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위용 되찾은 류현진…정교한 제구로 '코리안 몬스터 부활' 입증
(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6·토론토 블루제이스)이 올 시즌 네 번째 등판에서 선발승을 수확하면서 시즌 2승을 달성했다.
토론토는 21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MLB) 신시내티 레즈와의 원정경기에서 10-3으로 승리했다. 신시내티와의 주말 3연전을 위닝시리즈로 마감한 토론토는 69승56패를 마크했다.
팀의 위닝시리즈 및 연승이 걸린 경기에서 선발 중책을 맡은 선수는 류현진이었다. 그는 5이닝 4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비자책)을 기록하면서 직전 등판이었던 14일 시카고 컵스전에 이어 2경기 연속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사실 경기 초반부터 승부의 추가 토론토 쪽으로 기울어졌다. 류현진이 1회말을 삼자범퇴로 마무리한 반면 신시내티 선발 '강속구 투수' 헌터 그린은 1회초 1실점에 이어 2회 4실점으로 빅이닝을 헌납하면서 두 투수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렇다고 해서 류현진에게 위기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2회말 선두타자 스펜서 스티어의 내야안타 출루 이후 1사 1루에서 크리스티안 엔카나시온-스트랜드에게 우전 안타를 맞으면서 1사 1·3루의 위기를 맞이했다.
류현진은 노엘비 마르테를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무난하게 아웃카운트를 추가하는 듯했지만, 좌익수 돌튼 바쇼의 홈 송구를 인지한 1루주자 엔카나시온-스트랜드가 2루로 내달렸다. 이때 중간에서 송구를 끊은 3루수 맷 채프먼이 포구 이후 2루로 공을 뿌렸는데, 송구가 외야로 빠져나갔다. 그 사이 3루주자 스티어는 물론이고 2루에 도착한 엔카나시온-스트랜드까지 홈을 밟았다. 두 팀의 격차가 3점 차까지 줄었다. 공식 기록은 채프먼의 송구 실책으로, 2실점 모두 비자책이었다.
첫 실점에 흔들릴 법도 했지만, 류현진은 추가 실점 없이 2회말을 마무리한 데 이어 3회말에는 삼진 2개를 곁들여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4회초 타자들이 홈런 세 방으로 4점을 뽑으면서 한결 부담을 덜어줬고, 탄력을 받은 류현진은 4회말에 이어 5회말까지 무실점 투구를 선보이면서 승리 요건을 갖춘 채 불펜에게 마운드를 넘겨줬다.
특히 백미는 5회말이었다. 류현진은 선두타자 TJ 프리들과 루크 마일리의 연속 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든 뒤 TJ 홉킨스의 삼진으로 한숨을 돌렸고, 맷 맥레인의 뜬공으로 2번째 아웃카운트까지 잡았다. 2사 1·2루에서는 루킹삼진으로 엘리 데 라 크루즈를 얼어붙게 했다. 타자들의 득점 지원에 힘입어 스코어가 7점 차까지 벌어진 만큼 류현진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빈틈을 허용할 생각이 없었다.
이날 류현진은 5회까지 83구를 던졌고, 직구가 38개로 가장 많았다. 체인지업(18개)과 커브(16개), 컷 패스트볼(11개)이 그 뒤를 이었다. 이전 세 차례의 등판과 비교했을 때 네 가지 구종의 비중이 크게 다르진 않았는데, 이전 세 경기에 비해 눈에 띄는 게 있었다면 자신의 주무기 중 하나인 커브가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특히 류현진이 2회말 조이 보토, 3회말 데 라 크루즈에게 삼진을 솎아냈던 커브의 구속은 각각 65.2마일(약 105km)과 66.2마일(107km)로 직구 구속과 비교했을 때 30km 이상 차이를 보였다. 그만큼 타자들 입장에서는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다. 직구 최고 구속이 89.6마일(144km)로 직전 등판(91.6마일·약 147km)에 비하면 3km 정도 낮았지만, 구속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선수 본인과 사령탑이 주목한 것도 역시 '커브'였다.
