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앞두고 쉬던 내게 걸려온 전화, 걱정이 됩니다

이준만 2023. 8. 2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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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눈치껏' 잘 하라니... 형식적으로만 작동하는 신규교사들 적응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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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만 기자]

교사들의 정년 또는 명예 퇴임 시기는 2월 말 또는 8월 말이다. 개인 의지로 선택할 수 없다. 생일이 3월~8월에 있으면 8월 말 퇴임, 9월~2월에 있으면 2월 말 퇴임으로 정해져 있다. 나는 6월생이므로 8월 말에 퇴직할 예정이다.

오는 8월 말 퇴직은 여러모로 학교에 불편을 끼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후임 교사가 배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구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만만치 않다. 9월부터는 교사 자격증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임용고시 준비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다 퇴임하는 지방 중소도시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기간제 교사 구하기가, 약간 과장하면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

이런 형편인데 내 후임 교사 인사 발령이 났다. 20대 후반, 신규 교사라고 한다. 젊고 믿을 수 있겠다 싶어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점이 하나 있었다. 그 후임 교사가 내 수업을 그대로 이어받을 텐데, 그러면 그 교사는 '화법과 작문'이라는 과목을 오롯이 혼자 가르쳐야 한다.

경력의 유무
 
 퇴직을 앞둔 내게 반 학생들이 그려준 캐리커처와 글
ⓒ 이준만
 
사실 나같이 경력이 많은 교사는 혼자 가르치는 게 편하다. 자신이 생각한 수업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교단에 서는 초임 교사는 부담을 가질 수도 있는 문제이다. 혼자 수업을 계획해서 한 학기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초임 교사로서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같이 근무하고 있는 어느 교사가 전화를 했다. 내 후임 교사가 학교에 와서 자신이 가르칠 과목 교과서를 찾는데, 어떤 걸 줘야 하냐고 물었다. 책상 뒤 책꽂이에 있는 교과서를 주면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혹시 그 후임 교사가 궁금해하는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전화해도 된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후에 전화가 왔다. 내 후임인 신규 교사였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역시 매우 막막해하고 있었다. 1학기 동안 내가 어떻게 수업했는지 이야기해 주고, 찬찬히 수업 구상을 해 본 다음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몇 번이라도 좋으니 서슴지 말고 전화하라고 했다.

다음 날 다시 전화가 왔다. 수업하면서 만들어 놓은 수업 관련 파일이 있으면 제공해 줄 수 있냐고 했다. 컴퓨터를 뒤져 후임 교사에게 필요한 만한 파일들을 찾아 압축해서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정말로 고맙다는 답이 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끝난 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내 후임 교사는 왜 나에게 전화를 해야만 했을까? 다른 도시로 이사하고, 휴가 내고 쉬고 있는 나에게 말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에는 국어 교사가 무려 아홉 명이나 있다.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물을 수 있었다면 굳이 나에게까지 전화할 필요가 없었을 터이다. 그런데 아마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에게까지 전화한 과정을 추론해 보자. 내 후임 교사가 인사하러 학교에 들렀을 것이다. 담당 교사(아마도 교무 부장 교사)가 그 후임 교사를 교장, 교감에게 인사시킨 뒤 어떤 과목을 일주일에 몇 시간 가르치게 되었다고 알려 주며 다른 교사와 함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혼자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을 터이다. 그러면서 나와 같은 사무실을 쓰는 교사를 불러 교과서 좀 챙겨 주라고 말했을 터이다.

그 말을 들은 그 교사는 이런 저런 교과서들를 찾다가, 정확히 어떤 걸 주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나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 후임인 그 신규 교사는 얼마나 막막했겠는가. 전혀 경험이 없는 상태인데, 오롯이 혼자 한 학기 수업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상당한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신규 교사들 적응 제대로 도와야
 
 선배 교사가 후배 교사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는 학교 문화를 바랍니다.
ⓒ 이준만
 

이처럼 학교에는 신규 교사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없다. 물론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근무한 학교들에 국한하는 이야기이다. 발령을 받고 출근을 하는 순간, 거의 모든 것을 눈치껏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그러니 신규 교사들이 느끼는 스트레스 강도는 엄청나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근무한 학교들에 신규 교사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이 아예 없지는 않다. 어느 학교에나 '신규 및 저경력 교사 멘토링 계획'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의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어느 학교에서도 이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단 한 학교에서도 말이다.

결국 이건 '계획을 위한 계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우리도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 계획이고 학교 정기 감사에서 면피를 하기 위한 계획에 불과하다. 학교 관리자인 교장과 교감이, 직접 나서 그 프로그램이 잘 작동하는지 점검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에 하는 소리이다.

신규 교사가 학교생활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들이 이른 시간 내에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야 그 학교의 교육력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근무한 여러 학교에서 신규 교사를 위한 프로그램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학교 관리자들이 신규 교사들의 학교생활에의 연착륙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러면 신규 교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장 교사가 실천 가능한 계획을 꼼꼼하게 세울 것이다. 그러고 나서 주기적으로 그 계획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중견 교사들의 생활은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듯하다. 그러나 내 교직생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중견 교사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신규 교사 적응 프로그램이 없어, 퇴직 예정인 선배 교사에게까지 전화를 걸어야만 하는 신규 교사들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선배 교사가 후배 교사의 손을 잡아 이끌어 주는 아름다운 학교 풍경을 상상해 본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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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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