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독립 분투가 문화 황금기로 이어진 이유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앞서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곧 네덜란드로 향했습니다. 암스테르담에 들어오는 기차에서부터 네덜란드에 온 것을 실감했습니다. 기차의 차창 밖으로 넓게 펼쳐진 화훼 단지를 보았습니다. 도심에 들어오자 곳곳에 운하가 보입니다.
하늘의 모습도 어느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에서 보았던 것과 꼭 닮아 있습니다. 물론 하늘의 모습까지 닮았다 생각한 것은 그냥 제 착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네덜란드로 들어가는 길, 저는 제가 좋아하는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을 볼 생각에 들떠 있었거든요.
▲ 암스테르담의 운하 |
ⓒ Widerstand |
베스트팔렌 조약은 네덜란드의 독립 뿐 아니라 많은 것을 규정한 조약이었습니다. 당시 유럽 국가들 사이 지리적인 구분을 명확히 했죠. 지리적인 경계가 뚜렷해지며 근대적 국민국가(Nation-State)의 형태도 점차 자리를 잡게 됩니다.
무엇보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개신교에게도 가톨릭과 평등한 종교적 권리가 있다고 확인한 조약이었죠. 일종의 '종교의 자유'를 허가한 조약이었습니다.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제는 세속적인 국가가 권력의 정점을 차지한 것입니다. 유럽 근대의 기반을 만든 조약이었죠.
▲ 네덜란드 국기와 암스테르담 |
ⓒ Widerstand |
종교의 자유와 근대적 국민국가의 탄생. 그것이 30년의 전쟁 끝에 유럽 국가들이 모여 만든 합의였습니다. 네덜란드라는 국가 자체가 유럽의 근대와 함께 탄생한 것이죠. 어쩌면 네덜란드는 그 자체로 자유와 계몽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독립 이후 네덜란드는 문화와 산업의 황금 시대를 맞았습니다. 이제 종교적 탄압과 전쟁의 압박은 사라졌고, 스페인의 식민지 수탈로부터도 자유를 찾았으니까요. 직업적 성공과 자유로운 재산 축적을 장려하는 개신교의 윤리관도 경제적 성장을 불러왔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동방 무역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가져왔습니다. 동남아시아와 남아프리카 지역에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건설되었죠. 서양 국가 가운데는 유일하게 에도 시대의 일본과도 교역했습니다.
무역의 발달과 부는 곧 금융업의 성장도 가져왔죠. 증권거래소와 은행이 곳곳에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당대 유럽 국가 가운데서는 가장 빠른 축에 들었습니다.
▲ 암스테르담 중앙역 |
ⓒ Widerstand |
그렇게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의 전성기가 찾아옵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야콥 판 루이스달, 요하네스 베르메르, 얀 스틴, 그리고 렘브란트까지. 지금까지도 잘 알려져 있는 수많은 화가가 짧은 시기 네덜란드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 베르메르의 풍속화 |
ⓒ Widerstand |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상설전시의 중심은 역시 렘브란트가 그린 <야경>입니다. 보존 작업을 하고 있는지 장비들에 가려져 있어, 아쉽게도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크기에서 나오는 압도감과,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작품에서 뿜어나오는 빛 만큼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램브란트, <프랑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야경)> |
ⓒ Widerstand |
하지만 네덜란드의 문화적 유산은 남았습니다. 17세기 바로크 화가들의 작품은 여전히 네덜란드의 미술관 곳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 뒤에도 네덜란드에서 수많은 거장이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 <해바라기>가 전시된 고흐 미술관 |
ⓒ Widerstand |
네덜란드의 미술관에서, 저는 네덜란드라는 국가가 탄생했던 '황금 시대'의 유산 속을 걸어 본 셈입니다. 그 열정을 그림으로 투영한 화가들의 붓 끝에, 여전히 한 시대가 살아 숨쉬고 있었으니까요.
지금까지도 그 유산은 암스테르담 곳곳에 녹아, 미술관 사이를 흐르는 운하에 실려 흐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네덜란드의 새로운 '황금 시대'와, 암스테르담의 문화적 유산 위에서 성장할 새로운 '빈센트 반 고흐'를 기다리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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