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중쉬어'가 '편히쉬어' 된 김명수 6년...이균용이 떠안은 '과제'

문현경, 김정연, 김정민, 윤지원, 이병준 2023. 8. 2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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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뉴스1]


지난 12년간 사법부는 극심한 내홍과 변화를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부(2011년~2017년)는 상고법원 도입 등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지나치게 일사불란한’ 법원 조직을 만들었단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부(2017년~현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으나 ‘지나치게 느슨한’ 조직을 만들었단 비난에 직면했다.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때) ‘열중쉬어’에서 (김 대법원장 들어) ‘편히쉬어’가 된 상태”라고 비유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26일 취임사에서 “사법행정이 재판의 지원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법관 인사에 대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덜어내고 위계서열적 조직 구조를 해체하는 일에 몰두했다.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고, 행정처 근무 판사 수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해 일선 법관들이 법원장 후보를 선택하게 했다. 법원장의 권한이던 사무분담(판사들이 어떤 재판을 담당할지 정하는 절차)을 각 법원에 설치한 사무분담위원회의 몫으로 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강한 행정처’의 해체엔 ‘시스템의 부재’란 부작용이 따랐다.

재판 지연 현상은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다. 한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인사 등을 통해 판사들에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줬고, 그 결과 재판 지연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모든 법조인이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느끼는 피해 감정은 법조인보다 더 클 것”이라고도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에 근무했던 한 변호사는 “그동안 판사들은 개인 생활을 희생하면서 열심히 일했는데 그런 풍토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6년 전으로의 회귀’는 가능성과 적절성 모두 의문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의 한 판사는 “동기부여를 위한 계기를 만드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면서도 “고등부장 승진제 복구, 법원장 추천제 폐지 등 일련의 사법개혁 흐름을 과거로 한꺼번에 돌이키려는 시도는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년간 손대지 못한 상고심 적체 문제도 남아있다. 우리나라처럼 1년에 사건을 3만 건씩 보는 대법원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을 따로 만드는 과제를 추진했으나, 입법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그게 ‘사법농단’이었는지를 두고 4년 넘게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정작 상고제도 개선 논의에는 진전이 없다.

하급심 강화를 통해 상고심 사건 수를 줄이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판사 증원은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변호사 등 법조 경력을 갖춘 이들을 법관으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 제도 실행 이후 인력 수급 자체가 어려워졌단 문제도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법관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고 보수적이기 때문에 사법부에선 무엇을 추진하려 해도 반발이 있기 마련”이라며 “새 대법원장은 이들을 끌고 갈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승태 대법원장은 똑똑한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맡기는 스타일이라면, 이균용 후보자는 자기 생각이 확고하고 주도적인 인물이어서 ‘사법부의 정상화’ 측면에서 본인이 직접 챙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문현경·김정연·윤지원·이병준·김정민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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