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갈 것 알면서, 탁신 15년 만에 귀국…그 뒤엔 태국 군부?

태국 현대 정치의 최고 '이슈메이커'인 탁신 친나왓(74) 전 태국 총리가 15년간의 해외 도피 생활을 끝내고 22일(현지시간) 마침내 태국 땅을 밟았다. 귀국 직후 법원으로부터 권력남용 혐의로 8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15년간의 망명 생활을 마친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운데)가 22일 방콕 돈므앙 공항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날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오른쪽)이 그의 곁에 서서 안내했다. EPA=연합뉴스

로이터통신·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탁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방콕 돈므앙 공항에 개인전용기를 타고 도착했다. 국왕의 초상화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한 그는 환영 인파를 바라보며 두손을 모아 인사했다. 이후 대법원으로 향한 그는 8년형을 선고받고 끌롱쁘렘 중앙교도소로 이송됐다.

앞서 지난 2001년 총리가 된 탁신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후, 해외에서 생활했다. 2008년 2월 귀국했으나 그해 8월 재판을 앞두고 출국해 망명을 선언했다. 이후 그는 미얀마 차관 불법 승인, 통신사 주식 불법 보유 등 각종 부정부패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는데, 일부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난 상태다. 탁신은 여전히 해당 혐의에 대해 부인했다.

탁신은 지난 15년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영국 런던 등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로 내세운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이 속한 탁신계 프아타이당이 지난 5월 제2야당이 되면서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되자 귀국할 뜻을 밝혔다.

탁신 친나왓 태국 전 총리가 22일 방콕 돈므앙 공항에 도착해 마하 와찌랄롱꼰(라마 10세) 태국 국왕의 초상화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탁신이 태국에 온 건 사면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수감자는 투옥 첫날 왕실 사면을 청원할 수 있다. 다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2년간 다시 신청할 수 없다. 탁신은 "손주들을 돌보기 위해 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귀국 결정은 정치 상황과는 무관하며 복역할 준비가 됐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그의 귀국 결정에는 오랜 정적인 군부 세력과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제1당 전진당(MFP)이 지난달 집권에 실패하자, 프아타이당은 탁신과 대척점에 있는 팔랑쁘라차랏당(PPRP), 루엄타이쌍찻당(RTSC) 등 친(親)군부 정당을 포함한 10개 정당과 연대해 정부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날 상·하원 합동 투표에선 프아타이당이 내세운 부동산 재벌 출신 세타 타위신이 총리 후보로 나와 선출됐다. 태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산시리의 회장이었던 세타는 지난 5월 열린 총선을 앞두고 정계에 입문한 정치 신인이다. 탁신의 측근인 세타가 총리로 선출되면서 탁신의 사면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 출신인 탁신은 1980년대 중반 이동통신사업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억만장자가 됐다. 1998년 타이락타이당을 창당한 후, 서민을 위한 경제 및 복지 정책으로 소외됐던 농촌 지역 유권자를 적극 공략해 2001년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됐다.

이후 30바트(약 1000원) 정도만 내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하고, 농가 부채를 대폭 탕감해줘 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반면 도시 부유층과 왕당파로부터는 견제를 받았다. 탁신은 권력남용 혐의를 받자 실형을 예상해 도피했는데도, 그동안 그를 지지하는 '붉은 셔츠' 물결은 끊이지 않았다. 이날도 그의 귀국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 주변에는 '레드 셔츠'로 불리는 지지자 등 수천 명이 몰렸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