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힘 아닌 시민의 힘으로 성장한 독립영화제

성하훈 2023. 8. 2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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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지역영화] 불모지에서 전남 중심이 된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성하훈 기자]

 지난 17일 목포 해양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10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개막식
ⓒ 성하훈
 
"지역독립영화제가 10년의 시간을 지속해 왔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전국의 수많은 영화제들이 해마다 열리고 또 사라지곤 합니다. 영화제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지역영화 문화를 위한 지역영화인들의 '책임과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지자체 예산만으로 시작했다가 한번 하는 행사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본의 힘'을 믿는 사람들의 착각입니다. 영화제는 돈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지난 17일~20일까지 개최된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가 개막을 앞두고 밝힌 지난 시간에 대한 회고에는 시민들이 지켜온 영화제라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책임과 결실을 강조한 것처럼 작은 독립영화제가 지역의 영상 문화 확장에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보여준 시간이기도 했다.

목포의 독립영화를 말할 때면 흔히 '불모지'가 강조된다. 기반이나 활동이 약한 곳에서 독립영화를 해보겠다는 노력이 무모한 도전처럼 보여서다. 대도시에서도 버티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 독립영화의 현실이다 보니 지역 중소도시에서는 독립영화 활동을 유지하는 것 자체도 버거울 정도다.

하지만 목포의 독립영화는 그 난관을 뚫고 버텨내면서 한국 독립영화에서 그 비중과 가치를 키워내고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미약하게 출발했으나 10회를 맞이하면서 더 창대해졌고, 한국 독립영화에서 전남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돋보였다.

개막식 참석한 목포시장

2014년 시작된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는 2014년 극장이 아닌 작은 카페 등을 전전하며 열린 것이 시작이었다. 사실상 상영회 수준이었고, 상영작 감독 1~2명 정도를 간신히 초청할 수 있는 정도였기에 독립영화제로서의 존재감도 크지 않았다.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보니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10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박홍률 목포시장(왼쪽)
ⓒ 성하훈
 
지난 17일 목포 해양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10회 개막식은 10년의 시간을 돌아보게 했다. 어려운 여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의지가 영화제 행사 전반에 스며있었다. 독립영화관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영화학교를 개설하고, 영화제를 키워낸 노력이 영화계와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영화제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목포시장이 참석해 축하 인사를 전했고, 한원희 목포해양대학교총장, 김영구 영화진흥위원회 영화문화저변화지원팀장, 한국독립영화협회 고영재 대표, 박석영 감독, 이보익 프로듀서, 이수원 전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전경선 전남도의회 부의장, 박수경 이형완 목포시의원 등 영화계와 지역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박수를 보낸 것도 뜻깊었다.

영화제 이름에 들어가 있는 '국도1호선'은 비록 분단으로 끊겼 있으나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상징적인 도로다. 따라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분단의 역사를 끊어내고 남북의 어우러짐을 염원하는 마음이 영화제의 지향점이다.

정성우 집행위원장은 "미래 북한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할 수 있길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고, 박홍률 목포시장도 축사를 통해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가 갖는 평화와 통일, 번영에 대해 강조했다. 최근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냉전시대로 돌아간 듯 대결과 대립의 언어만을 내세운 데 대한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한반도 남단의 도시에서 열린 작은 독립영화제가 발산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는 특별했다.

지역 창작 활동에 기여하는 영진위
 
 10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심야옥상상영.
ⓒ 성하훈
 
4일간의 영화제는 서울과 부산, 광주, 대구, 진주 등 전국에서 모여든 영화인들로 북적였다. 1회 영화제가 3편의 영화와 120만 원의 쌈짓돈으로 시작한 것과 비교해, 수십 배로 늘었난 예산과 60편으로 증가한 초청작, 4곳으로 확장된 상영관은 영화제의 성장을 상징했다.

특히 지난 시간 목포와 인연을 맺은 영화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1회 때 개막작을 연출했던 김태훈 감독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한국영화감독조합 메가박스상, 오로라 미디어상, 배우상)을 차지한 <빅슬립>으로 오랜만에 목포를 찾았다. 부산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의 기대주로 성장한 감독의 출발이 목포였다는 점에서 금의환향한 셈이었다.

이돈구 감독, 박석영 감독, 백재호 감독 등 꾸준히 목포를 오가던 감독들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며 영화제를 지원했고, 목포독립영화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개관작으로 선정됐던 이완민 감독은 <사랑의 고고학>으로 목포 관객들을 만났다. 전노민 배우, 이가경 배우 등의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넘나드는 배우들의 참여도 적극적이었다. 1회가 열렸던 건물 옥상에서 진행된 심야상영은 높은 관심 속에 성황을 이뤘고, 전국 각 지역의 독립영화인들이 모여 서로의 현황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도 의미 있었다.

지역에서의 창작 활동 증가도 두드러진 것도 성과다. 지역에서 영화학교를 열고 영상 창작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면서, 이번 영화제를 통해 지역에서 제작된 단편영화 2편이 상영된 것은 그 결실이었다.

지역 영화제의 성장에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지원사업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목포 역시 영진위 지원사업에 선정된 이후 지역영화인들의 노력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학교 개설을 통한 창작 활동 증가는 영진위의 맞춤형 지원사업의 효과였다.

 진심 다해 신념과 책임감으로
 
 10회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관객과의 대화
ⓒ 성하훈
 
지역영화에서 목포의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끈기 있게 한 우물을 파는 데 있다. 10회를 맞으면서 형식적인 관심만 보이는 전라남도나 목포시의 태도가 조금 더 긍정적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나, 여전히 갈 길이 녹록치는 않다.

하지만 "지역 영화 문화를 통해 많은 관객들에게 시민들에게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최선이고, 이 최선도 부족할 때가 많으나 '진심'을 다해 '신념과 책임감'으로 채우겠다"는 목포 독립영화인들의 다짐은, 지역에서 독립영화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역별로 여건 차이가 크지만, 목포의 독립영화 활동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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