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MBC·EBS 이사 21인은 왜 용산으로 향했나
- 한 달 새 이사진 줄해임… 언론 자유 저해 우려
- “尹, 방송 장악 멈춰야” KBS·MBC·EBS 한목소리
- “민주화 골격 유린 행위, 해임안 집행 정지 신청할 것”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던 21일 오후 2시, 대한민국 3대 공영방송 KBS와 MBC, EBS 이사진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 섰다. 정부에 공영방송 장악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공영방송 이사진 14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공영방송 이사들의 동시 해임은 언론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한 달 새 이사진 우수수 해임… 방문진에 무슨 일이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안을 재가했다. 같은 날에는 정미정 EBS 이사가, 기자회견이 열린 21일에는 권태선 MBC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회 이사장이 해임됐다. 김기중 방문진 이사도 해임을 목전에 뒀다. 이날 이사진은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중단을 윤 대통령에게 직접 요구하기 위해 현 이사들과 역대 이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했다. 이들은 “공영방송 이사진을 잇따라 해임한 건 윤 대통령의 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을 정권이 주인인 공영방송으로 만들어 언론 자유를 저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행사에 앞서 배포한 회견문에는 제8~12기 KBS·MBC·EBS 이사진 32명의 이름이 담겼다. 이들은 현 정부 들어 해임 등으로 직·간접적 위해를 당한 인사다. 권태선 전 MBC 방문진 이사장과 남영진 전 KBS 이사회 이사장, EBS 유시춘 이사회 이사장은 “윤 대통령은 미디어 환경 변화를 이유로 정권 입맛에 맞는 이사를 공영방송 이사진에 앉히며 소유·지배 구조를 바꾸려 한다”면서 “(이 같은 상황이) 재벌 특혜와 공영방송 해체로까지 이어지면 미디어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기업체 등 기득권이 공영방송을 소유하게 될 경우 방송 시스템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들은 이 같이 발언하며 “국회 청문회에서 자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후보자 지명을 포기하고 위법적·비상식적으로 폭주하는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을 해임하라”고 맞섰다.
“억지 근거로 졸속 해임… 민주화 정신 위배”
이사진은 정부가 억지 근거로 해임안을 올린다고도 주장했다. 법적 근거와 절차를 무시하고 공영방송 이사들을 해임했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앞서 방통위는 남 이사장을 해임하며 “KBS 경영 성과를 책임져야 함에도 상위 직급 임금 구조 문제와 과도한 복리후생제도 운영을 적극적으로 개선하지 않아 경영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등 관리·감독 의무를 해태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 이사를 해임할 땐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사건’ 피고인으로 불구속 기소된 점을 들어 “EBS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크게 저하시켰다”는 근거를 댔다. 이날 회견 현장에 참석한 남 이사장은 “방통위가 해임 사유를 일부만 공개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같은 해임이 방송법·방문진법·방통위법을 전면 침해한다는 것도 이사진이 주장하는 문제점이다. 앞서 KBS 수신료 분리징수 안건 역시 방송법을 무시하고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기도 했다. 이에 KBS는 헌법 소원 및 집행 정지 신청으로 맞선 상황이다. 이사진 일동은 “1988년 방송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여야가 공통으로 합의해 만든 게 방통위”라면서 “민주화운동의 최종 결과물인 방통위가 이 정신을 무시하고 방송민주화 골격을 철저히 유린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완기 전 방문진 이사장과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역시 현장을 찾아 “50년 전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면서 “정치적 굿판이나 다름없는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국민이 나서야 한다”며 관심을 호소했다.
이사진 일동은 해임안과 관련해 집행정지 소송 등을 제기하는 등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권 전 이사장은 “검증도 하지 않은, 사실과 다른 근거를 내세워 해임안을 가결했다”면서 “사법부가 법 절차를 충분히 검증한다면 집행 정지는 당연히 인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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