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느린 '강변의 무코리타', 밥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

김상목 2023. 8. 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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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강변의 무코리타>

[김상목 기자]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포스터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오기가미 나오코' 표 영화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2007년 8월, '오기가미 나오코'라는 낯선 이름을 가진 일본 여성감독이 연출한, 역시 생소한 제목의 영화 1편이 국내 극장에서 개봉했다. 그 영화는 <카모메 식당> (2006)이었고 이후로 오기가미 나오코라는 감독은 국내에서 일본영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먹방 치유물의 대명사로 국내에서도 막강한 지지층을 지닌 <심야식당> <고독한 미식가>가 드라마에서 갖는 이미지를 영화에서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들은 <카모메 식당>으로부터 15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내 영화제와 극장가에서 꾸준히 소개되며 본인만의 입지를 구축하는 중이다.

<카모메 식당>의 성공은 개별 작품의 인기로 끝나지 않았다. 사실 이 영화는 반짝 흥행이 아니라 영화의 느릿하고 여유로운 속도감을 닮은 롱런의 작품으로 서서히 명성을 쌓아가는 스타일에 가깝다. 근래 일본 영화의 국내 대박 흥행과 비교하면 정작 개봉 당시 영화의 흥행은 1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 영화를 언급하거나 심지어 '내 인생의 영화'로 거론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먹방' 연출에 장기를 보이는 무수한 일본 영화들이 그 뒤를 이었지만 여전히 본 작품의 명성을 추월했다고 공인될 만한 영화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대체 그런 저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뭔가 특별한 게 있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차원일 테다.

<카모메 식당>의 반향으로 감독의 전작 <요시노 이발관>(2004)이 지각 소개되기도 했고, 후속작인 <안경>(2007), <토일렛>(2010), <고양이를 빌려 드립니다>(2012),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2017)까지 연달아 국내에서 개봉하면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는 '힐링'과 '치유'의 기운을 담은 '슬로 무비'의 대명사가 되어왔다. 근작 <강변의 무코리타> 역시 그러한 계열로 분류되기에 모자람 없는 외관을 지닌다. 이 감독의 영화는 한없이 느리다. 자극적인 상황 전개와 극단적 설정에 중독되다시피 한 21세기 한국사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감이다. 그러다 보니 혹자는 이 감독의 영화라면 대체 무슨 재미로 보는지 모르겠다며 넌더리를 내기도 하지만 속도중독 사회에 지친 이들에겐 마치 무더위에 산으로 강으로 떠나지 못한 채 집에 머물며 피서를 대신하는 체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감독 영화의 속도감은 하나의 작가적 소신이라 봐도 무방할 판이다.

하지만 그저 탈 일상의 느릿느릿한 전개가 이 감독의 전부가 아니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렇게 오래 사랑받으며 소수일지언정 열광적 팬 층을 거느릴 리 만무하다. 물론 감독의 초반 영화들에서는 정말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재충전할 휴식을 제공하는 형태로 이야기가 툭 끊어지듯 끝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된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에서 확연하게 변화가 감지되는데, 이 영화는 성소수자 트랜스젠더를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로 비중 있게 다루며 변주를 소화해내기에 이른다. 즉 이제는 적당한 휴양 혹은 잉여의 시간이 아니라 일상의 중심부에 깊숙하게 영화적 시간이 침범하며 일시적 효과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들 사이의 적응과 변화를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변주를 거듭해가며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는 세간의 선입견처럼 그저 동일한 패턴의 반복으로 그치지 않기에 이른다. 꾸준히 감독은 변주와 모색을 거듭해가며 정신없는 속도감 대신에 피난처이자 요새로서 견고한 작은 세계를 선보인다. 세상의 주류에서 빗겨났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는 작은 시공간과 그 속의 사람들이 감독의 영화 속 현실에서 목소리를 내고 지분을 갖는다. 굳이 사회적 발언을 소리 높이 외치진 않더라도 그 영화 속 세계는 일정한 울림과 함께 폭주하는 세상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발언권을 요구한다. 그런 시도의 한 결론으로 신작 <강변의 무코리타>는 그야말로 '외유내강'을 선보이는 작업이다.

