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 노른자위 용산마저도…키움證 500억 ‘브리지론 디폴트’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8. 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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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주관, 512억원 규모 브리지론 디폴트
중순위 셀다운 채권 투자자들과 분쟁
브리지론 잠재 부실 현실화 우려 고조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서울 용산에서도 브리지론 디폴트 사례가 나왔다. (연합뉴스)
고금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국내외 부동산 금융 부실이 속속 현실화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공실률이 높아진 해외 부동산 자산에서 줄줄이 손실 위기를 맞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서울 노른자위 땅 용산에서 수백억원대 ‘브리지론 디폴트(Bridge Loan Default)’ 사례가 나와 대체투자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브리지론은 부동산 프로젝트금융(PF)의 첫 단계로 땅을 매입하기 위한 고금리 단기 대출 성격이 짙다. 지난해 말 이후 상당수 브리지론이 살얼음판을 걷듯 3개월, 6개월씩 가까스로 만기 연장을 해왔던 터라 올 하반기 잠재 부실이 줄줄이 현실화할 것을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대체투자업계와 키움증권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업무·상업시설 건축 사업을 위해 키움증권을 금융주관사로 끼고 개발PM을 맡은 스타로드자산운용 등이 참여한 브리지론이 디폴트 처리됐다. 해당 개발 건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24-3, 124-4(2개 필지)로 지하 4층~지상 4층에 걸쳐 업무시설 4개층, 근린생활시설 3개층을 건축할 예정이었다. 브리지론은 선순위 427억원, 중순위 70억원, 후순위 15억원 등으로 총 512억원 규모다.

시행사가 브리지론 조달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스타로드이태원SPC)에 원리금을 상환하면 이 SPC는 3개 트렌치의 대출 채권 투자자에게 약속한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는 일반적인 구조다. 1차 만기였던 올 5월 말까지 본PF가 집행되지 않자 2개월 만기 연장 과정에서 투자자 사이에서 잡음이 불거졌고 결국 7월 말로 디폴트 처리됐다. 고금리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데다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로 개발이익 불확실성이 커지자 1군 건설사 대부분이 책임준공을 외면한 것으로 알려진다.

부동산 PF의 골자는 시행사가 땅을 사고(브리지론) 시공사가 건물을 지어(본PF) 판매(분양)하는 것이다. 이때 땅을 사기 위해 조달하는 대출이 브리지론이다. 예를 들어, 땅을 매입하는 데 100만원이 필요하다면 시행사 자금을 10%(10만원) 정도 넣고 나머지 90%(90만원)를 저축은행이나 증권사 등 제2금융권에서 최소 10% 이상 고금리를 주고 빌린다. 땅을 확보한 뒤 관할 관청에 ‘여기에 주상복합 또는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겠다’며 건축 인허가를 신청한다. 이때 주요 건설사의 책임준공 확약과 함께 인허가를 받으면 본PF로 전환되며 공사비용을 조달(파이낸싱)할 수 있다. 즉, 공사비용이 100만원 든다면 본PF에서 200만원을 빌린 뒤 땅 사려고 빌린 90만원(브리지론)을 갚고 나머지 돈 110만원 정도를 공사비로 쓰는 구조다.

키움증권 측은 “어려운 금융 환경에도 불구하고 PF 모집과 자산 매각을 통한 기존 투자자금 상환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으나, 브리지론 전체의 기한이익이 상실됐다”며 “현재 우선수익자인 선순위 투자자가 담보 토지에 대한 공매 신청을 결정하였으며 공매 개시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브리지론의 중순위(메자닌) 대출 채권은 A투자증권이 리테일 전문투자자를 대상으로 셀다운(대출 채권을 유동화해 트렌치 상품으로 재매각)한 상품이라는 점에서 시장 일각에서는 이를 기관 투자자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의 단면으로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적격 전문투자자를 대상으로 사모 채권을 판매한 것이지만 정보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만큼 거래 전 과정이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금융 주관사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한, 셀다운에 참여한 여러 투자자가 복잡한 부동산 PF 구조와 잠재 리스크를 속속들이 알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금융 당국이 부동산 PF 부실 가능성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잇달아 내면서 대체투자 업계에서는 ‘셀다운 물량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급박한 분위기 속에서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셀다운은 어지간한 우량 거래가 아니고는 매각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게 대체투자업계 진단이다.

익명을 원한 대체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는 고유 계정보다는 셀다운 위주로 부동산 IB 사업을 다루다 보니 셀다운 물량이 많이 쌓인 것이 사실”이라며 “지난해부터 금리가 워낙 올라 셀다운 물량 수익성 자체가 기관 눈높이에 안 맞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미매각 물량은 리테일창구를 통해서라도 서둘러 털어내자는 것이 작금의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이번 브리지론 주관사인 키움증권과 중순위 채권을 셀다운한 A투자증권은 개인 투자자들과 분쟁도 벌이고 있다. “만기 연장 과정에서 선순위 투자자만 금리 상향 조정이 이뤄지고 중순위와 후순위는 금리 조정에 관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게 투자자들 주장이다. 대체투자업계 관계자는 “통상 금리 조정이 있을 경우 3개 트렌치 투자자 모두 상향하는 것이 거래 관행”이라며 “선순위만 금리를 올려준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촌평했다.

이에 대해, 키움증권 측은 “최초 만기 연장 시 각 투자자들에게 연장금리 동결을 요청하였으나 선순위 중 일부 투자자가 내부심의 통과 요건을 들어 연장금리 인상을 요구했다”며 “이에, 기한이익상실(EOD)를 방지하고자 이를 수용하고 중·후순위 투자자에게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브리지론 디폴트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올 하반기 전국 부동산 PF 사업장에서 브리지론 만기가 줄줄이 돌아오면서 잠재 부실이 속속 터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땅만 매입한 상황에서 브리지론 디폴트가 나면 여기에 참여한 투자자는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프리미엄을 주고 산 땅을 개발을 위한 삽도 못 뜬 채 매각하는 과정에서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질권 설정 등으로 투자자 간 권리 관계가 얼히고설킨 것도 원활한 매각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제2금융권 관계자는 “상당수 금융기관이 브리지론 만기를 다시 연장해 본PF가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디폴트를 선언하고 땅을 팔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한다”며 “부동산 자금 시장 경색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이는 만큼, 향후 더욱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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