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vs 외압…국방위, ‘채상병 사건’ 진실 공방
국민의힘 “기초단계서 외압 의미없어”
민주당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특검 통해 밝힐 것”
여야 고성 끝에 1시간만에 정회하기도
여야가 집중호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고(故)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 초동조사 과정을 놓고 강하게 충돌했다. 야당은 대통령실 등 윗선이 수사에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을 제기했고, 여당은 수사단장의 항명이라고 맞섰다.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외압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국방위원회는 21일 오후 2시 전체회의를 열고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을 상대로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현안 질의를 진행했다.
앞서 채 상병은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 안에 들어가 다른 장병들과 인간띠를 만들어 실종자 수색을 하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고, 14시간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구명조끼는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달 31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채 상병 사망 관련 조사 내용을 설명할 예정이었으나 돌연 브리핑을 취소했다. 수사 자료에는 채 상병이 소속된 해병대 1사단 임성근 사단장 등 8명에 과실치사 혐의 등을 적용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수사 자료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은 지난 2일 조사 내용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했고, 군은 이를 항명으로 보고 수사단장에서 보직 해임했다. 경찰에 이첩된 사건 기록 역시 반환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군 지휘부가 채 상병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박 전 수사단장의 사건 경찰 이첩을 국방부가 보류한 것과 관련해 윗선의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채 상병 사건 관련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8명 관련자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했다. 유족에 성심껏 설명했고 해병대 사령관과 해군 참모총장, 국방 장관에 차례로 보고하고 결재까지 받았다”며 “그런데 언론 브리핑, 국회 보고, 경찰 이첩 앞두고 하루 사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사 보고서에 대한 수정, 축소 지시 등의 외압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일요일 오후에 결재하고 월요일 오전 브리핑 취소되는 사이 명시적으로 달라진 건 해병대로부터 안보실로 언론 브리핑 자료 넘어간 것뿐”이라며 “대통령실에서 모종의 지침 있었다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라고 추궁했다. 송옥주 민주당 의원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린다고 하늘 안 가려진다. 진실은 향후 국회 특검 통해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특정 지휘관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대상자에서 제외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여당도 국방부 발표는 초벌 수사 자료일 뿐이라며 경찰로 넘어간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반박하며, 이 장관 엄호에 나섰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경찰이 군의 수사기록을 참고해 수사를 해서 책임 범위를 경찰이 결정하도록 돼 있다”라며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외압을 행사해 누구를 빼고 했다는 의혹은 의미가 없다”고 외압 의혹을 일축했다.
야당의 특검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윤 원내대표는 “수사가 진행도 안 된 상태에서 특검을 이야기하는 분도 있는데 경찰단계에서 수사가 제대로 돼 국민 의혹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성일종 의원도 실종자 수색 작업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50사단장에게 있는 점을 언급하며 “50사단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해병대 1사단장에게 물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외압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박 전 수사단장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계속 바뀌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이 이날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해병대 수사기록으로 추정되는 자료를 공개한 점을 고리 삼아 역공에 나서기도 했다. 성 의원은 “형법 127조 공무상 기밀 누설에 관여되는 심각한 문제”라며 조사를 촉구했다. 윤 원내대표 역시 “기록이 함부로 유출된다는 것은 국민 기대를 저버린 것”이라며 힘을 실었다.
여야가 국방부 보고와 출석 대상자를 놓고 고성을 주고 받은 끝에 회의가 1시간 만에 정회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날 회의에 정부 측 인사로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허태근 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 해병대 사령부·수사단 관계자들은 대거 불참했다.
야당 간사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출석 인원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한다”라며 “야당은 해병대 사령관과 해병대 전 수사단장, 강력수사대장 수사관들 (출석) 요구했다. 그런데 해병대 부사령관 제외하고 오지 않았다. 반쪽 전체회의”라고 지적했다.
신원식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는 즉각 맞섰다. 그는 “참가자 문제는 제가 이미 야당 간사께 충분히 양해를 구했다. 올해 (을지프리덤실드) 연습 기간에 작전사령부 요원을 부른 적도 없다”라며 “해병대 수사단 관계자들은 지금 피의자로 조사받는 부분도 있고, 수사가 진행되는 관계자를 불러서 국회에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수사에 압력을 끼치는 외압”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소속 한기호 위원장 역시 “을지연습 기간이 시작하는 날이다. 군인들은 지휘관들이 자리를 이석하지 못하고 수사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 대상자도 이 자리에 부를 수 없다고 미리 말씀드렸다”고 해명했다. 이에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여당의 거부로 상임위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는데 의사진행 발언까지 1분으로 제한하는 것이 어딨느냐”며 날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 간 설전이 벌어졌고 한 위원장은 오후 3시 정회를 선포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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