'혼밥'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며 생긴 변화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야마다'라는 이름의 청년이 무더운 여름날 한적한 바닷가 마을 전철역에 내린다. 단출한 차림으로 별 짐도 없이 도착한 그는 인근의 수산물 가공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일손이 귀하다며 공장 사장은 그를 반기지만 과묵한 성격 탓인지 낯선 환경에 주눅이 든 건지 청년은 말없이 이력서를 내밀기만 한다. 그럼에도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어놔서인지 지역 특산품인 오징어 젓갈 공장에서 청년은 일하기 시작한다.

아무 연고가 없는 동네인지라 공장 일을 마치고 나면 달리 묵을 데도 없는 청년은 공장 사장의 소개로 마을의 공동주택에 입주한다. '무코리타 하이츠'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연립주택의 집주인 '미나미'가 그를 맞이해 쓸 방을 안내해준다. 시골이라 그런지 꽤 오래된 집이지만 대도시의 고시원 같은 비좁고 삭막한 공간과 딴판으로 제법 여유 있는 구조다. 집안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의지할 데 없는 청년이라면 작금의 한국사회에서 바랄 엄두가 나지 않는 방 두 개짜리다. (게다가 집주인 말로는 이 방에서 죽은 사람도 없다고 한다) 청년은 밥 짓기 물을 꼼꼼히 계량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찰진 밥을 완성하고 (미소된장국을 빼면 사장이 선물한 공장 생산품 오징어 젓갈로만 이뤄진) 빈약한 찬이지만 맛있게 먹는다. 그렇게 바닷가 마을에서의 일상이 시작된다.

공장 일에 서서히 적응해가며 야마다는 그럭저럭 지내지만 골치 아픈 변수가 발생한다. 공동주택 이웃인 시마다가 능청스럽게 불쑥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온수기가 고장이 났는데 공중목욕탕 요금이 부담스럽다며 일면식도 없던 야마다의 욕실을 쓰겠다고 끈질기게 매달린다. 낯선 이웃의 존재에 적응할 겨를도 없었던 야마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시마다는 야마다의 욕실에 출입하기 시작한다. 물론 민폐만 끼치진 않는다. 무일푼으로 이곳에 온 야마다는 첫 월급을 받기까지 빠듯한 상황인 터라 배가 고프지만 먹을 게 만만찮다. 공복과 피로에 지쳐 쓰러지듯 잠에 취한 그의 곁에 시마다는 텃밭에서 자신이 키운 채소를 남겨놓고 간다. 잠에서 깬 야마다는 눈을 비비며 싱싱한 오이와 과일을 맛있게 먹어치우고 생기를 되찾는다.

그렇게 서서히 야마다의 영역으로 비집고 들어온 이웃은 욕실을 얻어 쓰거나 밥을 같이 먹어가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야마다는 당혹스럽긴 하지만 투덜거리면서도 매사 능글능글한 시마다와 어울리기 시작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집주인 미나미 가족, 어린 아들 데리고 방문판매로 묘비를 취급하는 미조구치 등의 이웃들과 조금씩 안면을 트기 시작한다. 시마다는 뻔뻔하게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 소개하지만 특별히 하는 일 없는 한량으로만 보인다. 그는 초면에 무례하다 싶을 만큼 야마다에게 이것저것 신세를 진다. 아니 강요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이 기른 채소를 야마다에게 나눠주거나 상담역 노릇도 자청해서 수행한다. 야마다는 어린 딸과 함께 생활하는 집주인 '미나미'와는 월세 제때 꼬박꼬박 내는 (이 연립주택에선 매우 드문) 세입자 관계를 이어간다. 공장 식구들과도 데면데면하긴 해도 모나지 않는 관계가 이어진다.

하지만 사연 있어 보이는 야마다에게 시청 사회복지과에서 연락이 온다. 4살 이후 소식도 모르던 친부가 죽었으나 수습할 가족을 찾지 못하다 마침내 소식이 닿은 게다. 하지만 부친에게 별 정을 못 느끼는 데다 형편도 넉넉하지 못한 그는 유골을 수령하길 탐탁찮게 여기지만 시마다의 설득으로 화장된 유골을 찾으러 시청에 방문한다. 거기에서 자신을 대신해 시신을 수습한 담당 공무원과 대화를 나눈다. 이를 통해 자신을 방치했던 부모에 대한 기억을 상기한다. 불쾌하던 기억이 되살아나 다시 분개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유골단지를 집에 모셔두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저 무한 반복될 것만 같던 소소한 변화가 야마다와 이웃에게 일어난다. 관객은 그러한 경과를 곁에서 지켜보듯 찬찬히 관찰하게 될 것이다.

