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관객들이 내 감정 이해할까 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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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경악스러운 행동을 하지만 상식의 범위 안에 있는 인물, 내 주위에 몇 명 정도는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정신의 끈을 놔버리는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
이병헌은 "영화를 찍는 몇 개월간 최대한 그 인물에 젖어 살려고 애쓴다. 끊임없이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갔다고 생각하려고 발버둥친다"며 "극단적인 감정들을 연기하고 나서 관객들에게 처음 보여졌을 때 이해를 받으면 큰 안도감과 쾌감이 생기지만 보여주기 직전까지 불안하다. '내 감정을 사람들이 이해할까'하는 걱정이 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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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데뷔 ‘믿고 보는 배우’
“연기엔 믿음과 불안이 늘 공존”
“악(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경악스러운 행동을 하지만 상식의 범위 안에 있는 인물, 내 주위에 몇 명 정도는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정신의 끈을 놔버리는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
3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주인공 영탁을 연기한 배우 이병헌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디서도 리더를 해보지 못하고 ‘루저’의 삶을 살아 온 사람에게 신분의 변화가 왔을 때 생기는 둔탁하고 거친 변화를 나타냈다”면서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상황 설정이 재미있었고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러가지 인간 군상, 갈등과 감정들이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었다”고 했다.
영탁은 대지진 이후 얼떨결에 황궁아파트 주민대표로 선출돼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간다. 황궁아파트는 모든 것이 파괴된 디스토피아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공간이다. 뻗친 머리에 불안한 눈빛,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영탁은 사람들을 이끌지만 계속해서 갈등을 겪는다.
영화 포스터 속 영탁은 우스꽝스럽기도 괴기스럽기도 한 그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이병헌은 “영탁은 머리숱이 많고 뻣뻣해 머리카락이 눕지 않고 옆으로 자라는 사람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머리가 서고, 권력을 가졌을 때는 마치 고양이가 털을 곤두세운 듯한 모습이다. 팬은 많이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그게 ‘영탁이같은 모습’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며 웃었다.
영화는 블랙코미디로 관객을 웃기다가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스릴러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야기의 중심에서 극단적인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기 위한 고민이 컸다.
이병헌은 “영화를 찍는 몇 개월간 최대한 그 인물에 젖어 살려고 애쓴다. 끊임없이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갔다고 생각하려고 발버둥친다”며 “극단적인 감정들을 연기하고 나서 관객들에게 처음 보여졌을 때 이해를 받으면 큰 안도감과 쾌감이 생기지만 보여주기 직전까지 불안하다. ‘내 감정을 사람들이 이해할까’하는 걱정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시사회에서 느끼는 반응이 꼭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번지점프를 하다’(2001) 개봉 당시 시사회 반응을 보고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심각한 장면인데 사람들이 낄낄 웃어서 영화 끝나기 직전 화장실로 향해 사람들이 다 갈 때까지 숨어있었다”며 “리뷰 반응은 예상과 달리 좋았다. 큰 흥행작은 아니었지만 긴 시간 사랑받은 작품으로 남았다”고 돌이켰다.
이병헌은 1991년 데뷔 이래 30여 년을 연기해 왔고,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는 “배우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내가 이해한다고 믿고 있다”며 “어떤 캐릭터를 만나든 누구보다 더 빠르게 이해하고 상상하고 깊이 이입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불안은 공존한다. 이병헌은 “감정은 주관적인 것이기에 때에 따라선 내가 판단하고 연기한 것이 모자라거나 넘칠 수 있다. 내가 의도하고 상상한 것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 때가 있다”면서 “‘내가 맞을 거야’라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말해야만 연기를 계속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 판단에 대한 믿음이 쌓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임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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