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이갑성 지사 추모 학술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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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제78주년을 기념하는 연당(硏堂) 이갑성(李甲成) 지사 추모 학술회의가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22일 광복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학술회의는 '3·1운동 배경과 연당 이갑성의 역할'(국립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이태룡 박사), '3·1운동 이후 연당 이갑성의 독립운동'(3·1운동기념사업회장 이정은 박사), '해방 후 연당 이갑성의 삶 재조명'(경희대 교수 허동현 박사) 등 심도 있는 주제가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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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제78주년을 기념하는 연당(硏堂) 이갑성(李甲成) 지사 추모 학술회의가 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22일 광복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연당은 1886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신학교와 세브란스의학교 약학과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의학과를 2년 중퇴했다. 또 종교 지도자를 민족대표로 통합하고 학생들을 규합해 3·1운동의 산파 역할을 했다. 선언서를 서울 등 각지에 전파해 독립만세를 고창하게 한 3·1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혐의로 징역형이 선고돼 서대문감옥에 투옥됐고 출옥한 뒤 1922년 11월 이승훈, 한용운 등과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조직했다.
이후 1925년 흥업구락부 결성, 1926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 1927∼1931년 신간회에서 활약하다 일제 압박에 상하이로 망명했고 제중약국을 경영하며 독립운동을 지속하다가 귀국한 뒤에는 흥업구락부 사건 등으로 수년간 고초를 겪었다.
광복 이후에는 입법의원을 거쳐 1950년 5월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됐고 이듬해 제2대 부통령 선거에서 김성수 후보에게 78대 73으로 패했으며 1965년부터 광복회 초대회장으로 활동한 후 1981년 별세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3·1운동 배경과 연당 이갑성의 역할’(국립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이태룡 박사), ‘3·1운동 이후 연당 이갑성의 독립운동’(3·1운동기념사업회장 이정은 박사), ‘해방 후 연당 이갑성의 삶 재조명’(경희대 교수 허동현 박사) 등 심도 있는 주제가 다뤄졌다.
특히 이태룡 박사는 재판과정에서의 신문조서, 공판진술서를 철저히 분석하고 연당의 제적등본을 당시 경남·전남 유력인사의 것과 비교 분석한 자료를 선보였다. 이정은 박사는 연당의 3·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활동한 행적 가운데 상하이에서의 활동상을 철저히 분석했다. 허동현 박사는 광복 이후 연당의 정치 참여와 광복회 설립 과정의 이른바 ‘밀정설’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다뤘다.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연당의 공적을 기리는 추모의 장을 마련함과 아울러 각종 의혹을 검증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인천=김민 기자 ki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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