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놀이 못가는거 아냐? '유커 문' 막상 열리자 "와도 걱정" 왜

최승표 2023. 8. 2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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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지난 10일 자국민에 대한 한국 단체관광을 허용했다.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 이후 6년 5개월만이다. 방한 관광객의 최대 45%를 차지했던 유커가 코로나 사태 이후 침체한 한국 관광을 되살릴 수 있을지 기대가 크다. 사진은 최근 활기를 되찾은 서울 명동 거리. 연합뉴스

지난 10일 중국 정부가 중국인의 한국 단체 관광을 허용했다. 미국·일본 등 78개 국가에 대한 제한을 동시에 풀었다지만, 한국은 의미가 남다르다. 방한 중국인 단체 관광 재개는 2017년 3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 이후 6년 5개월 만의 일이어서다.

중국의 갑작스러운 발표 이후 국내 관광업계는 환영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나 한 걸음 들어가 보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코로나 사태로 붕괴한 국내 관광 인프라가 아직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커만 돌아오길 학수고대하던 관광업계가 막상 문이 열리자 “유커가 와도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고 있다. 대규모 유커 입국을 앞두고 국내 관광업계의 현실을 진단했다. 들뜬 분위기와 달리 여행사를 통한 중국인 단체 방문객은 아직 없는 상태다.


중국인이 다 ‘유커’는 아니다


지난 12일 중국 단체 관광객이 3년여 만에 인천항과 평택항에 들어왔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중국 정부가 단체 관광을 허용하고 불과 이틀 뒤에 들려온 소식이어서 관심이 뜨거웠다. 알아보니 사실과 달랐다.

코로나 사태 이후 중단됐던 한중간 여객선 운항이 이때부터 재개된 건 맞다. 다만 산둥성 칭다오(靑島)이나 웨이하이(威海)에서 약 14시간 걸리는 밤샘 여객선을 타고 한국에 들어온 중국인은 대부분 관광 목적 방문객이 아니었다. 여행업계 관계자 A씨는 “여객선 타고 한국에 들어오는 중국인은 대부분 따이공(보따리상)이다. 특히 조선족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중단됐던 한중 국제여객선이 지난 12일 운항을 재개했다. 중국 웨이하이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평택항으로 들어온 중국인의 모습. 연합뉴스

유커(游客)는 중국인 방문객을 통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관광을 목적으로 한 중국인 해외여행객을 뜻한다. 취업·유학·출장 등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중국인은 관광업계에서 말하는 유커가 아니다. 단체 관광객은 중국 내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으로부터 단체 관광비자를 받아야 한다. 비자 발급은 빠르면 나흘, 길면 일주일 이상 소요된다. 10일 중국 정부가 중국인의 한국 단체 관광을 허용했다는 게 바로 단체 관광비자 업무를 재개했다는 뜻이다.

국내 관광업계는 빨라야 이달 말부터 중국 단체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여행사가 광고하고 모객을 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해서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이달 24일 중국청년여행사와 공동 기획한 방한 관광상품을 통해 31명이 입국해 인천공항에서 환영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제선 82% 회복, 중국 노선은 62%


중국인의 한국 여행이 본격화하려면 시간도 필요하지만, 비행기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한·중 여객 노선은 여느 국제선보다 운항 회복이 더딘 상태다. 7월 인천공항의 국제선 여객 운항 현황을 보니 코로나 이전인 2019년 7월의 82%까지 회복된 상태였다. 그 기간 일본 노선은 96%까지 회복했으나, 중국 노선은 62% 수준에 불과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관계자는 “회복이 더딘 만큼 항공료가 비싼 것도 걸림돌”이라며 “항공사가 운항을 준비하고 정부 운항 허가를 얻기까지 두세 달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부족한 건 항공만이 아니다. 유커를 맞이할 국내 관광 인프라 전반이 사실상 무너진 상태다. 전세 버스, 버스 기사, 관광식당, 통역 가이드 등등 부족한 것투성이다. 특히 유커가 주 고객이었던 중저가 호텔과 대형 관광식당은 코로나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문 닫은 곳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장유재 한국여행업협회(KATA) 부회장은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 기간 핸들을 놓은 버스 기사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라며 “두세 달 뒤 유커가 몰려올 시점은 한국의 단풍놀이 기간이자 수학여행 기간과 겹친다. 인프라 대란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덤핑 여행상품, 불법 가이드 우려


