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정치개혁, 현장에 답이 있다
민생과 괴리된 태도로 비난 자초
수해 현장 봉사 정치인은 찬사
한국도 논란의 정치인 많지만
잼버리나 수해 현장 찾아
진정으로 소통하는 이는 드물어
홍보용 이벤트 대신에
현장 직접 보고 목소리 듣길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외유성 해외 출장 문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한 것 같다. 두 나라 모두 정치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 방증일 수 있다. 일본 집권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지난달 프랑스로 연수를 가서 관광객처럼 놀고먹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마이니치신문의 지난달 31일 보도에 따르면 자민당 여성국장인 마쓰카와 루이(52) 참의원과 이마이 에리코(39) 참의원 등 38명은 같은 달 하순 프랑스로 연수를 떠났다. 외교관 출신인 마쓰카와 의원은 자민당에서 촉망받는 차세대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연수 목적은 프랑스의 저출산 대책과 육아 지원 제도들을 살펴보고 현지 관계자와 의견을 나누는 것이었지만, 마쓰카와 의원이 SNS에 올린 사진들은 딴판이었다. 패키지 여행객처럼 공항이나 버스에서 단체로 활짝 웃는 모습이나 관광명소와 유명 맛집을 담은 사진을 자랑하듯 올렸다. “뤽상부르 궁전과 파리 거리가 아름답다”는 글도 남겼다. 불경기에 엔저까지 겹쳐 해외여행을 가는 일본인이 급감하고 서민들은 물가 상승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오사카의 친구들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파리 에펠탑 앞에서 두 손을 머리 위로 모아 탑 모양을 흉내 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특히 많은 비난을 받았다. “수학여행 갔냐” “대체 무슨 포즈냐. 동료와 여행이라면 자비로 가라” 등 질타가 쏟아졌다.
이들의 행태는 같은 시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 한 정치인과 비교가 됐다. ‘레이와 신센구미’의 대표인 야마모토 다로(48) 참의원은 기록적인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아키타현을 방문해 집을 덮친 흙더미를 치우며 자원봉사를 하고 이재민의 고충을 들었다. 그는 SNS에 올린 글에서 “확실히 말하건대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아키타만의 노력으론 힘들다. 피해 상황이 파악되지 않으면 필요한 지원 내용이나 규모, 방법을 정하기 어렵다”며 신속하고 정확한 조사를 촉구했다.
야마모토 의원은 NHK 드라마 배우 출신으로 동일본 대지진 이후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2019년 진보 자유주의 성향의 ‘레이와 신센구미’를 창당해 중의원 의석 3석을 확보했다. 보수 성향이 강한 일본 정치권에서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정당의 대표이지만, 이번 수해지 방문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야마모토 의원의 트레이드마크는 가두 연설회다. 거리로 나가 직접 자민당과 극우들을 비판하고 일본의 현실을 고발하며 시민들과 대화한다. 거리에서 대놓고 욕을 퍼붓는 극우나 혐한 인물도 피하지 않는다. 무대로 부르거나 마이크를 건넨 뒤 토론을 불사한다. 수해지 방문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평소 정치 스타일의 연장선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던 셈이다. 이런 진정성에 공감한 이들이 하나둘 늘면서 ‘레이와 신센구미’는 작지만 존재감 있는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돈키호테처럼 좌충우돌하면서도 신선한 그의 도전은 개혁도, 혁신도 기대하기 힘든 국내 정치 현실과 대비된다. 폭염과 열악한 시설로 세계적 걱정거리가 됐던 새만금 잼버리 현장에 텐트를 치고 스카우트 대원들과 숙식을 함께한 정치인은 없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예천 산사태 현장에도 피해자나 유족들 곁에서 위로하고 고충을 들은 정치인은 보지 못했다.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관련 공무원까지 불러 홍보용 사진을 찍으러 온 정치인들만 눈에 띄었다. 쇼가 아니라면 카메라를 부르지 말고 직접 들어야 한다. 그래야 서류 뒤에 가려진 현장의 상황과 목소리를 포착할 수 있다.
현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정치인들은 국내에도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 현장 행정으로 주목받으며 스타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안철수 의원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의료 현장에서 자원봉사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금은 어떤가. 지역구를 발로 뛰는 정치인은 많지만, 국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 현장을 찾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조귀동 작가는 신간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어떠한 개혁도 바랄 수 없는 나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사회”로 진단한다. ‘팬덤 정치’와 ‘정치적 부족주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뼈아픈 이야기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정치개혁의 새로운 리더십은 어떻게 가능한가. 돌파구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답은 현장에 있다.
송세영 편집국 부국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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