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대선, 親中 후보 깜짝 당선…중미 '대만 단교' 이어질까

박형수 2023. 8. 2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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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국가인 과테말라 대통령 선거에서 친중(親中) 성향의 야당 후보가 대이변을 일으키며 역전승을 거뒀다. 선거 운동 초반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하위권에 머물던 베르나르도 아레발로(64·풀뿌리운동 소속)는 무효표가 쏟아진 1차 투표를 깜짝 통과하더니, 이날 결선 투표에 전 영부인이자 세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유력 후보 산드라 토레스(67)를 압도적인 표차로 따돌리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20일(현지시간) 과테말라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베르나르도 아레발로가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과테말라 최고선거법원에 따르면, 이날 대선 결선 투표에서 아레발로 후보는 59.05%를 득표(개표율 95.43% 기준)해 당선이 확정됐다. 1차 투표 때 무효표(17.1%)보다 적은 표(15.51%)를 얻어 가까스로 결선 투표에 올랐지만, “반(反) 부패”를 외치며 막판 표심을 끌어모아 역전 드라마를 썼다. 반면 선거 운동 내내 선두권을 유지했던 희망국민통합(UNE) 소속 토레스 후보는 36.19% 득표에 그쳐 2015년과 2019년에 이어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당선이 확정되자 아레발로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계정에 “과테말라여, 영원하라(Long live Guatemala!)”에 쓰며 자축했다. 알레한드로 히아마테이 대통령은 아레발로의 당선을 축하하며 질서있는 권력 이양을 약속했다. 아레발로의 지지자들은 거리로 나와 국기를 흔들며 “과테말라에 미래가 열렸다”며 환호했다. 로베르토 알바레즈(74) 회계사는 “아레발로는 미래를 위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선택지였다”며 “산드라는 과거의 과테말라와 같은 인물”이라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베르나르도 아레발로의 지지자들이 거리에서 그의 당선을 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6년 만에 좌파정부, 사상 첫 '부자 대통령'


아레발로는 과테말라 역사상 첫 ‘부자(父子) 대통령’ 탄생이란 역사도 썼다. 그의 아버지는 1944년 과테말라 혁명 이후 ‘첫 민선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안 호세 아레발로 베르메호 전 대통령(1945~51년 재임)이다. 아레발로 전 대통령의 당선 후 10년 간 과테말라의 변화와 사회적 진보를 일컬어 ‘과테말라 민주화의 봄(democratic spring)’이라 부른다.

아레발로 전 대통령은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사상인 ‘아레발리스모’를 주창하며 공교육을 개선하고, 국가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만들어 빈곤층과 토착민에게 혜택을 줬다. 하지만 1954년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로 고국을 떠나 망명 생활을 했고, 아레발로 당선인 역시 망명 중안 1958년 우루과이에서 태어났다.

선거 기간 내내 아레발로 당선인은 “우리는 ‘새로운 봄’을 찾아야 한다”며 아버지의 유산을 내세웠다. 또 “기득권의 부패에서 국가를 구해내자”며 부정부패 척결에 집중해 표심을 공략했다. 도로 및 기타 인프라 개선을 통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고, 농민들에게 저리 대출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찰관 증원과 중범죄자 전용 교도소 건설 등 치안 강화도 그의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다.

그의 지지자들은 “아레발로는 그의 아버지처럼 과테말라를 변화시키고 국민들에게 새 희망을 줄 적임자”라며 열광했다. 현재 과테말라에는 폭력과 식량 불안 등 사회 혼란으로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이민자가 급증하고 있다.

과테말라에 좌파 정부가 정권을 잡은 건 알바로 콜롬 전 대통령(2008∼2012년 재임) 이후 16년 만이다. 콜롬 전 대통령은 이번에 낙선한 토레스 후보의 전 남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아레발로는 니카라과 같은 급진 좌파 정부를 비판하는 온건한 성향이지만, 1985년 이후 역대 과테말라 대통령 중 가장 진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당선으로 과테말라는 중남미에 다시 불어닥친 ‘제2 핑크 타이드’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20일(현지시간) 과테말라에서 대선 결선투표가 진행됐다. AFP=연합뉴스

친중 발언…제2 온두라스 가능성


외교 정책에도 변화가 예고된다. 그는 지난 6월 결선투표 진출을 확정 지은 뒤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선되면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국익에 바탕을 둔 외교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상호존중의 틀 안에서 중국·대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운 중국은 과테말라에 대만과의 단교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과테말라는 전세계 13개(과테말라·교황청·벨리즈·에스와티니·아이티·나우루·파라과이·팔라우·마셜제도·세인트키츠네비스·세인트루시아·투발루·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뿐인 대만 수교국 중 하나로, 지난 4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중미 순방 때 첫번째 방문지로 택한 곳이다. 지난 3월 중미 국가인 온두라스가 ‘대만 단교, 중국 수교’를 선택해, 과테말라까지 같은 길을 걷게 되면 중미 국가 중 대만 수교국은 벨리즈 한곳만 남게 된다.

UNE당 산드라 토레스 대통령 후보. AP=연합뉴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레발로가 이번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통치를 앞두고 힘든 싸움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가 소속된 풀뿌리운동은 의회 160석 중 23석으로, 법안 통과를 위해선 다른 당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또 현재 과테말라 검찰은 아레발로의 소속 정당인 풀뿌리운동에 대해 당원 불법 등록 등의 혐의를 수사 중이다. 싱크탱크인 아드리엔 아르슈트의 라틴아메리카 센터 제이슨 마크자크 소장은 “아레발로의 차기 정부가 제대로 출범하려면, 아레발로나 그의 정당이 검찰 조사에서 정치적 보복을 피하는 게 관건”이라고 전했다. 아레발로 당선인의 임기는 2024년 1월부터 4년(단임제)이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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