올 상반기 방한 외국인은 443만 명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중국인은 약 10%에 불과했다. 사드 보복 조치 이전인 2016년에는 전체 외래 방문객의 45%가 중국인이었고, 코로나 확산 전인 2019년에는 외래 방문객의 약 29%가 중국인이었다. 비율은 줄었어도 중국인은 한국 관광을 떠받치는 최대 시장이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중국 정부의 발표 이후 저가 덤핑 여행이 부활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유커를 대상으로 항공료 수준의 여행경비만 받고 한국에서 쇼핑만 돌리다 돌려보내는 덤핑 패키지상품은 한국 관광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었다. 국내 여행사 간의 과당 경쟁으로 중국 여행사에 ‘인두세’를 주고 중국인 단체를 유치하는 경우도 횡행했었다. 중국 전담 여행사 대표 B씨는 “기름값·식비·인건비 등 모든 가격이 올랐는데 코로나 이전 수준의 가격을 요구하는 중국 여행사가 많다”며 “더 큰 문제는 중국 여행사의 터무니없는 가격을 받아주는 국내 업체가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한국 단체관광 허용 소식에 국내 관광 업계가 '중국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13일 중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모집한다는 구인 공고를 붙인 서울 명동 거리의 한 화장품 매장. 연합뉴스
관광통역안내사도 턱없이 부족하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통역안내사 대부분이 직업을 바꿨다. 유커가 귀환한다고 바로 관광 현장으로 복귀할 통역안내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2020년 초까지 약 20년간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로 활동했던 P씨는 “당장은 통역안내사로 생계가 불가능해 복귀할 생각이 없다”며 “동료 대부분의 생각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통역안내사가 부족하면 무자격 가이드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P씨는 “불법 가이드가 쏟아질 게 뻔한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단속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사실 과거에도 다 알면서 모른 척했다”고 꼬집었다.

쇼핑보다 미식 체험 즐기는 중국인


제주도·서울 등 지자체와 면세점·카지노·호텔 등 관광업계가 ‘유커의 귀환’을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기대만큼 유커가 한국을 찾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중국 경기 불황도 심각하지만, 코로나를 겪으며 해외여행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회사 ‘매켄지’가 4월 발표한 보고서는 “중국인이 과거와 달리 안전을 중시하고 고급 숙소와 먹거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며 “쇼핑과 관광 명소 방문보다는 오락과 체험에 더 큰 비용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시장조사 회사 ‘드레곤 트레일 리서치’도 4월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응답자에게 선호하는 해외여행지를 물었는데, 홍콩(22.1%)·마카오(9.9%)에 이어 태국(9.6%), 일본(6.7%), 한국(4.4%)을 차례로 꼽았다. 일본은 재방문객 비율이 27.9%로, 13.3%인 한국의 두 배가 넘었다. ‘해외여행의 목적’을 묻는 항목에는 현지 음식 체험(56%)이 1위였고, 관광 명소 방문(56%), 현지 문화 체험(52%)이 뒤를 이었다. ‘코리아 그랜드 세일’처럼 한국이 강점이라고 믿는 쇼핑은 23%로 7위에 그쳤다.

정근영 디자이너

문체부·관광공사 등 관광 당국은 올가을 중추절(9월 29일), 국경절(10월 1일)을 기점으로 유커 방문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문체부 이혜림 국제관광과장은 “관광 현장의 여러 문제를 살피고 있다”며 “단기적인 지원도 하겠지만, 고급 상품을 강화하고 달라진 중국 여행객이 만족할 수 있는 콘텐트를 집중적으로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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