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 또 해임... 총선까지 8개월, 초조함 드러낸 정권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탄압과 언론장악 실태를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특별칼럼'을 마련했습니다. 두 번째로 정연우 민언련 이사이자 세명대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해당 칼럼은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편집자말>
[정연우]
▲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공영방송 장악 중단을 요구하는 KBS, MBC, EBS 이사들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
ⓒ 권우성 |
이는 단순히 공영방송 장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영방송에 대한 신뢰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 수도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공영방송이 정권의 손아귀에 있던 박근혜 정권 시절 국민 신뢰도를 보면 종합편성채널 JTBC보다 한참 뒤지기도 했다. 손석희라는 언론인의 영향만으로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공영방송의 보도와 논평이 불공정하고 편파적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쌓기는 더디고 어려우며, 재발하면 더욱 치명적이다.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면서 KBS와 MBC가 근근이 신뢰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언론자유지수가 높던 2006~2007년에 비하면 영향력과 위상이 한참 떨어진다. 단순히 종편이나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등장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공영방송이 또다시 정권의 충실한 대변자로 전락한다면 시민들은 공영방송에 대한 기대마저 완전히 접을지도 모른다.
▲ 5월 31일 사회보장 전략회의를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
ⓒ KTV 국민방송 |
더 우려스러운 것은 윤석열 정부는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디어 공공성을 초토화하려 작심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시장'을 맹신하고 있는 듯하다.
"보편 복지가 서비스 복지로 갈 때의 장점은 이것이 시장화될 수 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에 경쟁을 우리가 조성을 함으로 해서 더 나은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게 그게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5월 31일 사회보장 전략회의 때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공공적 보편적 영역인 복지를 시장에 내맡기겠다는 선언이다. 복지는 사적 이익과 욕망을 동력으로 삼는 시장에서는 달성될 수 없는 사회적 가치다. 시장에서는 실패가 뻔하다는 것이다.
미디어 영역도 그러하다. 시장에 맡기면 이용자들의 선택에 따라 더 나은 미디어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라는 인식은 미디어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발상이다. 인기 있는 콘텐츠와 좋은 콘텐츠는 다르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콘텐츠가 꼭 양질의 콘텐츠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적 미디어는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돈벌이가 되지 않는 콘텐츠는 생산하지 않는다. 미디어의 공공재적 특성을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적 미디어 시장화, 여론 보수화로 이어질 수도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의 시장화는 콘텐츠의 공공성을 약화하고 민주주의와 사회적 공론의 퇴행을 불러온다. 담론을 부실하게 하거나 왜곡한다. 이러한 퇴행은 사회적 감시와 견제, 균형 그리고 민주주의 의사결정을 불편하게 여기는 집단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디어 시장의 절대적 권력은 돈줄을 쥐고 있는 광고주다. 광고주의 눈치에서 자유롭지 못한 미디어는 그들의 입맛에 맞는 보도와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사업자로 변신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입장과 목소리는 묻혀 버리고 공공적 의제는 다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권력이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보수적 여론지형이 저절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기적인 설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권은 미디어의 공적 영역을 속속 시장화하려 든다. 공적 소유와 운영을 통해 공적 역할을 맡아오던 YTN을 민간 자본으로 팔아버리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KBS 2채널이나 MBC 민영화에도 군불을 때는 사람들이 있다.
KBS의 경우 그간 전기료와 통합해 징수해 오던 TV수신료를 분리하여 징수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했다. 그것이 어떠한 사회적 이익과 당위가 있는지 명분도 뚜렷하지 않다. 공영방송의 재정 기반은 취약해지고 징수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KBS의 보도와 프로그램에 불만인 사람들은 납부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KBS는 어떻게 하면 국민의 불만을 줄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논란이 일거나 반대에 부딪힐 염려가 있는 아이템은 아예 외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고 이끌어 공론장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쟁점을 피해 가는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시대적 과제의 발굴은커녕 외면하거나 슬그머니 덮어버릴 수도 있다.
공영방송의 역할은 신뢰를 바탕으로 시대적 의제를 발굴하여 공론장을 이끌어가는 데 있다. 그런데 수신료에 대한 저항을 우려하는 공영방송에서 그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두루뭉술한 보도로는 깊이 있는 공론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 논의를 통한 공론 과정 없이 졸속으로 수신료 분리징수를 강행했다. 굳이 주장한다면 국민 선택권을 강화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뜻하는 '선택권'은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 자유라는 개념에서 발상한 것일까? 기본적으로 자기 결정권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거나 공공성을 해친다면, 어떠한 사회적 이익이 더 중요한지 저울로 달아보아야 할 것이다.
▲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설명 |
ⓒ 민주언론시민연합 |
공유지의 비극이 초지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공론장은 인류가 역사를 통해 발전시켜 온 보편적 가치이자 구성원들이 함께 지키고 누려야 할 민주주의의 토대다. 즉, 공론장을 사적 욕망이 지배하는 시장에만 맡기면 반드시 그 기능이 약화하거나 황폐화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시장의 원리를 어느 정도 용인하되 기본 축은 공공적 운영이 가능한 구조를 허물지 말아야 한다.
공공 미디어는 공론장의 황폐화를 막는 보루역할을 해왔다. 유튜브 같은 극단적 시장에 의존하는 미디어가 공론장을 흔들수록 담론 의제와 논의의 중심을 잡고 진실을 탐사하여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공공 미디어가 중요하다. 물론 미디어 생태계를 공공 미디어만으로 형성하자는 것은 아니다. 경쟁의 촉진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현재 우리 미디어 구조는 신문, 종편 등에 더해 뉴스 포털, 유튜브, 넷플릭스 등 사적으로 운영되는 미디어가 지배적이다. 진실은 사라지고 자신들의 성향과 의견에 맞는 정보와 의견만 추구하면서 공론장 초지의 뿌리가 시들고 있다. 정부는 민주주의의 풀밭을 풍성하게 가꾸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담론과 의식, 가치와 문화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버팀목인 미디어의 공공성을 어떻게 보완하고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는 경고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미디어의 영역이기도 하다. 반달리즘(vandalism)은 인류가 이루어 온 예술이나 문화적 유산, 삶의 흔적을 무너뜨리는 반문명적 행위다. 이는 눈에 보이는 유적과 유물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진전을 통해 형성해 온 중요한 제도와 관행을 돌이킬 수 없도록 파괴하는 행위도 다른 형태의 반달리즘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공적 미디어를 시장에 넘기는 것이야말로 민주적 공론장을 위기에 빠뜨리는 반지성적 반달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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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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