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이코노믹스] ‘제2의 반도체’ 찾아라, 신산업 육성만이 살 길

2023. 8. 22.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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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터널’에 갇힌 한국 경제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침체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는 애초 올해 경기를 ‘상저하고(上低下高)’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면서 하반기부터는 수출과 내수가 늘어나며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전망기관들은 올해 한국 성장률을 당초보다 하향 조정하고 있다. 7월 수출이 16.5% 감소해 10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고 최근 중국 경제의 불안감이 높아지는 등 한국 경제의 대내외적 환경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 미국 고금리에 세계 경제 둔화
중국 부동산도 버블 붕괴 우려

금리·재정·환율정책 어려워
바이오·배터리·AI 지원 늘려야

국가 차원의 장기 비전 안 보여
‘한국의 젖줄’ 수출, 다변화 필수

하반기 경기 회복도 어려워져

우선 미국과 유럽의 추가적인 금리 인상과 고금리의 지속 가능성이 우려된다. 미국은 노동 공급이 부족해 임금이 오르면서 이른바 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9월 이후 추가 금리 인상이 예상되고 고금리도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세계 경기 회복세를 둔화시켜 한국의 수출을 줄이고 경기 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중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경기침체도 우려된다. 미국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탈중국화를 꾀하고 있고, 반도체 등 전략품목의 자국 내 생산 비중을 늘리면서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7월 중국의 전체 수출은 14.5% 감소했으며 미국으로의 수출 역시 23.1% 급감했다.

수출 감소는 중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금융부실을 촉발할 수 있다. 중국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있지 않아 그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으나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글로벌 금융시장은 물론 우리 금융시장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중국 디플레와 경기침체 조짐

현재 중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우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시 미국은 세계 반도체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일본에 대해 강력한 수입 규제를 취했고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를 대폭 평가절상시켰다. 그 결과 일본 경제는 부동산 버블 붕괴로 장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을 겪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중국 또한 미국의 수입 규제로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있으며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 0.3%를 기록하는 등 디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경기 침체가 깊어질 경우 중국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일본의 엔저 전략과 같이 위안화 환율을 높이는 정책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동아시아가 환율전쟁에 돌입하면서 한국 수출은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수출·내수 부진 당분간 계속될 듯

한국 경제 회복세가 더딘 또 다른 배경은 산업경쟁력 약화에 있다. 한국은 그동안 대 중국 수출을 늘려서 무역 흑자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으로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해 왔고, 최근에는 자동차와 전자산업까지 기술격차가 줄어들면서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수출 부진의 원인이 이렇다면 비록 중국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대중 수출이 과거와 같이 늘어나기는 쉽지 않다.

정근영 디자이너

내수 부진 또한 회복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다. 가계는 고금리로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물가가 높아지면서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 기업도 경기 침체와 임금 상승으로 투자를 늘리기가 만만치 않다.

저성장과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정책당국은 통상 금리·재정·환율정책과 같은 거시경제 정책을 사용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정책수단을 쓰기가 쉽지 않다. 먼저 금리 정책을 보면 한국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릴 경우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더욱 벌어져 자본유출이 우려되고 2%대에서 안정세를 보이는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수 있다. 반면 금리를 올릴 경우 경기 침체와 금융 부실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재정정책 역시 재정 건전성 악화를 고려하면 재정 지출을 늘리기 쉽지 않다. 환율정책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일본의 엔저 정책과 같이 환율을 높여야 하지만 이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고 자본유출도 늘어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수단이 제약받는 경우 경제는 위기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30년 침체’가 남긴 것

경기 침체와 저성장 함정에 빠진 한국 경제를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한국 경제의 활로는 무엇일까. 먼저 정책당국은 산업정책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 경제의 대부분 문제는 산업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된다. 외환위기 이후 고성장을 유지했던 배경도 반도체를 비롯해 일본으로부터 이전받은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으로 조선·철강 등의 산업경쟁력이 약화하면서 무역수지마저 악화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무역 흑자는 반도체 특수 때문이거나 수입 감소·둔화에 의해 생긴 불황형 흑자였다.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산업육성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일본은 한국에 주력산업을 이전하고 이를 대체할 신산업을 찾지 못해 30년 경기침체를 겪었다. 한국도 신산업 전망이 불확실해서 일본과 같이 장기 침체를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배터리·바이오·인공지능·전기차·방위산업 등의 성장성이 가시화하면서 이들 산업에서 경쟁력을 높일 경우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산업구조의 전환기이자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다.

새 시대에 맞는 산업구조 구축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전문인력 양성과 신기술 개발에 대해 정부 지원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신산업 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선 기존의 산업구조에 맞게 구축된 대학교육과 정부연구소 체제를 새로운 산업구조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정부는 신산업에 대한 핵심 정책브랜드를 개발해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높일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도 모두 핵심 정책브랜드 제시로 경제 운용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끌어냈다. 녹색성장(이명박 정부), 창조경제(박근혜 정부), 소득주도성장(문재인 정부) 등이 그런 사례다. 신산업정책은 장기적으로 산업경쟁력을 높여 한국 경제를 저성장 함정에서 벗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도 경제 비전을 명확히 함으로써 기업투자를 끌어내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수출 전략 지휘해야

수출은 저성장 탈출을 위한 핵심 방편이다. 이를 위해 시장 다변화를 현실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오랫동안 중국은 한국의 제1의 수출대상국이었다. 대중 수출 비중은 최근 19%대로 낮아졌으나 의존도는 아직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 수출이 감소할 경우 한국의 무역 적자 폭은 더욱 확대되며 국가의 신인도를 나타내는 경상수지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책 당국은 동남아·남미·동유럽·중동으로 수출선을 다변화해 대중 수출감소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 주재 수출전략회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개최 횟수를 늘리고 수출 기업을 참석시켜 민관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수출 증대를 통한 경상수지 흑자 기조 확립은 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 성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외환·금융 위기 위험이 없어야 국내 개혁도 자신감 있게 추진할 수 있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재정 운용에서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자본이 자유화된 개방경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고금리 지속과 경기 경착륙이다. 이런 상황에선 금융부실 확대와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대규모 자본 유출이 생겨나 외환위기나 금융위기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지난해 2.6%보다 크게 낮은 1.4%로 전망하고 있다. 하반기 수출이 대폭 늘어나면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재정의 경기 안정 역할 고민해야

그러나 중국 부동산 버블 붕괴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증가로 수출이 늘어나지 않아 경기 경착륙이 우려될 경우엔 내수 진작으로 경기를 안정시켜야 한다. 필요하다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재정 건전성 악화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고금리하에서 경기 경착륙으로 인한 금융부실 위험과 서민 고통이 커지는 상황이라면 재정의 경기 안정 역할을 무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중국 성장률 둔화, 신산업의 등장으로 한국 경제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 여기에 중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 위험이 더해지면서 금융시장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급변하는 경제환경에서 저성장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정책 당국의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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