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전락" vs "서비스 향상"…'임차 요양원' 허용에 찬반 엇갈려
정부의 ‘임차 요양원’ 허용 방침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노인요양시설이 부족한 일부 지역에 공급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란 것이 정부의 입장이지만, 한국노인복지학회 등 유관 학회들은 “돌봄제도의 공공성 추구에 역행하는 행태”라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노인 요양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는 긍정적 반응도 만만치 않다.
한국노인복지학회,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한국사회보장학회 등 보건·복지 분야 19개 학회는 21일 “노인의 주거권을 침해하고, 장기요양제도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노인요양시설의 임차 허용을 절대 반대한다”는 제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보험사들이) 적은 자본금으로 시설을 설립할 수 있게 되면 장기요양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투기성 자본의 유입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명서 작성을 주도한 남현주 한국노인복지학회장(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지금도 개인이나 영리 자금이 들어간 시설의 경우 서비스 질이 떨어져 평가 등급이 낮은 곳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임차까지 허용되면 수익창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영세업자들이 대거 진입해 서비스 질이 더 악화되고, 결국 폐업에 이를 경우 거주하던 노인들이 갈 데가 없어지는 문제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에 불을 붙인 건 보건복지부가 지난 17일 공개한 ‘제3차 장기요양 기본계획’이다. 복지부는 이 계획에서 “도심 등 공급이 부족한 일부 지역에 대한 시설 진입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면서 일정 조건 하에 임차를 허용하는 방안을 예시로 거론했다. 현행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사업자가 직접 토지 및 건물을 소유해야만 10인 이상의 노인요양시설을 설립할 수 있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당시 브리핑에서 “서울의 경우 (장기요양보험) 1·2등급 수급자가 2만4000명 정도인데, 시설 정원은 1만6000명에 불과하다”며 “베이비부머 같은 분들도 자기 지역 내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인데, 그중 하나가 임차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임차 요양원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정부가 손해보험업계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현재도 KB손해보험이 요양서비스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시설 4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보험사들에게는 부동산을 직접 소유해야 한다는 시행규칙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규제가 풀리면 사업 진출을 고려하는 업체들이 일부 있다는 것이 손해보험 업계의 관측이다.
그러나 학계 내에도 보험업계의 진출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만 있는 건 아니다. 영세한 개인 사업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노인 요양서비스 시장에 대규모 민간 자본이 들어오면 품질 향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목소리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임차를 허용해 영세업자들의 진입이 쉬워지는 것은 우려스럽지만, 보험사와 같은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는 것은 오히려 서비스 질 향상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라며 “정부가 시장 안정성을 담보할 안전장치를 마련해 책임감 있게 사업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도 임차 허용이 아직 확정된 방침이 아닐뿐더러, 규제를 풀더라도 안정성을 보장할 각종 설립 기준 및 장치를 마련할 것이란 입장이다. 어린이집, 의료기관 등 다른 사회복지시설도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토록 하는 등의 조건 하에 임차를 허용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임차 허용은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공이 시설을 확충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니, 민간 시설을 늘릴 방법으로 검토 중인 사안”이라며 “허용을 하더라도 일부 지역, 비영리 법인에 한해 임대 방식을 허용한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면밀히 참고해 시설 난립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관련 업계를 두루 만나 의견을 청취하겠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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