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때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는 매일 가위눌려"
[하성태 기자]
▲ 4.3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아트하우스 모모 상영회. |
ⓒ 하성태 |
"1948년도 4.3이 일어나고 나서 50년도에 육지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거의 한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피해자 중 한 사람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4.3으로 인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 전주형무소에서 3년, 이렇게 5년을 살고 해방을 맞이해서 정말 희망찬 꿈을 꾸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애를 먹이던 일본인 순사가 해방 이후 과장이 됐어요. 보도연맹 얘기 들어 보셨죠? 송이산 부근에서 한꺼번에 죽었고, 우리 아버지도 (보도연맹 같은 예비검속의) 희생자입니다."
본인을 1946년생이자 광복회 회원이라 소개한 나이 지긋한 청중이 만4살 때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도 제주4.3과 관련해 "발이 닳도록 많이 쫓아다니고 있다"는 그는 제주4.3이 "현재진행형"이라고 했다.
지난 19일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린 4.3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상영회 자리에서다. 이 기구한 사연을 지닌 청중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아버지 없이 삼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남편의 시체를 찾고 또 찾았고, 78살에 돌아가실 때까지 가위에 눌리고 또 눌렸다고 했다. 그에게 제주4.3과 아버지 사건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일 터.
"가해자들이 동작동 국립묘지라든지 대전 현충원이라든지 제일 좋은 자리에 있어요. 이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 현 주소입니다. 과연 이걸 두고 우리가 역사의 좋은 내용을 논하기 전에 가해자들을 지금 찾아내야 하는 사안이고, 가해자들을 제대로 조명해서 우리 역사의 기록과 교과서에 기록을 해야 하는데 거기서 저는 한 발자국도 못나갔다고 보는 겁니다.
(아버지는)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 지금 모셔져 있는데, 묘역에 모실 때 모습을 보니 (아버지) 머리의 3분의 2가 날아가고 깨지고 그랬어요. 무릎을 꿇게 해놓고 뒤에서 총을 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저희 아버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죽었거든요. 어머니도 그 기억에 밤에 자다 울컥하시고, 그걸 들은 우리 삼남매가 어머니를 깨우고 하는 것이 저희들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어요."
▲ 19일 <돌들이 말할 때까지> 상영회 현장. 가운데가 김경만 감독. |
ⓒ 하성태 |
▲ 19일 <돌들이 말할 때까지> 상영회 현장. 가운데가 김경만 감독. |
ⓒ 하성태 |
작년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용감한 기러기' 상을 수상한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미국의 바람과 불>, <지나가는 사람들> 등 다수의 장단편 다큐들을 작업해 온 김경만 감독이 2016년 처음 작업을 시작한 제주4.3 다큐다. 제주4.3 당시 불법 군사·민간 재판을 받고 전국 각지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던 4.3 수형인을 다룬 첫 번째 장편영화이기도 하다(관련 기사 : "여성의 경험 통해 제주 4.3 보여주고 싶었다").
2018년 70주년 이후 4.3 특별법 개정 운동 등 4.3을 알아가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4.3 수형인 피해자들 역시 직권재심 등을 통해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있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그 피해자들 중 양농옥·박순석·박춘옥·김묘생·송순희 5인의 할머니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여성 서사와 김경만 감독의 영상 푸티지가 결합된 형태의 다큐다.
