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두 ‘카르멘’, 대중극과 현대적 감수성 사이 어디쯤?

장지영 2023. 8. 2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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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프로스메르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은 1845년 출간 당시 약간의 성공을 거두는 데 그쳤다.

여주인공 카르멘이 불멸의 명성을 가지게 된 것은 1875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덕분이다.

두 '카르멘' 모두 쉽고 재밌는 대중극을 표방한 가운데 소설 및 오페라 속 여성 폭력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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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9일 서울시오페라단, 광화문 야외무대서 무료 공연
9월 8일~10월 1일 서울시극단, 고선웅표 치정멜로극 강조
2018년 이탈리아 피렌체 마지오 극장에서 선보인 ‘카르멘’은 카르멘을 교제 폭력의 희생자로 묘사했다. 특히 돈 호세가 카르멘을 죽이는 결말 대신 카르멘이 정당방위로 돈 호세를 죽이는 것으로 바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피렌체 마지오 극장

프랑스 소설가 프로스메르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은 1845년 출간 당시 약간의 성공을 거두는 데 그쳤다. 여주인공 카르멘이 불멸의 명성을 가지게 된 것은 1875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덕분이다. ‘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 등 주옥같은 아리아들로 가득 찬 오페라 ‘카르멘’은 인기 있는 오페라 최상위권에 늘 랭크돼 있다.

소설 ‘카르멘’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답사하던 고고학자인 작중 화자가 우연히 탈영병 출신 도적 돈 호세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액자형 구조다. 돈 호세는 카르멘의 미모에 반해 상관을 죽이고 탈영해 밀수조직에 가담하지만, 카르멘에게는 이미 남편 가르시아가 있었다. 이후 가르시아와 밀수조직 두목까지 죽인 돈 호세는 카르멘과 투우사의 관계를 질투해 카르멘까지 죽인다.

소설과 비교해 앙리 메이야크와 뤼도비크 알레비가 쓴 오페라 대본은 액자 이야기를 없애는 동시에 잔인한 부분을 상당히 걷어냈다. 카르멘의 난폭한 남편 가르시아 역할을 빼는 한편 돈 호세의 착한 약혼녀 미카엘라 역할을 새롭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 오페라 속 돈 호세는 소설과 달리 상당히 순진하게 그려졌다.

카르멘은 오페라의 인기와 함께 남자를 유혹해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의 대명사가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카르멘에 대해 구속을 거부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보는 해석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돈 호세가 카르멘을 죽인 뒤 울부짖는 장면은 비극적인 사랑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오페라 ‘카르멘’을 데이트 폭력 및 교제 살인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2017년 미투 운동이 나온 이후 유럽에서는 오페라 속 여성 폭력은 질렸다며 ‘카르멘’을 새롭게 연출한 버전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이탈리아 피렌체 마지오 극장에서 레오 무스카토 연출 ‘카르멘’은 카르멘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돈 호세를 몸싸움 끝에 죽이는 정당방위로 결말을 바꿨다. 또 같은 해 영국 로열 오페라의 배리 코스키 연출 ‘카르멘’에선 돈 호세에게 죽임을 당했던 카르멘 조명이 꺼지고 무대막이 내리기 직전 일어나서 관객을 바라보고 어깨를 으쓱한 뒤 퇴장하는 것으로 바꿨다. 여성 살해로 끝나는 오페라를 풍자한 것이다. 또 올해 스코틀랜드 오페라의 존 풀제임스 연출 ‘카르멘’은 돈 호세가 경찰서에서 수사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돈 호세가 카르멘을 죽인 채 끝나버리는 엔딩 대신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조한 것이다.

서울시오페라단과 서울시극단은 9월 8일 나란히 ‘카르멘’을 선보인다. 두 단체의 포스터.

오는 9월 8일 세종문화회관 소속 서울시오페라단과 서울시극단이 나란히 ‘카르멘’을 올린다. 9일까지 이틀간 광화문 광장에서 무료로 선보이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카르멘’은 공연시간 3시간 정도의 원작을 70분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불을 이용한 퍼포먼스와 공중 곡예 등 볼거리를 추가했다. 가족이 모두 보는 야외 공연인 만큼 자극적인 치정을 빼고 어긋난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10월 1일까지 M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서울시극단의 시극(詩劇) ‘카르멘’은 고선웅 단장의 연출과 각색을 통해 카르멘의 자유로움과 주체성을 부각하는 한편 돈 호세의 왜곡된 광기와 집착을 담을 예정이다. 오페라의 미덕도 지키면서, 원작 소설의 줄거리도 거스르지 않는 치정멜로극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두 ‘카르멘’ 모두 쉽고 재밌는 대중극을 표방한 가운데 소설 및 오페라 속 여성 폭력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대정신과 현대적 감수성에 맞는 ‘카르멘’을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고전이 현대에도 의미를 가지며 관객과 소통하는 길 아닐까.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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