속세와는 다른 시간대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야마다가 머물며 대부분의 상황이 벌어지는 '무코리타 하이츠' 단지의 명칭은 불교 용어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일상적으로는 통용되지 않는 시간 개념이다. 하루를 1/30로 나눠 48분 동안 이어지는 간격이다. 단지 이름의 유래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설명되는데 불교 용어에서 유래되긴 했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노을이 지기 시작해 어두워질 때까지의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작명은 이곳의 오래된 입주민이던 오카모토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화단을 돌보며 중얼거리던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집주인 미나미 또한 자신의 부모들일 선대 집주인에게서 들었다며 과거를 회고한다.

영화 속 시간대는 1년 중 무코리타의 시간이 가장 선명하게 각인되는 한여름이다. 촬영장 배경은 동해와 맞닿은 호쿠리쿠 지방의 도야마 현이다. 고온다습한 여름 무더위로 유명한 해당 지역에서 촬영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속 풍경은 우리가 영화 속에서 종종 목격하던 '일본의 여름'을 제대로 구현해낸다. 강변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고물상처럼 산을 이루고 오갈 데 없는 노숙인들이 거주하지만 빈곤과 비참함보다는 대도시에서 바삐 출퇴근하는 이들과는 색다른 삶으로 비춰지는 측면이 짙다. 공동주택 이웃들을 제외하면 영화 말미에 야마다의 새 출발에 동행하는 이들 역시 강변의 노숙인 가족들이다. 이들은 '타자'가 아니라 '이웃'인 것이다.

물론 공장의 식구들도 주인공을 그저 노동력으로만 대하지 않는다. 그들이 선보이는 작은 선의가 야마다의 재기를 돕는다. (그가 새로운 삶의 출발점으로 삼은 공장의 주력 상품인) 지역 특산물 젓갈의 재료인 오징어와 제철인 민달팽이는 끊임없이 연체동물 특유의 질감과 함께 출현하는데 (영화 중반에 야마다가 현기증을 느끼던 것처럼) 누군가는 영화를 보다 질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끈적끈적한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변화와 어우러진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저 스쳐 지날 것처럼 소소해 보이던 존재들이 한참 지나고 보면 그저 배경에 그치지 않고 맡겨진 임무를 차질 없이 수행한다. 그래서 <강변의 무코리타> 속에는 낭비되는 요소가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눈에 들어오는 장치들은 거의 틀림없이 고유의 목적과 용도가 회수된다. 이제 고참 반열에 오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조화와 호흡이다.

삶-죽음 경계에서 각자의 상처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영화 내내 파괴적인 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등장인물들 누구나 삶과 죽음의 기묘한 공존 아래 살아가고 있다.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 마을의 여름날이지만 감독이 아껴뒀다 종종 써먹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은 기이할 만큼 이 영화 속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그려낸다. 제목이 불교 용어에서 비롯된 것과 연결해서 본다면 <강변의 무코리타> 속 도야마 현의 여름날은 두 세계가 교차하는 판타지 시공간으로 기능하는 셈이다.

① 야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부친의 늦은 부고와 유골 수습에 머리를 싸맨다. 게다가 그가 우연히 마주치는, 화단을 돌보며 혼잣말을 하던 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입주민으로 밝혀진다. 그런 일련의 사건 때문에 방에 모셔둔 부친의 유골 단지가 못내 두렵기도 하다.

그리고 야마다의 이웃들은 외관상 낙천적인 인물들로 보이지만 실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와 지인의 죽음에 직면한 상황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② 시마다: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 자처하며 소박한 삶에 만족하듯 보이는 그이지만, 과거에 그가 겪은 상처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 때문에 회복 불가능한 고통을 겪고 있다. 세상이 두려워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정 때문에 텃밭을 경작하게 된 전후사정이 드러난다.

③ 미나미: 어린 딸과 함께 물려받은 공동주택을 관리하며 조용한 삶을 보내는 것 같지만 그 또한 풀 길 없는 회한과 스트레스를 품은 존재다. 어느 날 야마다가 목격하게 되는 다소 충격적인 그의 언행은 이전까지의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암시하지만 중반부에서 미나미가 보여주는 충격적 장면은 영화 전체의 호흡을 다소 파괴하면서까지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마음 속 상처가 다들 만만치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준다.

