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생,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최대혁 2023. 8. 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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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쇄센터 일지] 서울 인쇄업의 중심지 중구에서 피어난 독립출판물들

문화 기획을 했던 사람이 '인쇄인들을 위하고 시민들에게 인쇄문화를 알리기 위한' 서울인쇄센터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용역으로 공공 기관을 운영하면서 공간을 꾸리는 일, 시민들을 대하는 순간들을 소소하게 일지 형식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기자말>

[최대혁 기자]

'독립출판'이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단어가 되면서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내 이름으로 책을 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열심히 글을 써 원고를 완성했다고 해도 그것을 책으로 인쇄하고 서점에 보내 독자들을 만나게 하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지난 봄, 서울시 중구에서 <시작, 작가>라는 이름으로 지역 주민들이 출판에 대해 배우고 소정의 인쇄비를 지원해 직접 책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얼핏 들으면 여느 책 만들기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이지만, <시작, 작가>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인쇄업체가 밀집한 충무로, 중구 내 산업과 지역주민의 문화활동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보다 의미를 갖는다.
 
▲ <시작, 작가> 전시장 서울 중구에서 인쇄업과 도심 제조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공간 을'에서 <시작, 작가>의 결과물인 15종의 책들을 전시하고 있다.
ⓒ 공공네트워크(사)
 

약 3개월의 기간을 거쳐 완성된 <시작, 작가>의 작가들은 어떤 책들을 만들어냈을까? 마침 중구에서 작가들의 책을 전시하고 있다고 해서 전시장에 들러 15권의 책을 살펴보았다. 평범한 이웃이 낸 책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에게 위로와 공감, 그리고 나도 이들처럼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여행이나 일로 타지에서 보낸 시간은 책으로 내기에 좋은 소재다. 20대에 남미로 떠난 배낭여행을 30대에 접어들어 돌아본 <남미에 간 이유를 아무도 묻지 않았다>(김지현 저)와 3년 간의 중동 건설현장 경험, 10년에 걸친 프랑스에서의 공부와 일과 삶을 각각 담아낸 <사막편지>(모래곰 저), <이방인의 공공살이>(추민아 저)가 그런 책이다. 특히 <이방인의 공공살이>는 얼마 전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해 시중에 유통되어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책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문학도이다. 서랍 속에 숨겨두었던 원고를 용기있게 책으로 펴내보는 건 어떨까? <누가 남긴 거슬림>(이민영 저)는 4편의 희곡을 실은 희곡집이며, 3편의 중편소설이 담긴 <하룻밤 나기>(이수빈 저)는 소설집, <2의 8제곱일의 시>(진동 저), <시작, 노트>(임온익 저), <파도는 망망대해에 떨어진 내 눈물이 할 수 있는 일>(이은미 저)는 한줄 한줄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쓴 흔적이 역력한 시집이다.

꼭 글만 책이 되는 건 아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린 그림을 모아 끈기와 꾸준함이 주는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100일 100그림>(임종심 저), 사랑을 듬뿍 담아 아이와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글을 묶어 책으로 펴낸 <다시 쓰는 드로잉 성장 육아일기>(꼼지락덕후 저)와 같이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했다면 어떤 흔적이든 종이에 찍어내는 게 가능하다.

자신의 일상을 개성있는 필체와 구성으로 풀어낸 에세이 역시 초보 작가들에게 인기다. 누군가의 부모나 배우자, 좌충우돌하는 생활인, 새로운 탈출구를 찾는 블로거 등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적은 <나에게 주문을 거는 마법같은 시간>(장효선 저), <다시, 사랑하는 중 II>(최은경 저), <매일 똑같은 하루는 없다>(김현 저), <안녕! 오늘도 잘 부탁해>(이누리 저), <오늘도 로그인>(신지선 저)을 읽다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꾸리며 쌓아나가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또 아이를 먼저 보내고 남편을 잃은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을 간신히 활자로 적어낸 눈물 겨운 사연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 <시작, 작가> 전시회 모습 서울시 중구청에서는 지난 5월 8일, 사흘에 걸쳐 청사 1층에서 <시작, 작가>를 통해 제작된 책을 전시했다.
ⓒ 공공네트워크(사)
 

이정도로 갖춰진 책을 만들었다면 어느 정도 인쇄나 출판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참여했던 건 아닐까? 중구청과 협력해 이번 프로그램을 운영한 기획자 전율(공공네트워크(사))씨는 "기술이 전혀 없던 사람이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짧은 기간 안에 인쇄용 디자인 원고를 제작하는 게 가능하다"며, "50대 이상의 구민들도 교육을 통해 직접 인쇄까지 해내는 것을 보며, 약간의 지원만 있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중구에서는 도심산업과를 중심으로 을지로 전시·체험공간 '을'을 개관해 운영하는 등 을지로 일대에 자리 잡은 조명·인쇄출판·패션산업과 지역주민 사이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나만의 이야기, 내 삶의 일면을 동네에서 풀어내보는 건 어떨까? 중구 일대에서 벌어질 새로운 '시작'들을 기대해본다.

* 소개된 책들은 을지로4가역 대림상가 3층 공중보행로에 마련된 도심 산업 그라운드 공간 '을'과 서울인쇄센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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