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가 김범의 작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김형순 기자]
▲ 이태원로 삼성 '리움미술관' 입구 로비에 설치된 영상 작품 |
ⓒ 김형순 |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김범(1963년생)의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이 삼성 리움 미술관에서 12월 3일(일)까지 열린다. 30여 년간 작업한 작품을 관통하는 그의 총괄적 서베이 전시다. 그동안의 '변신술'을 엿볼 수 있다. 야심작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전시장 곳곳에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총 70여 작품이 선보이게 된다.
그는 특히 90년대 한국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작가이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전시가 열리지 않다 보니 관객도 잘 모른다. 그래서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도 그는 소리소문없이 유명하다. 그가 작가들에게 영감을 많이 주는 작가라고 평가를 받아선가? 하여간 자신의 모습이 외부에 나가는 걸 꺼린다.
미술관 자료에는 "그는 특유의 재치로 우리를 웃게 하지만, 툭 던진 농담 속에 의미심장한 이미지가 담겨 있어, 성찰의 장을 열어주고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한다. 그의 작업은 볼거리는 없지만 오래 보고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감상법을 요구한다"라고 기술돼 있다.
미술관마다 이제 달라진 관객의 눈높이를 어떻게 맞출까?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리움미술관도 예외는 아니다. 눈요기가 별로 없는 이번 전시도 일종의 모험이다. 지난번 카텔란 전시가 큰 흥행 속 논쟁도 일으켰는데, 그런 성공 후 후유증이 올까 염려하고 있는 것인가?
▲ 김범 I '청사진과 조감도' 연작 2009. '매일홀딩스' 소장. 여기 8점은 등대 배선도(조감도), 설계안, 첩보선 등. 감시장치로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폭군을 풍자한 김범의 상상도다. 이런 작품을 감상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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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도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이 기획했다. 지난번 카텔란 전시와 맥락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 기존의 사유를 낯선 개념으로 유머러스하게 재치 있게 전복시키는 전시다. 그동안 김범 전시는 국내에서 만나볼 기회가 없었기에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하다.
김범 작가, 오래 생각하고 작업은 적게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전시도 적다. 이번 전시도 13년 만이다. 100번을 생각한 후 1개 작품을 그린다고 할까. 전시도 복잡한 불교사상을 한 줄에 요약하는 '선불교' 같은 그런 방식이다. 흔히 말하는 '선정주의'와 '인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 김범 I '무제(친숙한 고통 #13)' 캔버스에 아크릴 491×348.5cm 2008 홍콩 M+ 소장. 아래(오른쪽), 퍼즐 확대한 모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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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약 화가가 된다면, 일상에서 부딪치는 난관을 시각화할 수 있을까? 대상을 그리는 게 아니고 삶의 과정을 그린다면 더 고민이 될 것 같다. 소설로 쓰는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이 작품은 일상사를 다루는 중국 고전 <주역>의 괘를 연상시킨다. 삶의 미로를 찾아가는 퍼즐 방식으로 그렸다. 하여간 제목 '친숙한 고통'은 그럴듯하다.
이 시리즈 작품 총 13개다. 그중 몇 점이 이번에 소개되었다. 소품도 있고 위에서 보듯, 미술관 천장까지 닿는 대작도 있다. 작품이 커지면 작업 난도가 높아진다. 하긴 일상에서 발생하는 난관도 작은 일, 큰 일이 있다. 위 작품을 보면 이 작가가 얼마나 꼼꼼하고 치밀하고 계산적인지 알 수 있다. 구체적 삶과 추상적 도상을 긴밀하게 연결시켰다.
▲ 김범 I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 돌·나무·무대 탁자, 12인치 평면 모니터, 단채널 비디오, 87분 30초, 2010. 제도교육에 대한 촌철살인 같은 풍자인데 우리 학생들의 슬픈 초상화를 형상화했다. |
ⓒ 김형순 |
이제 참담한 한국 입시교육을 풍자한 '교육된 사물들'을 보자. 이런 이슈가 미술에서 주제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위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을 보면 기가 막힌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학생은 자신을 '새'라고 생각하는데, 학교에서는 '돌'이라고 부르는 87분 영상도 같이 반복된다. 공부에서 소외되는 학생을 상징한다. 제목이 '이오네스코' 부조리연극 대사 같다.