④ 미조구치: 처음에는 감독의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하는 엉뚱한 개그 캐릭터로 비춰지지만 그 또한 만만찮은 내력이 짐작되는 인물이다. 그는 묘석 판매에 어린 아들을 동원하는데 이웃들은 질색을 할 정도다. 집주인 미나미에겐 6개월 째 집세를 체납한 악덕 세입자이기도 하다. 과거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어린 아들과 단둘이 살아가며 잘 팔리지 않는 묘석을 판매하는 그의 일상은 존재 자체로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를 이룬다.

⑤ 그 외에도 미나미의 어린 딸은 키우던 금붕어가 죽자 매장하는 절차를 통해 죽음을 체험하게 되고, 미나미 모녀가 성묘를 다녀올 때 탄 택시의 기사 또한 만만찮은 일화를 들려준다. 강변의 노숙인들 또한 해마다 태풍이 몰아치고 호우에 휩쓸리면서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렇게 이 영화 속 모든 인물은 각자의 주변에서 죽음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그런 죽음의 흔적과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는 결코 온전히 극복하거나 잊어버릴 수 없는 차원의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각자는 시련 속에서도 남은 자의 삶을 이어가야 하기에 견디는 법을 함께 익혀야만 한다. 그런 태도의 완성은 영화의 말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발현되는 생의 의지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스틸 이미지
ⓒ ㈜엔케이컨텐츠
 
그런 그들의 생을 향한 의지는 '밥'에 온전히 구현된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들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먹을거리 미장센을 협연해온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의 솜씨는 <강변의 무코리타>에서 소박한 먹방 묘사의 절정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도 무수하게 유튜브를 떠도는 먹방 이미지 클립을 창조해 왔지만 이 영화에선 야마다의 밥상 풍경만으로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이끌어내는 위용을 드러낸다. 주인공 야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의 심리와 변화 묘사가 거의 먹방 장면으로 해결될 정도다. 그런 작가의 의도를 깨닫는 순간 돋보기를 집어 드는 것처럼 관객은 누구든 먹는 행위가 화면에 펼쳐지는 순간 긴장하며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같이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곧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웃들 사이의 우애를 상징하는 전환점으로 기능한다.

오기가미 나오코와 이이지마 나미 콤비의 협업은 소박한 일본 가정식 묘사에서 한 정점을 이뤄왔지만 이제는 숫제 '혼밥'의 풍경 반복으로도 원하는 이미지를 뽑아내기에 이른다. 야마다는 '밥'에 특별한 집착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 후반부에 설명되는데 초반에는 그런 설명 없이도 그저 밥솥에 밥을 짓는 과정 전체에 그런 기운이 농축된 것처럼 묘사된다. 고작 국과 젓갈만으로도 야마다 역을 맡은 배우 마츠야마 켄이치가 생존을 넘어서는 즐거움을 누리는 게 여실하다. 그리고 이웃 시마다가 텃밭에서 바로 따다준 싱싱한 과일과 채소, 공장 사장이 선물해준 최고급 오징어 젓갈로 점점 식단이 풍성해진다. 곧 야마다의 일상이 풍요로워진다는 무언의 해설로 기능하는 장면들이다.

하지만 그저 야마다의 단출하던 식탁이 풍성해지는 것만으로 설명은 끝나지 않는다. 이웃의 욕실을 노리던 시마다는 이제 젓가락과 밥그릇을 들고 천연덕스럽게 야마다의 맞은편에 앉아 있다. 밥 냄새가 좋다며 끼니 때만 되면 스르륵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텃밭 농사에 야마다를 일손으로 끌어들인다. 늘 자신은 빈털터리라 내세우며 아무렇지 않게 이웃들의 식사에 '침입'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 시마다의 행패에 어느 순간 야마다가 동참하는 장면은 그냥 보면 썰렁한 개그 코드 같지만 곰곰이 곱씹어보면 야마다가 타인과 어울리려는 거대한 도전의 출발점으로 작용한다. 그들이 염치 불구하고 끼어든 미조구치 가족의 쇠고기 전골 만찬에 어느새 미나미 가족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밥'을 같이 먹는 '식구'의 정겨운 풍경이 이 낯선 이웃들 사이에서 구현되는 '역사적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밥상의 이미지만이 아니다. 영화 내내 주요하게 기능하는 (자살방지를 위한) '생명의 전화'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어디로 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기상천외한 답변, '하늘을 나는 금붕어'가 되어 날아간다는 이야기와 통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미지가 영화 속에서 구현되기에 이른다. 오징어 역시 단순히 야마다가 생업으로 출근하는 공장의 젓갈 재료로 그치지 않고 판타지의 재료로 제 몫을 톡톡히 소화한다. 이런 치밀한 연결고리들을 적절히 활용해 감독은 삶과 죽음의 간격을 무화시키고 오직 생의 의지만을 남긴다.

