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준법위 권고는 권력을 향한 경고다

신범수 2023. 8. 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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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운명이 요동친 건 2015년 '7개 기업 회장 독대 사건'이 출발이다.

이 땅에 정경유착의 역사는 길지만 그해 7월 24일(현대차·CJ·SK)과 25일(삼성·LG·한화·한진) 이틀간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과 대기업 회장 간 만남은 자본과 권력이 어떤 언어로 결탁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제단체라는 조직은 어떻게 기능하는지,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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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운명이 요동친 건 2015년 ‘7개 기업 회장 독대 사건’이 출발이다. 이 땅에 정경유착의 역사는 길지만 그해 7월 24일(현대차·CJ·SK)과 25일(삼성·LG·한화·한진) 이틀간 진행된 박근혜 대통령과 대기업 회장 간 만남은 자본과 권력이 어떤 언어로 결탁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제단체라는 조직은 어떻게 기능하는지,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재판 과정에서 낱낱이 공개됐으니 자세한 서술은 생략한다. 핵심은 권력·자본·조직 3개 축이 수행한 역할을 각각 무엇이라 정의할지다. 의심의 여지 없이 주연이자 가해자는 권력 즉 박근혜 청와대였다. 기업은 꼬임에 넘어가 돈을 뜯긴 피해자이며 이를 중재한 브로커가 전경련이다.

시각에 따라 이런 규정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의 의도는 피해자 코스프레 식으로 기업을 옹호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기업이 정치권력의 은밀한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여 범죄에 가담하고, 그 일로 이익을 기대한 것이 분명하므로 죗값을 치러야 함은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아픈 곳을 자극해 불법 거래의 판을 벌인 주범은 권력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하려는 것뿐이다.

그런 면에서 18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발표한 권고 문구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준법감시위는 전경련에 정경유착 행위가 있을 경우 (삼성이) 탈퇴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전경련이 정경유착 고리를 완전히 단절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였다.

준법감시위의 조건은 자신이 감시해야 할 대상인 삼성에게 제시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 시대의 정경유착이 기업 스스로 의지에 의해서라기보다, 기업을 마땅히 동원해도 되는 도구 정도로 여기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싹틀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브로커 역할을 맡는 전경련이란 조연급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할 주도적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준법감시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준법감시위의 경고는 기업도, 경제단체도 아닌 정치권력이 정경유착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넓게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전경련이 가진 막대한 해외 네트워크 장점은 대체할 수 없으며, 이를 통해 기업을 돕는 것이 전경련의 존재 이유"라고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은 말했다. 이 말에 공감하는 기업은 조직을 활용하고 반대 경우라면 가입 안 하면 그만이다. 이것은 자유로운 경영활동의 영역이지 여론이나 권력의 눈치를 봐가며 결정해야 할 만큼 중차대한 일이 아니다.

민간기업의 경영에 개입하고픈 유혹, 사정기관을 앞세워 정권에 협조하도록 압박하는 관행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극을 거친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정경유착 고리의 단절은 전경련이 ‘정치·행정권력의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배격하겠다’는 다짐을 혁신안에 넣는다고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필연코 깨어있는 시민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 스스로 뼈를 깎는 성찰과 자기혁신의 각오 없이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교훈을 전경련이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는 오늘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신범수 편집국장 겸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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