류현진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신시내티 타자들이 매우 공격적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볼카운트 싸움에서 앞서기 위해 노력했다. 이 점이 이날 경기의 핵심이었다"며 "우리 팀 타선도 초반에 득점 지원을 해줬다"고 경기를 복기했다. 또 취재진이 이날 커브에 대해 100점 만점에 몇 점을 주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자 류현진은 "스스로에게 100점을 주고 싶다"고 만족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더운 날씨와 5회말에 주자를 두 명이나 내보내면서 체력 소모가 컸던 점 등을 감안해 빠르게 류현진을 교체했다고 밝힌 존 슈나이더 토론토 감독은 "필요할 때 커브를 제대로 썼고, 커브의 로케이션이 잘 이뤄졌다. 체인지업과 몸쪽 패스트볼까지 활용했다"고 류현진의 투구를 평가했다.
류현진의 투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동료들 역시 그의 노련함에 박수를 보냈다. 이날 홈런포 두 방으로 류현진에게 힘을 실어준 브랜든 벨트는 "그는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잘 안다"며 "어떤 변화구를 갖고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공을 던져야 하는지 알고 빠르게 공을 던진다"고 말했다.
현지 매체도 2경기 연속으로 5이닝을 책임진 류현진의 호투를 주목했다.
캐나다 지역지 '토론토 스타'의 마이크 윌너 기자는 "류현진이 14이닝 연속 비자책 행진을 이어가면서 또 눈부신 투구를 펼쳤다"며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뒤 14개월 이상 재활을 거친 선수가 이렇게 좋은 제구력을 보여준다는 게 무척 놀랍다.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은 대부분의 투수들은 제구력을 가장 늦게 찾는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캐나다 매체 '스포츠넷'의 벤 니컬슨 스미스 기자는 "류현진이 다시 한 번 효과적인 투구로 시즌 평균자책점을 1.89까지 끌어내렸다"며 "그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뒤 가장 나은 투구를 펼쳤다"고 호평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류현진이 돌아왔다.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류현진이 어떤 투수인지 상기시켜주는 경기였다"며 "그는 다른 투수에 비해서 '와우'라는 말이 나오거나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강하고 빠른 공을 던지진 않지만, 그는 영리하다. 상대 타자들의 스윙과 수를 잘 읽어내는데, 이런 점이 젊고 공격적인 타자들에게 매우 위력적인 투수다. 데 라 크루즈와의 승부가 완벽한 예다. 류현진은 데 라 크루즈에게 66마일과 67마일 커브를 구사하면서 삼진을 잡아냈다"고 전했다.
아직 두 경기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만 놓고 보면 류현진은 재기에 성공했다.
인천 동산고 2학년 시절이었던 2004년 4월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에 이어 2016년 9월 왼쪽 팔꿈치 괴사 조직 제거를 위한 수술을 받은 류현진은 지난해 6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으며 자신의 야구인생에 있어서 큰 수술을 세 차례나 경험했다. 이전 두 차례의 수술도 만만치 않았지만, 30대 후반으로 향하는 그가 수술대에 오른다는 소식에 긍정적인 전망보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현지 매체들도 류현진이 2023시즌 내로 복귀가 불투명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고, 일부 매체는 토론토와 류현진의 계약을 '실패'로 단정짓기도 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수술 이후 성공적인 재활을 위해 온 힘을 쏟았고, 웨이트 트레이닝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며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선발투수'로 복귀하는 것이 목표였던 류현진은 5월 불펜피칭, 6월 라이브 피칭에 이어 지난달 네 차례의 재활 등판으로 실전감각을 점검했다. 가을야구 무대를 밟기 위해 많은 승수가 필요했던 토론토 입장에서는 오매불망 류현진의 복귀만을 기다렸고, 마침내 그의 복귀 일정이 확정됐다.
류현진은 빅리그 복귀전이었던 지난 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는 피홈런 1개를 포함해 5이닝 4실점으로 패전을 떠안았지만, 8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에서 타구에 맞는 불운 속에서도 4이닝 노히트 호투를 펼쳤다. 복귀 후 세 번째 등판이었던 14일에는 컵스를 상대로 5이닝 2실점(비자책) 투구로 '코리안 몬스터'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류현진은 '에이스'로서의 위용을 되찾으면서 의문부호를 완벽히 지워냈고, 팀의 5선발 경쟁에서도 살아남으며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해 보였다.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직구 구속은 조금 낮아졌지만, 부상이라는 시련 속에서 더 단단해진 류현진은 스스로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사진=AP, AFP, USA투데이스포츠/연합뉴스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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