제주4.3 도민연대의 '수형인 조사사업'을 촬영하던 김경만 감독이 결국 영화화를 결심했고, 촬영은 2019년까지 이어졌다. 피해자 가족들의 인터뷰나 이후 직권재심 재판 등 긍정적인 소식도 담겼다. DMZ국제다큐멘터리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한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이제 내년 봄을 목표로 개봉 준비에 돌입했다. 그런 김경만 감독이 비제주 출신으로 4.3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랬다.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우리) 역사는 항상 일제강점기라든지 뭐 그런 피해자로서의 역사만 가르치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근데 피해자는 사실은 반성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어떤 역사에 대해서 한국 스스로가 반성을 하지 않아왔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4.3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됐던 것 같아요. 좀 더 이제 반성을 해야 되는 큰 일이 있는데, 반성하지 않고 계속 지내왔던 거고요. 거기에 대해 반성을 하면 이제 그만큼 좀 이제 나아질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김경만 감독)
영화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한라산과 제주 바다를 포함한 제주의 여러 풍광과 자연을 어떤 성찰적인 동시에 관념적인 시선으로 관찰한다. 촬영 현장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이런 장면을 삽입한 의도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제주도가) 일단 되게 아름답고요. 다른 지역의 돌도 물론 아름답겠지만 제주도의 돌은 화산에 의해 형성된 그런 돌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좀 다른 그런 질감과 느낌과 그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다 이제 짐작하시는 것처럼 정말 이제 제주도 사람들이 전부 다 불구덩이 속에서 있었던 거잖아요. 그런 걸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또 하나는 이제 제주도가 섬이고 바다에 인접해 있으니까 항상 파도에 의해 돌들이 깎이는 그런 장면들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4.3을 겪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게 끊이지 않고 덮쳐오는 파도 같은,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그런 경험들이 계속 닥쳐오는 그런 느낌인 거죠."(김경만 감독)
▲ 다큐 <돌들이 말할 때까지> 스틸 이미지. |
ⓒ dmz영화제 |
그렇다면 비제주인이 제주4.3을, 더욱이 1세대 4.3 수형인 피해자들을 카메라에 담는 일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역시나 촬영과정에서 "언어 문제가 제일 심한"어려움이었다는 김경만 감독의 회고는 이랬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촬영하고 있는 거예요. 한 반이나 촬영 했으려나. 이게 무슨 얘기지 막 이러면서 혼자 속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언어 문제는 어떻게 보면 제 입장에서는 좀 다행이기도 했어요. 거리감을 가지고 작업을 할 수 있었거든요.
또 운이 되게 좋았던 게, 직접 질문을 하신 4.3도민연대 선생님들의 역할에 제가 업혀간 측면이 많죠. 제가 질문하는 게 아니니까 제가 원하는 그런 거리감이 형성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촬영은 사실은 인터뷰가 아니었던 거죠(...).
그리고 또 육체적인 괴로움도 있기도 한데요. 물론 이제 무거운 짐을 막 들고 (야외 촬영을) 다니니까 힘든 것도 있는데 그런 건 사소한 문제인 거 같고요. 심리적인 문제와 연계되는 부분인데, 사실 타인의 어떤 고통과 굉장히 무거운 이야기, 어두운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되니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편집을 할 때도 그랬고. 4.3을 직접 경험하신 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긴 한데 그런 측면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김경만 감독)
지난 4월 제75회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4.3평화공원 앞에서 본인들을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라 밝힌 단체 회원들이 추념식을 방해하는 집회를 개최해 논란이 됐다. 최근 제주동부경찰서가 이들 서북청년단의 집해를 방해한 혐의로 4.3 희생자유족회 관계자와 민주노총 제주본부 관계자를 검찰에 송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 정권 들어 4.3에 대한 왜곡이나 부정의 움직임이 고개를 드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앞서 소개한 4.3 유족의 증언처럼 4.3의 진실 규명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이와 관련,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이번 상영회를 공동주최한 제주4.3범국민위원회 백경진 이사장은 이날 4.3의 현안과 관련해 두 가지 사안을 설명했다.
"마침 지난 6월에 집단 학살의 배경이기도 했던 전주형무소 유해 발굴 중간 보고회를 다녀왔는데요. 발굴된 유해들이 아직 식구들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전자 감식이 어렵고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않아서라는데요. 제주에서 발굴된 유해들과 달리 육지에서 발굴된 유해들도 하루 빨리 가족들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최근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이승만 기념관 건립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승만 기념관 건립 반대 운동을 전개 중인데, 여러분들도 함께 동참해 주십사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날 김경만 감독도 애초 4.3 영화를 기획할 당시 가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또 다음 4.3 영화로 비슷한 소재를 고민 중에 있다고 밝혔다.
아트하우스모모의 객석을 가득 채운 이날 상영회는 <돌들이 말할 때까지>의 극장 개봉을 응원하는 동시에 김경만 감독이 또 하나의 4.3 다큐를 제작하기 위한 관객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브런치 등에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결국... 일본, 24일 오염수 방류한다
- 갭투자한 사람들의 실패를 왜 국민이 책임져야 하나
- 박정훈 전 수사단장 측, 임성근 해병1사단장 경찰에 고발
- 대통령실이 빼먹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과거
- 페놀 수백만톤 대기 방출한 서산 현대오일뱅크, 지역사회 충격
- '익명의 시민'이 비치한 호신용품, 이게 말해주는 것
- 윤 대통령의 말에 떠올린 끔찍한 과거
- 계속되는 흉악 범죄, 당정 "전담 교도소·가석방 없는 무기형" 추진
- 의무휴업일 바꿔 명절에 문열겠다는 홈플러스... 노동자들 분통
- 30억 넘게 썼는데 아무도 안 찾는 함양 약초과학관... 12월 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