일본의 전통적 주거형태 중 하나인 '나가야'를 현대화한 것 같은 모양의 '무코리타' 공동주택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마치 일본 시대극에서 정감 넘치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서민들의 풍경을 재현하려는 것 같다.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옛 입주자도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곳, 벽간소음 때문에 이웃이 뭘 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곳, 누가 맛난 것을 해먹으려면 들키지 않는 게 불가능한 그런 공간이다.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 역할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이 길게 늘어진 단칸방 집합단지는 영화 전반에 걸쳐 제 역할을 수행해낸다.
 
아파트 계급사회에 대안을 제시하는 영화의 매력

전작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에 이어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세계는 <강변의 무코리타>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횡단하듯 일상과 휴식처의 공존이 짙어지는 경향을 드러낸다. 본 작품이 촬영되던 코로나19 시절의 사회적 분위기 또한 일정 부분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한적한 도야마 바닷가에서 제작진은 촬영으로 분주한 가운데에도 전 세계를 뒤덮은 역병의 그림자 속에서 삶과 죽음을 작품 속 등장인물들처럼 사색하지 않았을까 싶다. 종교적 색채와 함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전과자, 자발적 고립, 노숙인까지-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재활을 따스하게 관찰하는 풍경은 그저 소재나 기교적으로만 다뤄지지 않았다.

현대 한국인의 과반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거주한다. 그야말로 21세기 한국인은 '아파트 민족'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 아파트 또한 과거의 것과 현재의 신축 구조는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복도식이라 불리는 아파트가 서민들의 대도시 주거로 기능했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가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의 풍경을 형성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아파트 단지이건 주택가 골목이건 이웃들 흉을 볼지언정 서로 경조사를 챙기거나 급한 사안은 협조하곤 했다. 심지어 과거엔 아파트 복도 이웃들끼리 공동육아를 도맡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대도시의 삶은 그런 정겨움과 피곤함 대신 마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혹은 낯선 타인에 대한 공포만 남은 듯하다. 가능한 이웃들과 얽히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다. 당장 매일 온라인 공간에 횡행하는 층간소음이나 주차 분쟁 같은 논란이 넘쳐날 정도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건 쓸데없는 간섭으로 치부되고, 심지어 신고대상이나 물리적 폭력을 촉발시킬 정도로 경계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타인이 된 작금 현실에서 누군지도 모를 이웃이 다가오면 불안하고 두렵기만 하다. 그렇게 우리는 예전에 비해 가족 개념도 약해진 데다 이웃사촌이란 용어도 낯설어져버렸다.

하지만 종종 네트워크 이론을 언급할 때 예시로 거론되곤 하는 고슴도치들의 동면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굴 안에서 최대한 서로 바싹 붙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달라붙으면 바늘에 서로 찔린다. 그래서 거리가 멀어지면 또 냉기를 견딜 수 없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비로소 최적의 간격이 형성된다. 그런 고슴도치들의 밀고 당기기 과정처럼 <강변의 무코리타>는 과거의 상처를 가진 이들을 천천히 소통과 이해의 경지로 이끌어 나아간다. 이 영화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웃 간 단절과 가족의 해체, 고독사의 위협을 풀어나갈 단초를 모색하기 시작할 테다.
 
<작품정보>
강변의 무코리타
川っぺりムコリッタ
Riverside Mukolitta
2021|일본|드라마
2023.08.23. 개봉|120분|12세 관람가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마츠야마 켄이치(야마다 역), 무로 츠요시(시마다 역), 미츠시마 히카리(미나미 역),
요시오카 히데타카(미조구치 역), 오가타 나오토(젓갈공장 사장 역),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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