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협상 막바지 타결됐다, 전례 드문 한·미·일 재무장관 회의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와 관련, 막바지에서야 타결된 공동성명의 문구가 하나 있다. 3국 정상의 포괄적 공동성명인 ‘캠프 데이비드 정신’에 담긴 “아울러 우리는 첫 3국 재무장관 회의를 개최할 것”이란 문장이다.
통상 주목받아온 북핵 위협이나 중국을 겨냥한 메시지가 아니었지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1일 “3국 경제안보 협력의 주춧돌을 놓은 의미가 있다”며 “협상의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문구였다”고 말했다. 독자 행보로도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국 재무부가 경제 정책과 관련한 3국 협의체를 만든 전례 자체가 드물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도 이날 오후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금융의 안정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를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요소”라며 “전 세계 금융계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한·미·일 재무장관 회의 개최일 것”이라고 자평했다.
“경제와 안보가 하나가 된 시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주장해 온 ‘경제 안보’의 핵심 요지다. 외교가에선 이번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윤 대통령이 그려왔던 ‘경제 안보’ 협력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루뭉술하고 모호했던 ‘경제 안보’란 용어가 3국 재무장관 협의체와 같은 결과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도 21일 국무회의에서 “3국이 기존에는 안보 영역에만 제한적으로 협력했지만,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안보, 경제,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포괄적 협력체계를 제도화하고 공고화했다”고 말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정신(spirit)·원칙(principles)·공약(commitment)’으로 명명된 세 가지 문건 중 ‘정신’과 ‘원칙’엔 경제안보와 관련한 구체적 성과물이 담겨있다. ‘정신’ 문건에 담긴 ▶3국 산업·상무장관 연례 협의체 출범 ▶3국 공급망 조기 경보시스템 시범가동 ▶첨단기술 해외탈취 협력 강화 ▶미국 혁신기술 타격대와 한·일 상응 기관의 교류 실시 ▶군사기술 전용 방지 위한 수출 통제 강화가 대표적이다. 3국의 장기적 협력 지침을 다룬 ‘원칙’ 문건에도 ▶ 3국 간 핵심·신흥기술의 개발과 이용 관련 표준 관행과 규범 발전 모색 ▶금융 안정과 질서 있는 금융시장 촉진을 위한 공정한 경제 관행 추구 등의 내용이 들어갔다. 대통령실은 이번 합의물이 3국 역사상 역대 최초라는 점과 향후 실무진 간 구체적 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왕윤종 경제안보비서관은 지난 18일 미국 현지 브리핑에서 “한·미·일 3국이 공급망 측면에서 관심을 갖는 국가와 품목을 선정해 협의 채널을 만들었는데 이런 형태의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전 세계에서 처음”이라며 “첨단기술 탈취 방지를 위한 3국 공조 방안도 마련됐다”고 말했다. 왕 비서관은 미국의 첨단 기술 유출 방지 업무를 맡는 ‘혁신기술 기동타격대’와 관련해서도 “기동타격대를 벤치마킹해서 날로 교묘해지는 첨단기술의 탈취행위를 방지할 수 있을지 여러 차례 접촉을 해왔고 이번 정상회의에서 관련 사업이 채택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미국이 자신의 기술유출 방지 관련 노하우를 다른 나라와 공유하는 것 자체가 최초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경제안보와 관련해 구체적 성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로 한·일 관계의 복원을 들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상 간 셔틀외교로 한·일 관계가 복원된 뒤 3국 안보실장 회의에서 ‘경제안보와 관련해 내실 있고 구체적 실행이 가능한 이슈에 집중하자’는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미·일 협력이 지속가능하려면 국민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줘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경제안보 협력은 윤석열 정부가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3국 간 공급망 협력과 기술탈취 등 경제안보 협력 사안 대부분이 중국을 겨냥한다는 해석이 나와 ‘한·중 관계’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 전직 고위 관계자는 “미·일과 경제안보 협력이 강화될수록 우리가 중국과 외교를 할 공간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라며 “경제안보는 양날의 검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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