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 처리만 3천만원" 폭발 위험에도 상괭이 죽음 쫓는 수의사

천권필 2023. 8.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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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이영란 플랜오션 대표가 충남 태안의 한 수산물 가공 창고에서 죽은 상괭이를 부검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여기 골반이 보이죠? 상괭이가 원래 육상에서 살던 동물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흔적이죠. 바다로 오면서 뒷다리는 사라지고 골반만 남은 거예요.”
18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의 한 수산물 가공창고. 상괭이 사체를 부검하던 이영란 플랜 오션 대표가 작은 뼛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국내에 몇 안 되는 해양생물 전문 수의사인 그는 15년째 고래 사체를 부검하고 있다. 이날도 그는 새벽에 전남 고흥과 부산의 해변에서 상괭이 사체가 연이어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이곳으로 와 부검을 진행했다. 토종 돌고래로 알려진 상괭이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서해와 남해에 주로 서식한다.

18일 상괭이 사체를 부검하기 위해 충남 태안의 한 수산물 가공 창고로 옮기는 모습. 천권필 기자

발견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더운 날씨 탓에 사체에서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악취가 났다. 에어컨도 없는 부검실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도 그는 상괭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차분히 사체 이곳저곳을 살폈다. 곧이어 상괭이의 위에서 50㎝ 크기의 물고기가 소화도 되지 않은 채로 발견됐다. 이 대표는 “상괭이의 몸에서 이렇게 큰 물고기를 발견한 건 처음”이라고 놀라면서도 “큰 먹이를 사냥해 먹었을 정도면 죽기 직전까지 상괭이의 건강 상태가 나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8일 상괭이 사체에서 발견된 물고기. 천권필 기자

한 시간 넘게 부검이 진행됐지만 결국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이 대표는 “혼획(어획 대상종에 섞여서 다른 물고기가 함께 잡히는 것)으로 인한 질식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도 “여름철이다 보니 너무 더워서 부패가 빨리 일어났고 많은 정보를 알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고래 부검해보니…혼획에 질식사, 쓰레기에 위 막혀


18일 이영란 플랜오션 대표가 충남 태안의 한 수산물 가공 창고에서 죽은 상괭이를 부검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이 대표가 고래 부검의가 된 건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고래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서다. 특히 상괭이는 자산어보에 ‘상광어(尙光漁)’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토종 돌고래지만 혼획과 오염 등으로 인해 개체 수가 급감하는 추세다. 국립수산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근해에 서식하는 상괭이 개체 수는 2005년 3만 6000마리에서 2016년 1만 7000마리로 절반가량 줄었다.

Q : 10년 넘게 고래 사체를 부검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A : “제일 첫 번째는 왜 죽었는지를 아는 거지만 그거 말고도 (사체에는) 이 개체가 사는 바다에 대한 정보가 있어요. 지방층에 어떤 오염 물질 같은 게 있는지를 검사해서 바다가 지금 얼마나 깨끗한지 등 주변 바다 환경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거죠.”

상괭이. 국립생물자원관

Q : 상괭이 같은 경우에는 주로 어떤 이유로 죽나

A : “상괭이를 부검하면 질식사가 많이 나오는데요. 상괭이는 포유류라서 우리랑 똑같이 폐호흡을 해야 하고, 폐호흡을 하려면 물 위에 나와서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물에 걸리면 숨을 못 쉬고 질식사하는 거죠.

Q : 가장 기억에 남는 부검 사례는

A : “제주도에서 뱃머리 돌고래를 부검한 적이 있는데 얘네들이 위가 세 개 있어요. 그런데 첫 번째 위를 봤더니 거기에 한 1m 정도 되는 비닐 코팅된 종이가 있었고 거기가 막히면서 음식물 소화를 못 시켰어요. 그렇다 보니 오랫동안 먹이 사냥도 못 하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체 확보부터 처리까지 난관…“처리 비용만 최대 3천만 원”


2019년 제주에서 발견된 참고래 사체. 제주해경
고래가 대형 포유류이다 보니 사체를 구하는 것부터 부검 후 처리까지 난관이 적지 않다. 비용이 많이 들어갈뿐더러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부검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 대표는 “부검을 마친 고래 사체는 의료 폐기물로 분류돼 소각 처리해야 한다”며 “예전에 제주에서 참고래를 부검한 적이 있는데 처리비로만 2~3천만 원이 들었다. 예산 지원이 없으면 고래 부검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 고래가 죽고 나면 지방층이 밀폐 용기 구실을 하기 때문에 부패 과정에서 내장에 메탄가스가 차서 폭발할 위험도 있다.

이런 난관에도 이 대표는 고래의 죽음에 대해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며 단순히 고래를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라도 부검 연구를 계속할 거라고 강조했다.

“부검을 통해 고래가 어떻게 살고 어떤 일이 있을 때 못 살게 되는지에 대한 지도를 그리고 싶어요. 우리가 같이 사는 바다에서 고래들이 왜 죽어가는지를 알아야 인간한테 올 수 있는 (위협을) 막을 수 있어요.”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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