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은행장이 책임져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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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금융당국에서 수십 년 녹을 받아온 고위공직자들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이다.
"한번 터진 비리는 일탈이지만 반복되는 비리는 친분에서 비롯된다." "은행 영업부서는 실적이 지상과제이고 책임은 뒤로 미룬다." 수년간 은행 비위 행위를 적발했던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부통제가 무너지는 이유가 잘못된 조직 문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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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금융당국에서 수십 년 녹을 받아온 고위공직자들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이다. 은행에서 터지는 횡령(경남은행), 명의도용(대구은행), 내부정보 빼돌리기(국민은행) 같은 사건을 두고서다. 그들은 어째서 라떼 시절을 떠올리는 걸까. 옛날 은행원들이 청렴결백해서는 결단코 아니다. 지금보다 물가가 훨씬 낮았던 십수 년 전에도 수백억원대 금융사고가 심심찮게 터지곤 했다. 태도가 바뀐 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금융지주 회장 혹은 은행장의 대응이 180도 달라졌다. "나는 몰랐다. 진짜 내가 책임져야 하는지 법원에서 따져보자"는 게 요즘 분위기라면 "내가 몰랐어도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게 과거의 자세였다.
21세기 이후만 살펴봐도 금융사 CEO들의 자진사퇴 기록이 줄줄이 나온다. 2003년 위성복 조흥은행장(670억원대 무역금융 사기), 2009년 황영기 KB금융회장(1조원대 파생상품 투자 손실), 2014년 김종준 하나은행장(KT ENS 부실대출)과 이건호 국민은행장(100억대 국민주택기금 횡령)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러났다. 해외는 더했다. 미국 웰스파고 은행은 2016년 200만개 유령계좌 사태로 CEO가 물러나고 이사진 전원을 재선출했다.
"한번 터진 비리는 일탈이지만 반복되는 비리는 친분에서 비롯된다." "은행 영업부서는 실적이 지상과제이고 책임은 뒤로 미룬다." 수년간 은행 비위 행위를 적발했던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부통제가 무너지는 이유가 잘못된 조직 문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건 직원이 구속되고 소속 본부장이 잘린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조직의 몇몇 사람은 도려내면 되지만 조직 내 뿌리 박힌 인식은 도리가 없다. 똑같은 사고가 또 터지지 않으리란 장담을 하기 힘들단 의미다. CEO의 역할은 경영환경을 바꾸는 거다. CEO에게 면죄부를 주면 결국 꼬리 자르기로 끝날 수밖에 없다.
금융사고는 은행에 세 가지 피해를 준다. 먼저 투자손실 배상이다. 가장 직접적이며 규모도 큰 손실이다. 국내 은행들은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 사태 이후 투자원금의 최대 80%를 반환해줘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두 번째는 주가 하락이다. 신뢰가 기본인 은행의 평판에 금이 가면 주가가 떨어진다. 지난해 700억원 횡령 사건이 터진 우리은행만 봐도 그렇다. 우리금융지주 주가는 지난해 4월 사상 최고치를 찍었지만 그해 7월 사고 이후 곤두박질쳤다. 회장까지 바뀌었으나 주가는 1년째 고만고만하다. 세 번째는 장기 수익 창출 능력 소멸이다. 대형 사고가 적발되면 당국은 검사를 대폭 강화하고 은행의 영업활동은 제한된다. 당연히 은행의 장기 비전은 뒷전으로 간다.
은행의 내부통제는 원인을 찾아 처방을 내리고 전사적인 집행을 거쳐 이뤄진다. 분석과 처방은 CEO가 임직원들과 함께하고 의견을 들어야 하지만, 집행에서 CEO의 무게는 다르다. CEO는 집행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하는 존재다. 터진 사고를 조사해 재발 방지 매뉴얼을 만드는 게 CEO 몫의 전부가 아니다. 분석과 처방이 아무리 옳아도 집행이 제대로 안 되면 말짱 꽝이다. 그래서 CEO가 중요하다. 금융당국이 'CEO는 조직적·장기적·반복적 또는 광범위한 문제 발생 시 책임을 져야 한다'(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며 퇴로를 막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필사즉생(必死則生)은 400년이 지나도 먹히는 말이다.
심나영 경제금융부 차장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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