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만원 벌어 40만원 월세, 70만원 적금…직장인 '고물가 생존법'

이우림 2023. 8. 2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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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울의 한 식당가. 연합뉴스

은행원 김모(28)씨는 최근 회사에서 동료들과 점심 식사 후 결제하는 방식을 바꿨다. 원래 식비 통장을 만들어 전체 음식 가격을 한 번에 계산했는데 이제는 통장을 없애고 자기가 시킨 메뉴의 값을 각자 치르는 형식이다. 외식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다 보니 식비 계산을 정확히 하자는 민원 때문이었다. 김씨는 “방식이 달라진 뒤 식비 지출이 많이 줄었다. 예전 같으면 각자 먹을 식사류 외에 나눠 먹을 요리 한 개씩을 추가로 시켰는데 이제는 되도록 단품 요리만 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 연령 외식 지출 감소…도시락 먹기도


김씨의 사례처럼 치솟는 물가 영향으로 외식 씀씀이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21일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한카드 고객의 외식업종 건당 사용금액을 100으로 설정했을 때 2분기 사용금액은 96.2로 집계됐다. 전 분기 대비 3.8% 줄었다.

전 연령대에서 외식 건당 이용금액이 줄어들었지만 가장 감소율이 높은 건 20대다. 20대의 1분기 대비 2분기 사용금액은 93.4로 ▶30대(96.5) ▶40대(96.1) ▶50대(96.6) ▶60대(98.5) ▶70대 이상(98.8)보다 줄어든 폭이 컸다. 이는 물가가 오르자 지갑이 얇은 20대를 중심으로 저렴한 외식 장소 이용이 늘어나고, 함께 어울려 먹기보단 개인화된 외식이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5년차 직장인 조모(28·서울 강서구)씨가 회사에 가져 간 도시락. [조씨 제공]


대안으로 직접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들도 있다. 5년 차 직장인 조모(28·서울 강서구)씨는 퇴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다음 날 회사에 가져갈 도시락을 싸는 것이라고 했다. 저녁에 미리 요리를 해놓고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다음 날 회사에 가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고 있다. 도시락을 만든 지 석 달 정도 됐다는 조씨는 “한 달 월급 240만원으로 적금 70만원, 월세 40만원을 내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하다. 비상금이 없어서 최대한 아껴쓰기 위해 시작했다”라며 “동료들과 밖에서 사 먹으면 한 끼에 최소 1만원 이상 나가는데 도시락을 싸면 식비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외식업계, 인건비 부담에 식재료 상승까지 악재


올 여름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 태풍까지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채소와 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올라 밥상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17일 오후 대전 노은농수산도매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바뀐 직장인 점심 문화에 애가 타는 건 외식업계다. 올해 초 엔데믹 전환으로 경기 반등을 기대했지만, 매출은 오르지 않고 인건비 부담과 식재료 상승으로 고충만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외식산업 공공사이트 ‘The외식’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외식산업 경기동향지수는 전 분기(85.76)대비 3.65포인트 하락한 83.26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가 100을 넘으면 경기호전을 전망하는 업체가 더 많고 , 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팬데믹 기간 줄곧 100 밑이었지만 엔데믹이 본격화되던 올해 1분기 86.91로 직전 분기(82.54) 대비 소폭 반등했다가 다시 하락한 셈이다.

전망도 어둡다. 3분기 외식산업 경기지수 전망치는 87.31로 직전 분기 전망치(92.21) 대비 4.9포인트 하락했다. 손무호 한국외식업중앙회 정책국장은 “물가가 올라 직장인들이 식사를 가급적 대충 때우려다 보니 구내식당이나 편의점 간편식 선호도가 올라가는 것 같다. 여느 때보다 힘든 현실에 놓여 있어 정부 차원의 외식업 활성화 대책이 나와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유커에 '들썩'…“니즈 파악부터”


15일 중국 지난에서 한국으로 단체 관광을 온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가이드 안내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손 국장은 중국이 6년 만에 한국행 단체 관광을 허용한 점이 하반기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씀씀이가 큰 유커(중국인 단체여행객)가 한국 여행을 재개하면 주요 관광지를 중심으로 외식업계도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예전처럼 빗장을 풀었으니 무조건 유커가 쏟아져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그간 중국 내 소비시장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들이 한국에 와서 어떤 걸 사고 싶어하는지, 어떤 걸 먹고 싶어하는지 니즈 파악부터 다시 해야 한다”라며 “개인 사업자나 정부 모두 지금은 아무런 대비가 없어 걱정스럽다. 매력이 없으면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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