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고정관념, 워커홀릭" 공허했던 클린스만의 해명들
[이준목 기자]
▲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 |
ⓒ 연합뉴스 |
근무태만과 잦은 외유설로 논란에 휩싸였던 클린스만 감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국 축구와 팬들이 기대했던 책임감이나 공감능력은 끝내 보여주지 못했다. 본인의 처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유연하고 너그러운 해석을 적용하다가도, 선수차출과 협의 같은 민감한 이해 충돌 시에는 돌연 원칙을 내세우는 이중적인 태도는 내로남불에 가까웠다.
최근 지난 17, 18일에 걸쳐 클린스만 감독과 국내 언론들간에 진행된 비대면 간담회 내용들이 공개됐다. 클린스만은 이달 초 자신의 생일과 자선 행사 참석 등을 이유로 출국하여 해외에 머물고 있으며, 간담회는 자신의 미국 LA 자택에서 참석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질문들의 주요 초점은 역시 클린스만의 워크에식(직업윤리와 성실성)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클린스만은 한국대표팀 사령탑 부임 당시 '한국 상주'를 약속했으며 이를 축구협회와의 계약조건에도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부임 5개월여 동안 클린스만 감독은 A매치 평가전 일정을 포함하여 국내에 머문 시간보다 해외에 체류한 기간이 더 길었다. 이를 두고 '원격 근무' '사이버 감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명백한 계약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작 클린스만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무 2패로 아직 첫 승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스포츠방송에 출연해 한국 선수들과 관계없는 경기나 선수들을 논평하는 축구해설가같은 행보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간담회에서 클린스만은 자신을 바라보는 세간의 싸늘한 시선에 대하여 '오해'라고 강변했다. 그는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엔 과장된 점이 있다. 물리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떠나서 이제는 선수들과 소통하고 관찰하는 방법이 예전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며 "경기장에 직접 가는 방법도 있지만 가지 않더라도 각국에 있는 코칭스태프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선수들의 상태를 체크 중이다"라고 적극 해명했다.
최근의 잦은 외유와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업무 수행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월드컵 예선조추첨 이후 협회 관계자들과 논의를 했다. 이후 개인적인 일정으로 아일랜드 더블린에 자선사업 일정이 있어 다녀왔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계약하기 이전에 잡혀있던 일정이었기 때문에 취소할 수 없었다. 유럽에 갔을 때 손흥민과 김지수 등 유럽파 선수들을 만났다"며 그간의 근황을 소개했다.
이어 클린스만 감독은 9월 A매치 소집전까지 해외에 머물고 UEFA 회의에 참석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조 추첨을 지켜본 후 유럽파 선수들을 살펴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클린스만이 해외에 머무는 동안 K리그와 국내 선수들 점검은 헤어초크와 차두리 등 코치진이 대신 전담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클린스만은 "후반기에는 계속 경기가 한국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한국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클린스만은 K리거를 직접 살펴보지 않고, 유럽파를 선호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K리그의 많은 경기를 지켜봤고, U리그와 고등리그, 연령별 대표팀도 지켜보고 있다. 한국 축구의 이해도를 높이고 있으며 대표팀 인재풀에 누구를 넣을지 파악하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누구를 더 선호한다는 것은 없다. 미국 대표팀을 맡았을때도 미국프로축구(MLS) 선수를 12~13명 정도 월드컵에 데리고 갔다. 나와 코칭스태프가 국내외의 많은 선수를 보면서 좋은 조합을 찾고, 어떻게 하면 최상의 팀을 만들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모든 선수들은 대표팀에 대한 문이 열려있다. "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표팀 감독이라면 당연히 국내에서 머물며 선수와 팀을 관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이는 한국만의 문화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이며 지금까지의 역대 외국인 대표팀 감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클린스만은 이런 비판에 대하여 "고정관념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일하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오는 오해가 있다고 본다. 물론 부정적으로 생각할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대표팀 감독으로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국제적인 차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코치진과 축구협회와도 지속해서 소통하면서 논의하고 고민을 나누고 있다. 여러분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업무를 게을리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 역시 여러분 만큼 워커홀릭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현안인 이강인(PSG)의 차출 문제에 대해서는 "A대표팀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아시안게임"이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A대표의 주축인 이강인은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상태다. 이강인은 PSG와 대표팀 차출에 대한 협의가 남아있던 상황이고, 황선홍 감독은 가급적 이강인을 일찍 소집하여 대회 전에 손발을 맞출 시간을 가질 것을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은 9월 A매치를 소화하고, 그다음에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며 "A매치와 아시안게임 일정이 겹치지 않는 부분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아직 한 번도 이강인과 훈련을 진행하지 못한 황 감독의 우려와 걱정도 이해한다. 그러나 수준 높은 경기인 A매치를 치르며 경기력을 유지하고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하면 좋은 결과를 내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축구에서 아시안게임의 특수성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강인을 제외한 대표팀 선수 일부는 이원화할 의사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강인은 PSG와 계약하면서 구단측에 아시안게임 차출 수용 조항을 넣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시안게임 합류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면서 "이런 조항이 없는 선수들은 소속팀에 한국 축구의 특수성에 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소속팀을 설득하고 있다. 9월 A매치 명단에 확정되지 않았지만 상황에 따라 같은 포지션에 뽑을 선수가 많다면 황선홍호에 양보할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축구팬들은 클린스만 감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의 인터뷰를 종합하면 결국 자신의 방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모든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외부의 '오해와 고정관념'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정리로 귀결된다. 말은 많았지만 실속은 적었고 의구심도 풀린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처음 부임할 때 했던 약속(한국 상주 등)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도 또다시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뀌지 않는다고 무엇으로 장담할 수 있을까.
또한 협회나 팬들 앞에서 맺은 약속은 자신의 사정과 입맛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하면서, 선수 차출 문제같이 이해관계가 복잡한 현안에 대해서는 A대표팀의 우선권이라는 원칙만 강조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앞으로도 클린스만의 대표팀 운영과 워크에식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고, 이런 문제가 두고두고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신뢰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비전, 성과에서 나온다. 축구 팬들이 걱정하고 의구심을 가지는 부분에 있어서는 해명이나 개선은 전혀 약속되지 않고, 이번에도 그저 말로만 "열심히 잘하고 있으니 믿어달라"는 클린스만 감독의 주장이 공허하게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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