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간 소방수만 9번째, 안익수 가고 김진규 대행 체제
[이준목 기자]
프로축구 FC서울이 결국 안익수 감독과 결별하고 김진규 감독대행을 선임했다. 서울 구단은 8월 22일 홈페이지와 SNS 등 공식채널을 통하여 "안익수 감독의 사의를 고심 끝에 수용하기로 했다. 김진규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2021년 9월 FC서울 사령탑에 오른 안익수 감독은 부임 첫해 시즌중에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강등위기에 몰려있던 팀을 극적으로 7위(하위스플릿 1위)로 반등시키며 '익버지', '넷플익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2년 차인 2022시즌에는 9위에 그쳤지만 FA컵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하며 반등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계약 마지막해였던 이번 2023시즌에는 초반 선두권을 달리며 마침내 '익수볼'이 만개하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시즌 중반 들어 성적이 하락세를 그리면서 다시 여론이 악화됐다. 최근 서울은 지난 7월 12일 수원FC에 7대 2 대승을 거뒀지만 이후 5경기 연속 무승(3무 2패)의 부진에 빠졌다. 지난 19일 대구FC와 경기에서 2-2로 비긴 뒤, 안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 도중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안 감독은 사전에 구단과 거취 문제에 대한 교감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FC서울이 최근 부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4위로 상위권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사퇴 소식에 뜬금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구단과 선수단, 팬들 모두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안 감독의 사퇴 발표에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FC서울 측은 논의 끝에 안 감독의 사의를 수용하기로 결정하며 "2년여간 팀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팀으로서의 정신을 고취한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며, 축구인으로서 앞으로의 행보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고 작별인사를 전했다.
안 감독이 서울에서 남긴 족적은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2021년 시즌 중반에 부임하여 기적적인 잔류를 이끌어낸 것과, 몇 년째 혼란스럽던 팀 분위기를 잠시나마 안정시킨 것은 분명히 안 감독이 남긴 업적이다. 하지만 2022시즌부터는 준수한 전력보강과 선수들의 이름값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이어가며 평가가 크게 나빠졌다. 고집스러운 전술과 주전 선수 혹사, 부상 관리 등의 논란도 반복됐다.
안 감독의 퇴진은 서울에 있어서 여러모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안 감독은 K리그에서 손꼽히는 전술가로 불렸지만 베스트 11과 플랜A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약점이 뚜렷했다. 지난해와 올시즌 모두 전반기에는 순항하다가 후반기 들어 상대팀들이 익수볼에 대한 전술적 파훼법을 하나둘씩 들고 나오자 이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답답한 골결정력으로 인한 재미없는 축구, 후반 체력저하로 인한 뒷심 문제 역시 마지막까지 극복하지 못했다.
팬들과의 갈등과 감정적인 사퇴 방식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안 감독은 이미 지난해부터 일부 팬들의 비난과 사퇴 압박에 시달려왔다. 안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던 대구전에서 또다시 무승에 그치자 분노한 팬들이 집단으로 '감독 아웃'콜을 외쳤고, 이에 안 감독이 이례적으로 관중석을 향하여 흥분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안 감독은 곧바로 사퇴를 선언했다.
물론 안 감독이 이날 팬들의 야유 때문에 갑자기 사퇴를 결심했다고 보는 해석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한 사퇴문에서도 암시하듯, 안 감독이 그동안 거듭된 팬들의 비난 여론에 상당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감독의 일방적인 사퇴 방식이 부적절하고 무책임해보인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한편으로 최근 서울 뿐만이 아니라, K리그 전체적으로 비난 걸개, 아웃콜, 버스 가로막기, 트럭시위 등 팬들의 집단행동을 통한 실력행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팬들의 반응을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단지 팬들의 감정적인 분풀이나 선수-감독을 모욕하는 인신공격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서, 자성과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FC서울은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구단이자 최고 인기구단으로 꼽히지만, 2016년 K리그1 우승을 마지막으로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또한 2020년부터 최근 3시즌간은 연속으로 하위스플릿에 머무르며 강등위기를 거듭하는 굴욕을 당했다.
2016년 서울의 최대 황금기를 이끌었던 최용수 감독 1기 이후, 서울을 거쳐간 소방수는 불과 6년 사이에 총 9명에 이른다. 시즌 중 감독 대행만 벌써 5번째다.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2020~2021년 사이에는 무려 6명의 지도자가 번갈아가며 '대행의 대행' 체제까지 등장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는 단지 감독들의 무능만을 탓할 게 아니라 FC서울의 구조적인 문제에 더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은 2010년대 중반 이후 프런트의 일관성없는 운영과 비효율적인 투자로 몰락을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레전드 출신이고 무려 두 번이나 감독을 역임했던 최용수 전 감독조차 구단 프런트의 행태를 비판하고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서울은 최용수, 황선홍, 안익수 등 국내에서 리더십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지도자들이 대거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선수들의 팀워크나 기강 문제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을 만큼 K리그에서 라커룸 장악이 쉽지 않은 대표적인 구단으로도 꼽힌다. 이러한 부분을 모두 간과하고, 그저 감독의 역량 문제로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시행착오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소방수가 된 김진규 감독대행은 서울의 또다른 레전드 출신이다. 서울에서만 두 번에 걸쳐 커리어에서 가장 긴 8시즌을 활약했고, 서울의 유스팀인 오산고 코치와, 안익수 전 감독 체제에서 서울의 수석코치 등을 역임했다.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으로 A매치에도 42경기나 출전했다.
서울이 김진규 감독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소화할지, 아니면 정식 감독을 다시 선임할 때까지 임시로 지휘봉을 맡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김진규 대행은 그동안 안익수 감독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종종 감독대행으로 대신 팀을 이끈 경험이 있어서 낯선 역할은 아니다.
하지만 팀이 최근 무승행진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걸린 치열한 3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1군 지도자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감독대행 체제로 끌고 가야 하는 데 우려의 시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또다시 혼돈의 시기에 접어든 서울에서 김진규 대행이 팬들이 기대하는 소방수 역할을 잘 수행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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