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14살, '생존' 위해 게임을 시작합니다
[이정희 기자]
14살, 어떤 나이일까?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1학년, '자아'를 내세우며 세상에 부조리와 불평등의 잣대를 들이미는 시절.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맞고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그 시기에 홀로 세상에 내던져진다면? 바로 사지드 칸 나시리의 이야기이다.
8월 21일 올해도 어김없이 EBS 국제 다큐영화제, EIDF가 시작되었다. EBS를 통해서 첫 작품으로 <마인드 게임>이 방영되었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사지드 칸 나시리는 엘스 판 드릴, 에프제 블랑크푸르트와 함께 당당하게 감독의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이미 앞서 2022년 EIDF를 통해 소개되고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그림자 놀이>의 후속편이다.
끝이 없는 길
사지드 칸 나시리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4년 전 어느 날 고향을 떠났다. 아버지는 탈레반에게 목숨을 잃었다. 나시리 역시 두 번의 위기를 겪고, 탈레반이 다시 찾아온 어느 날, 어머니는 옷가지를 챙겨 그를 떠나보냈다.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정하지 못한 채 길을 떠난 소년. 그와 같은 소년 망명자들은 그 길을 '게임'이라 부른다. 컨테이너, 택시, 끝도 없는 걷기(패더리), 그리고 강을 건너야 하는 여정은 그의 말대로 흡사 '게임'처럼 보인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곳엔 '진짜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란을 거쳐 튀르키예로 가는 길,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도 없이 홀로 떠나온 시간이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게임처럼 끝도 없이 미션이 이어지는 망명의 시간, 그건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아직 14살에 불과한 소년 나시리는 이건 나 자신과의 게임이라며, '억지로라도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자신을 북돋운다.
그리스에 도착, 데살로니카 난민 캠프에서 엘스와 에프제를 만나 영화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자신을 'SK'라 소개하는 나시리는 망명의 끝없는 여정을 자신의 핸드폰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 마인드 게임 |
ⓒ EBS |
국경을 넘는 건 말 그대로 목숨을 거는 일이다. 여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산에 버려지기도 한다. 강을 건너다 익사하기도 한다. 경찰은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고, 원주민들은 몽둥이를 들고 난민캠프에 몰려와 망명자들을 내쫓는다. 시계도, 돈도 빼앗기기가 일쑤다. 난민 캠프에서는 캔 참치면 감지덕지, 그래도 소년들은 '닭고기가 먹고 싶어요'라며 웃는다.
코로나는 이들의 여정을 더욱 막막하게 만들었다. 국경은 더욱 견고하게 봉쇄됐다. 그런 가운데 망명 루트를 제공하는 이른바 '밀수업자'들이 정한대로 그들은 떠나야 한다. 1년간 함께 했던 친구 '와카스'와도 헤어졌다. 친구와 함께 가고싶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다. 혼자가 된 외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건 오직 SK 자신의 몫이다.
"너무 속상하지만 울지 않아요. 언젠간 해내리라 믿어요. 도착하면 편해지겠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거예요."
열흘씩 연락이 두절됐다가 다시 어렵다시 연락이 된 두 감독에게 나시리는 말한다. "반가워요. 그래도 내가 죽으면 궁금해 할 이들이 있어서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아 줄 사람이 있잖아요."라고.
다시 컨테이너 게임을 하게 된 나시리, 물 한 병이랑 비스킷 하나, 그리고 소변 볼 병 하나로 사나흘을 버텨야 한다. 그렇게 헝가리로 향하지만, 잡혀서 쫓겨난다. 열까지 나는 상황, 그러나 나시리는 다시 도전한다.
▲ 마인드 게임 |
ⓒ EBS |
희망은 쉬이 오지 않았다
다큐 <마인드 게임>은 나시리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브뤼셀의 난민 캠프에 머무는 나시리. 하지만 정작 망명지에 온 그는 스트레스로 잠도 못자고, 두통이 심해 학교에 결석하는 일도 잦단다. 희망의 땅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4살에 집을 떠난 나시리는 어느덧 17살이 되었다. 유럽 연합 규정에 따라 미성년이라면 후견인 지원, 학교 진학 등 여러가지 편의가 주어진다. 나시리도 다양한 혜택을 받고 싶지만 이제 8개월만 있으면 18살이다(18살이면 나시리는 미성년이 아니게 된다).
망명 절차를 통과 못한 친구 마지드는 결국 기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형제들이 탈레반에게 목숨을 잃어 고향을 떠나온 그는, 고향을 떠나온 후 매일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며 힘들어했다.
나시리는 이제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새로 배워야 한다. 영어도, 네덜란드어도 할 줄 알아서 통역사가 되겠다는 그다. 하지만 난민 캠프의 어수선한 상황이 좀처럼 힘들다. 언제 또 누가 떠날지, 누가 죽을지 알 수 없다.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 상황과 어머니와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도 그를 힘들게 한다.
그래도 나시리는 2차 인터뷰를 거쳐 드디어 체류가 가능한 난민 자격을 얻게 되었다. 드디어 자신이 홀로 생활할 수 있는 아파트도 생겼다. 모든 것을 얻은 듯 행복하지만, 그곳을 함께 꾸며주겠다던 친구 마지드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신처럼 생명을 건 '게임'의 여정에 오른 수 천명의 미성년자가 떠오른다.
나시리가 떠나가는 난민 캠프 앞, 여전히 난민 자격을 얻지 못해 앞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는 망명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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