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 당한 中 탈북여성들, 국경개방 앞두고 탈출"

장희준 2023. 8. 2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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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사 등으로 탈북 뒤 中에서 인신매매
시골 등 팔려간 뒤 구타 시달리며 인권유린
5명 모두 韓 입국…"中 탈북 지원활동 난항"

북·중 국경 개방이 임박하면서 재중 탈북민에 대한 강제북송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에 체류 중이던 탈북여성 5명이 무사히 탈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신분이 없는 불안정한 상태로 인신매매 등을 겪으며 20년 가까이 인권을 유린당한 여성들은 현재 모두 한국으로 입국했으며, 정착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1일 북한인권증진센터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지난달까지 센터의 지원을 받은 재중 탈북여성 5명이 구출됐다. 이들은 모두 30~40대로, 전원 한국으로 입국에 성공해 하나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에서 정착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인권증진센터의 도움으로 올해 4~7월 중국에서 한국까지 탈출하는 데 성공한 탈북여성들이 중국 국경을 벗어난 뒤 태국 등 제3국 경찰서에서 '무사 탈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사진제공=북한인권증진센터]

이번에 구출된 여성들의 최초 탈북 시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16년까지 각기 다르지만, 이들이 밝힌 탈북 이유는 열악한 경제 사정 등 대부분 비슷한 것으로 파악됐다. 투병이나 아사(餓死·굶어 죽음) 등으로 부모·가족을 잃고 난 뒤 북한에서 더 이상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된 상황이 탈북을 결심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특히 여성들은 중국으로 탈북한 뒤 인신매매를 당해 동북삼성 지역으로 팔려 갔고, 중국인 남성과 강제로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의 폭력과 구타 등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인신매매로 강제결혼을 시도하는 중국인 남성은 대체로 외진 시골 마을에서 거주하거나, 경제적으로 생활 여건이 좋지 않아 늦은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한 경우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법 체류자'로 간주하는 탓에 이들 탈북여성은 신분이 없는 상태로 불안한 생활을 이어왔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신분증이 없어 몸이 아파도 병원이나 약국에 갈 수 없었고, 식당에서 몰래 일을 하면서도 언제 공안에 신고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는 것이 여성들의 이야기다.

2018년 9월 한복을 차려입은 북한여성들이 평양 외곽에서 열린 ‘조선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국제 행군’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지출처=AFP·Getty image]

한 탈북여성은 "중국인 남편과 지내면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다"며 "신분 보장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매일매일 불안하게 지내야 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중국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면, 학교로부터 부모의 신분 확인을 요구받는 탓에 탈북여성들의 자녀까지 불안정한 생활을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 소장이 제공한 영상에는 탈북여성 5명이 탈출하는 과정이 담겼는데, 낮에는 활동가와 함께 차량으로 이동하고 밤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과 숲속을 뚫고 제3국 국경을 넘는 장면이 나온다. 밤낮없이 배틀 타고 바다까지 건넌 이들은 태국 등 제3국 경찰서에서 '무사 탈출' 소식을 전하는 영상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北, 국경개방 임박…재중 탈북민 본격 북송 우려

2007년 5월 태국 치앙라이주 치앙사엔 경찰서에서 제3국행을 기다리는 탈북민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북한과 중국 간의 국경이 개방되면 북한대사관내 억류된 탈북민과 공관 직원, 유학생 등이 가장 먼저 송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선 중국의 강제북송 정책이 ▲강제송환 금지 원칙 ▲고문방지협약 등 국제 규범에 반하는 행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반간첩법 등 검문 강화로 탈북민을 돕는 활동가도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이한별 소장은 "현재 중국 전역에 설치된 CCTV와 인공지능(AI) 안면인식 검문 체계로 이동 중에 체포되는 탈북민이 많아지고 있다"며 "특히 올해 7월 시행된 반간첩법 개정안 탓에 탈북을 지원하는 활동가마저 국경 인근에서 움직이기 위험한 상황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인권 보호'에 앞장서야 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중국의 만행에 고의로 침묵하고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지난 11일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등 우리 인권단체들이 공개 항의하는 서한을 발송하자 유엔 측은 곧바로 "북한 주민들이 강제로 북송되는 상황에 우려하고 있으며,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해명했다.

한편,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6일 '재중 억류 탈북민 강제송환 반대 세미나'에서 중국 정부를 겨냥해 "중국 내 탈북민은 불법 입국자이기에 앞서 그 생명과 인권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난민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언급하며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북송은 국제규범의 정신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탈북민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전원 수용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는 "정부는 한국으로 오기를 희망하는 모든 탈북민을 전원 수용할 것"이라며 "중국을 비롯한 제3국에 있는 탈북민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국내로 입국하고, 어떤 차별이나 불이익 없이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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