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들인 고양 창릉천 솔내음누리길, 1년 반 만에 '와르르'
[고양신문 유경종]
▲ 산책로 하단 석축과 시멘트가 침식으로 붕괴되어가고 있는 창릉천 '솔내음누리길' 산책로. |
ⓒ 고양신문 |
석축은 무너지고, 산책로는 뜯겨나가고, 징검다리는 떠내려갔다. 30억 원 들여 조성한 창릉천 '솔내음누리길'이 1년 반 만에 와르르 무너졌다.
창릉천 발원지인 사기막골 바로 아래 효자2교부터 북한산성 입구 장산교까지 2.8㎞ 구간에 조성된 솔내음누리길은 경기도 생활SOC사업공모에 선정되며 확보한 15억원에 고양시가 15억원을 보태 총 30억원이라는 적잖은 예산을 투입해 만든 하천변 친수시설로서, 2021년 12월 조성을 완료했다.
전체 지형에 따라 보행로, 보행데크, 다리 등을 만들어 전체 구간을 안전한 산책로로 연결하고,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포인트마다 징검다리, 휴게데크, 벤치, 화장실 등을 설치했다.
▲ 집중호우를 견디지 못하고 비틀어져 통행금지 구간이 된 징검다리. |
ⓒ 고양신문 |
친수시설이 '접근금지' 위험시설
하지만 반 년 만에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가 휩쓸고 지나가자 징검다리가 틀어지고, 일부 축대에 구멍이 생기는 등 곳곳에서 구조적 결함이 드러났다. 또 한 번 여름을 넘긴 현재 상황은 어떨까? 16일 카메라를 들고 솔내음누리길 전 구간을 답사해보니 상황은 깜짝 놀랄 만큼 처참했고, 행정의 대처는 황당했다.
징검다리 하나는 하부가 침식돼 비틀어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아예 하류로 떠내려가 있었다. 암반에 지지대를 박아 만든 데크형 산책로는 그나마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둔치에 석축을 쌓고 시멘트길을 깐 산책로 구간은 석축 아래부터 침식이 시작돼 곳곳에 틈이 벌어지고 균열이 생겨 언제 무너질지 모를 만큼 위험천만해 보였다.
▲ 왼쪽은 1년 전 사진. 현재는 석축과 산책로가 모두 무너져내렸다. |
ⓒ 고양신문 |
시가 만들었지만 관리는 구청 몫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고양시는 "수해복구는 구청 담당"이라며 팔짱을 끼고 있다. 시 생태하천과 담당공무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가 진행한 솔내음누리길 조성은 수해를 방지하는 치수(治水) 사업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친수(親水)시설 조성사업이었을 뿐"이라며 "친수공간 조성은 원래 목적에 맞게 조성됐고, 설계와 시공 업체도 입찰을 통해 선정했다.
이후 덕양구청으로 관리책임이 이관됐는데 여름철에 많은 비가 내려 수해를 입은 것이고, 수해복구는 구청에서 담당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 휴식공간을 조성한 것이므로, 수해 대비까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답변이다. 담당공무원은 설계와 시공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자의 질문에 "문제가 없었다. 복구에 대해서는 구청에 문의해달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덕양구청 담당자의 답변은 그나마 구체적이었다. "사실상 솔내음누리길 전 구간에 대해 재공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애초에 산책로를 조성하면서 기초를 암반까지 연결하지 않아 훼손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재공사를 한다고 해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보강공사는 최초 공사와는 달리 암반과 석축을 일체형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징검다리는 포기하고, 일부 구간에 보행교를 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구청이 진행하는 보강공사를 위해 포크레인 진입로를 만들어놓은 모습. |
ⓒ 고양신문 |
급류구간에 무리하게 공사 강행
하지만 추가비용을 들이고, 새로운 공법을 도입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큰물과 암석이 뒤섞여 쏟아져 내리는, 북한산 사기막골 계곡과 바로 연결되는 구간에 석축과 산책로를 만든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솔내음누리길 바로 옆에 집과 농장이 있는, 마을 통장을 지낸 효자동 주민 A씨는 "이곳 물살이 얼마나 센지 모르고 쓸데없는 공사를 했다. 모래 위에 돌덩이를 얹어놓고 징검다리라고 하고 있으니, 이 공사가 얼마나 생각 없이 진행됐는지 하나만 봐도 뻔하다"며 솔내음누리길 조성 자체를 강하게 성토했다.
▲ 1년 전 모습과 현재 모습 비교. 하도를 뒤덮었던 바위와 돌덩이가 사라지고 포크레인이 다니는 길이 생겼다. |
ⓒ 고양신문 |
포크레인 길 만들며 자연암반 파괴
현장 답사를 통해 목도한 가장 우려스려운 장면은 밑도 끝도 없이 진행되는 복구작업으로 인해 보존가치가 높은 창릉천 최상류의 자연환경이 회복 불능 상태로 훼손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솔내음누리길이 지나는 코스는 거대한 화강암반이 융기하며 형성된 북한산의 지질 특성이 고스란히 이어진, 크고 작은 암석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자연하천 구간이다. 그런데 전 구간에 걸쳐 대대적인 복구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물길의 바위들을 깨뜨리고 다져가며 포크레인이 지나는 평평한 대로를 만들어놓았다.
때문에 찾는 이들의 눈을 시원하게 해주던 암반 계류(溪流)의 풍경들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행정력을 기울여 지키고 보존해도 모자랄, 고양에서 가장 뛰어난 하천 자연경관을 시와 구청이 포크레인을 앞세워 파헤치고 있는 셈이다.
▲ 자연경관을 훼손하며 복구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 |
ⓒ 고양신문 |
창릉천 통합하천사업 연계, 큰 그림 그려야
솔내음누리길은 고양시가 320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며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창릉천 통합하천정비사업'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시는 사업을 통해 창릉천을 고양시를 상징하는 명품하천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고양시의 모토인 '멱감고 발 담그는 하천'을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구간인 최상류부가 땜질식 복구공사로 훼손되고 있는 상황을 간과하고 있다.
창릉천 통합하천사업 관련 타당성용역 착수보고에서 제시된 기초계획안에 따르면, 솔내음누리길 구간에 보축공사와 교량 보강공사가 계획되고 있다. 그렇다면 당장 부실공사로 초래된 복구공사를 무리하게 서두를 게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창릉천 최상류부 정비에 대한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밑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을까.
현장 답사와 관련부서 취재를 통해 정리된 기자의 의견은 두 가지다. 첫째, 2021년 12월에 마무리된 창릉천 솔내음누리길 조성사업의 설계와 시공,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지금이라도 따져봐야 한다.
▲ 암반 아래쪽까지 시멘트를 발라 새로 석축 기초를 쌓는 모습. |
ⓒ 고양신문 |
▲ 하부가 침식된 산책로. |
ⓒ 고양신문 |
▲ 자연하천의 모습이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훼손된 모습. |
ⓒ 고양신문 |
솔내음누리길 파손 이전의 모습 (2022년 7월 촬영)
▲ 솔내음누리길 안내 이정표. |
ⓒ 고양신문 |
▲ 나무그늘 휴게데크. |
ⓒ 고양신문 |
▲ 친수 스탠드. |
ⓒ 고양신문 |
▲ 전 구간을 연결하는 산책로. |
ⓒ 고양신문 |
▲ 화강암 계곡의 아름다운 경관. |
ⓒ 고양신문 |
▲ 징검다리. |
ⓒ 고양신문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고양신문에도 실렸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