올레 길을 만들어 이름을 알린 서명숙 이사장도 책에 등장한다. 서 이사장은, 엄마와 사이다를 마시는 문제로 갈등을 겪는 희나씨에게 초록색 병에 든 소주를 권한다. 스프를 절반만 넣고 다 넣은 온전한 라면도 끓여주는 '서면숙'(서명숙) 이모. 그는 통상 돌봄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는 '장애인' 희나씨를, 술잔을 건네는 '친구'로 대해주는 귀한 어른이다. 

책에서 화가 윤석남 선생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작가의 시선으로 희나씨를 바라본다. "장애가 아냐.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없이, 오로지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이들이야말로 예술활동에 최적화된 사람들이야. 나는 너무 부러워"라고 말이다(책 191쪽).   

그의 말처럼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많은 '희나들'이 미술 치료를 넘어 작업을 하고, 발달 장애란 수식어를 떼고 전시회를 열어도 좋지 않을까. 

저자 바람대로 미술 작품도 팔고, 농사도 지었으면. 그래서 농산물 판매로 경제적 자립도 하는 공동체 안에서, 장애와 비장애인이 서로 돕는 오한숙희표 '아트팜'이 정말 현실에서도 실현되면 좋겠다.   
 
 장희나 씨의 전시회 작품
ⓒ 정진영
 
이 책의 5부 제목은 '이대로 좋아'이다. 딸과 사는 지금 그대로 좋다는 엄마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제목이다. 책에는 주위에 발달 장애인이 있는 경우에 알아두면 좋을 구체적인 경험담들이 많이 담겨 있다.

책에는 누구나 생각해 보면 보면 좋을 제안들도 많이 들어 있다. 가만히 읽다 보면 내 안의 편견과 차별이 겉으로 표나지 않게 얼마나 깊이 가라앉아 있었나 깨닫게 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딸과의 30년 동행기를 써주어서, 또 미술 치료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작업으로 확장시키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줘서, 내 안의 편견을 알게 해줘 여러모로 감사한 책이다. 

희나씨는 좋겠다. 장애를 불행이 아니라 다름과 개성으로 바라보는 엄마를 만나서. 존재 자체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어서.   

한편 오는 23일 오후 2시, 인천 서구 '이슈 갤러리' 카페에서 마침 <우리, 희나> 출간기념 북콘서트 또한 열린다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가봐도 좋겠다. 주소와 연락처 등 자세한 정보는 출판사 '나무를 심는 사람들' SNS 계정(바로가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별도 신청 없이 누구나 입장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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