▲ 김범 I '교육된 사물들' 시리즈 자신이 도구에 불과하다는 걸 배우는 사물들(저울, 화병, 선풍기, 커피포트, 물뿌리개, 스프레이 살충제) 등 학생처럼 교실 의자에 앉아 있다. 여기서 영상(왼쪽)은 주입식 교육을 상징한다. |
ⓒ 김형순 |
여기 교실 풍경, 학생 대신 저울, 화병, 선풍기 등 사물이 의자에 앉아 있다.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학교는 애시당초 감시하기 좋게 지워져 왔다. 마치 감옥이나 군대나 병원처럼. '미셸 푸코'의 <감옥의 탄생>이 그런 책이다. 학교는 한국사회의 모순이 집결된 축소판이다. 거기서 날마다 일어나는 공부라는 폭력장치에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게 길들어져 있다.
▲ 김범 I '자화상' 종이에 연필, 단추 캔버스 102×76.5cm 1994 |
ⓒ 김형순 |
위는 김범의 90년대 오브제 아트로 만든 '자화상'이다. 종이에 구멍이 많이 나 있다. 이런 시도는 작가 자신에 대한 오랜 숙고의 과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려 한 것 같다. 또 자신을 현실과 이상이 충돌하는 중간지대를 넘어서려는 의도도 보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마음의 창문을 열어젖히고 자신 내면의 속내를 찢거나 덮어서 뚫거나 구멍을 낸다.
이런 자화상은 김범이라는 이름만큼 특이하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모든 이들이 기존의 틀을 벗어나 변신술을 발휘해 자기 나름의 자화상을 상상하라고, 더 본질적인 자신을 가볍게 엉뚱하게 장난스럽게 그려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이밖에도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What you see is not what you see)"라는 그의 말을 증명하듯 <다리미 모양의 '주전자', 라디오 모양의 '다리미', 주전자 모양의 '라디오'> 같은 오브제 작품도 눈길을 끈다. 미술이란 원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닌가.
▲ 김범 작가의 출판물 '변신술' 1997. 이 중에 '바위가 되는 법' 문장이 나온다 |
ⓒ 김형순 |
이번에 김범의 아티스트 북 <변신술>(1997)도 소개된다. 이게 수필인지, 아포리즘인지, 단상집인지 모르겠다. 작가 어머니는 유명한 '김남조' 시인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시적 분위기가 난다. 그는 삽화와 비디오 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뛰어나온 사유를 개념어 사전처럼 만든 것 같다. 이번 전시 제목 '바위가 되는 법'도 여기서 발췌한 것이다.
▲ 김범 I '노란 비명 그리기',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1분 6초 2012 |
ⓒ 김형순 |
끝으로 '노란 비명 그리기' 작품을 소개한다. 이 영상은 어느 미술 강사(작가는 아니다)가 노란색이 주조로 한 추상화를 그리는 기법을 설명한다. 그런데 색 중심이 아니라 소리 붓으로 비명을 질러 화폭을 채운다. 전자회화가 사운드와 모바일과 이미지가 그리듯, 이제 회화도 색만 아니라 괴성과 몸짓도 등 오감이 다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가보다.
이걸 보면서 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창작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풀었다고 할까. 잡히지 않는 이상과 포착하기 힘든 실험에 매진해보려는 예술가의 몸서리치는 모습이 보는 듯하다. 회화 작업의 관성을 뒤집고 그 비상구를 찾아보려는 작가의 절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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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1] 작가와 ‘토크 프로그램’ 리움미술관에서 2023년 9월 7일 오후 3시부터 4시 반까지. '김성원' 부관장, '주은지'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큐레이터와 함께 대담한다. [2] 관람예약: 리움미술관 홈페이지(www.leeum.org) (관람 2주 전 온라인 예약) * 사전 예약 후 관람 가능하며 현장 발권도 가능 단, 전시장 혼잡 시 지연 가능 [3] 관람 시간: 10:00~18:00 (매표 마감 17:30) 휴관 : 매주 월요일, 추석 당일 [4] 위치: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5길 60-16 [5] 문의: 02-2014-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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