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차 제치고 납품하더니…폴란드 급히 韓 K2 사들인 사연 [Focus 인사이드]

남도현, 심정보 2023. 8.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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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있었던 역전패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말레이시아의 신예 전차 도입 사업 당시 일화다. 노후한 20여 대의 FV-101 경전차로 구성된 말레이시아의 기갑전력은 주변국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다못해 조호르 해협 건너의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보다도 뒤졌을 정도였다. 비록 아세안(ASEAN)이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어도 말레이시아는 이웃 국가들과 역사적으로 치열하게 경쟁을 벌여왔기에 유사시를 대비한 군비를 갖추어야 했다.

말레이시아가 사업을 개시하자 러시아의 T-90, 우크라이나의 T-84 등이 참여해 경쟁을 벌였다. 이때 가장 호평받았던 후보가 한국이 제시한 K1이었다. 양국 간 양해각서까지 작성했을 정도였으나, 정작 폴란드의 PT-91이 최종 승자가 됐다. 성능에서 K1이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가격에서 밀렸던 것이 패인이었다. 아무래도 말레이시아의 무난한 안보 환경과 경제력을 고려했을 때 가격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K1과의 경쟁에서 이겨 말레이시아군이 운용한 최초의 MBT PT-91M. 폴란드가 면허 생산한 T-72를 기반으로 개발한 3세대 전차다.


냉전 시기 소련은 T-72의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면허 생산시켜 바르샤바 조약국과 친소 국가에 공급했다. 이처럼 폴란드는 기반이 갖추어진 상태였기에 냉전 종식 후 T-72의 성능 개량에 나섰다. 그렇게 탄생해 1995년부터 폴란드군에 배치된 3세대 전차가 바로 PT-91이다. 많은 신기술이 접목돼 당시 최강의 T-72로 평가받았고 전혀 별개의 전차로 구분되기도 한다.

말레이시아 사상 최초의 MBT(주력전차)로 채택된 PT-91은 2009년까지 48대가 완납됐다. 그런데 K1을 제치고 역전타를 날렸지만, PT-91은 폴란드군에 공급된 233대를 합해 총 281대를 끝으로 양산이 종료됐다. 냉전 종식 후 독일이 여유로 보관하던 250대의 레오파르트 2A4를 염가에 넘겨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획득한 독일제 전차가 PT-91보다 성능이 뛰어났기에 더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레오파르트 2A4를 개량한 폴란드군 소속 레오파르트 2PL. 그런데 독일의 협조가 지지부진해서 개량 사업에 차질이 벌어지던 중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폴란드는 전격적으로 국산 K2 전차의 도입에 나섰다.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중핵이었던 폴란드가 국제 정세의 변화로 말미암아 나토(NATO)의 최전방이 되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군비 감축이 시작하자 그 정도 기갑전력이면 충분할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다가 2010년대 들어 폴란드는 레오파르트 2의 현대화 사업과 별개로 미국으로부터 250대의 M1 에이브럼스를 도입하면서 기존 T-72와 PT-91을 순차적으로 도태하기로 결정했다.


세 나라의 묘한 인연

그러던 중 2022년 2월 24일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폴란드의 계획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가장 오랫동안 러시아의 지배와 간섭에 시달려 온 폴란드에게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즉각 T-72, PT-91의 공여가 이루어졌다. 폴란드에서는 도태가 예정됐어도 우크라이나군이 별도 교육 없이 곧바로 운용이 가능한 전차였기 때문이었다.

폴란드 국군의 날 행사에 등장한 K2 전차. 취합된 각종 정보에 따르면 폴란드군의 만족도가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진다. 폴란드 국방부


그런데 레오파르트 2의 개량 사업이 독일의 비협조로 지지부진한 데다 미국의 사정으로 M1의 공급이 2025년 이후 완료할 것으로 예상하기에 폴란드군의 전력 공백 우려가 커졌다.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것이 K2다. 성능도 뛰어나지만, 계약이 이루어진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폴란드군이 운용을 개시했을 정도로 조속히 납품이 가능한 유일한 서방 전차이기 때문이었다.

20여 년 전에 PT-91이 말레이시아에서 K1을 누르고 승자가 됐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K2가 폴란드를 지키는 방패가 된 것이다. 보도 등을 종합하면 폴란드군이 K2에 상당히 만족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폴란드군이 당대 최고라 할 수 있는 T-72(PT-91 포함), 레오파르트 2, M1을 모두 운용해 보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 인사치레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증거가 지난 8월 15일에 바르샤바에서 있었던 폴란드 국군의 날 행사다.

냉전 종식 이후 폴란드군이 실시 한 최대 규모 군사 퍼레이드의 대미를 장식한 K9 자주포. 폴란드 국방부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지면 통상적으로 가장 중시하는 무기가 마치 주인공처럼 나중에 등장한다. 이번 행사에서 대미를 장식한 것이 순서대로 K2 전차, 보르숙 보병전투차, K9 자주포다. 올해부터 양산을 시작한 보르숙은 향후 K2와 팀을 이루어 작전을 펼치기로 예정된 폴란드의 국산 보병전투차다. 이처럼 폴란드가 자랑하고 싶은 무기의 앞과 뒤에서 국산 K2, K9이 행진했다는 것은 그만큼 폴란드의 만족도가 상당하다는 증거다.

폴란드 국방의 날 시가행진 때 바르샤바 상공에서 FA-50 경공격기 편대가 MiG-29를 따라 날고 있다. 이는 폴란드 공군이 M-G-29를 FA-50로 대체하려 한다는 걸 나타낸다. 폴란드 국방부


더해서 이번 행사에 처음으로 유럽에 수출된 FA-50 경공격기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MiG-29의 퇴출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FA-50은 폴란드군의 구매 덕분에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성능 개량 사업이 이루어지게 됏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모델이 최근 말레이시아의 경전투기·고등훈련기 사업의 승자가 되었다. 우리와 폴란드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묘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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