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만 원 대출로 시작한 사업, '된다'는 희망이 나를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고향은 출신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같은 하늘 아래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무게로 잠깐 낯설다가도 곧바로 안정감을 느끼는 마음의 공간이다. 일자리를 찾아, 원대한 꿈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각지를 떠돌며 밤낮없이 일에 매달릴 때에도 떠올리면 따뜻하고 언제나 그리운 곳이 고향일 것이다. 이처럼 여전히 고향 함양을 그리며 살아가는 향우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주간함양>은 매달 한 편씩 연재되는 ‘함양 향우를 찾아서’ 특집을 통해 각지에 있는 고향 향우들을 만나 끈끈한 정을 느껴보고자 한다. <기자말>
[주간함양 김경민, 최경인]
긍정과 용기로 끊임없이 세상과 맞섰다. 부산의 중심에 서서 '된다! 된다! 잘 된다! 더 잘 된다!' 구호를 당당히 외치는 향우 양재생 은산해운항공그룹 회장의 이야기다. 수동 출신인 양 회장은 현재 부산항의 글로벌 물류 기업 은산해운항공을 이끌며 초긍정 에너지를 증명해 내고 있다.
은산해운항공은 1993년 창립 이후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적인 사고로 대한민국 대표 물류 기업을 목표로 달려왔다. 고객 감동과 가치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해운 수출입, 항공 수출입, Sea&Air, 프로젝트 및 LCL 콘솔 등 다양하고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은산해운항공그룹 양재생 회장 |
ⓒ 주간함양 |
가난과 사명감
양 회장은 경남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 남계마을에서 태어났다. 효리초·수동중·함양제일고를 졸업하고 동아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75년 고등학교를 졸업과 동시에 부산으로 향해 자리를 잡았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함양에서 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는 양 회장, 지금의 초긍정 에너지의 불씨는 소년 가장이 되고 난 후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함양은 대한민국에서 가난한 지역에 속하는 지역 중 하나였고 저 또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소년 가장이 되었죠.
그러다 보니 정말 내가 중심이 되어서 어떤 일들을 열심히 해내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가 없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정말 초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졌을 때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깨달았죠."
그렇게 초긍정 마인드로 무장한 채 힘겨운 어린 시절을 버텨낸 양 회장은 부산으로 내려가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직장 생활을 해오다 1993년 은산해운항공을 설립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1993년도에 은산해운항공을 설립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잘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참 가득했고 대한민국의 한 획을 그은 정주영·이병철 회장님과 같은 분들 못지않게 원대한 꿈을 가졌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은산해운항공이 부산 경남은 물론 전국에서도 우뚝 서면서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난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긍정에 역사를 쓰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듯이 은산해운항공 또한 출발이 쉽지는 않았다. 3000만 원 은행 대출로 사업을 시작한 만큼 자금 부족으로 인해 초창기에는 회사를 경영하는 데 있어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은행에서는 담보력이나 어떠한 재산이 있어야 돈을 빌려주는데 초창기에는 그러한 능력이 없다 보니 자금을 조달하는 데 있어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때로는 지인, 친구, 선후배한테 작게는 50만원부터 100만원, 1000만원, 2000만원 등 이렇게 단기적으로 빌려서 회사 운영 자금을 마련한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말 수많은 분들에게 돈을 빌려 가면서 앞만 보고 달렸고 이로 인한 자금 조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거죠."
어려웠던 출발점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다듬어져온 양 회장의 초긍정 마인드는 위기를 물리치고 과감한 투자를 만들어냈다. 그 모든 역사가 은산해운항공을 우뚝 서게 한 것이다.
"이제 30년이 지난 지금 돌아봤을 때 9개 계열사를 만들 때까지 과감히 도전했던 그 순간순간들이 없었다면 은산의 간판은 없었을 거다는 아찔함이 느껴져요. 그때는 정말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 하고 불퇴전의 정신으로 용감하게 투자도 하고 영업도 하면서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임했던 지난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만한 이야기가 될지는 몰라도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우리 은산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은산의 조직 구성원들 중 정말 위대한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조직 구성원 모두가 정말 대단한 역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의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은산해운항공 건물에 들어서면 '된다! 된다! 잘 된다! 더 잘 된다!'라는 구호가 현판 등 곳곳에 명시되어 있다. 양 회장의 이러한 초긍정 행복 에너지 철학은 자연스레 종사하는 직원들에게도 전염된다. 양 회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이 긍정의 에너지를 안고 은산해운항공의 미래를 넓혀가고 있다.
"저는 꿈을 좋아합니다.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오. 내일은 내일을 굳게 믿는 자의 것입니다. 제가 꿈이 어릴 때도 컸고 또 그동안 살아오면서도 그 꿈에 대한 크기가 계속 점점 은행의 이자처럼 불어나서 커졌고 지금도 크기 때문에 앞으로 은산은 상상 이상으로 더 강하고 우렁차게 발전해 나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고향은 나를 외면하지도 버리지도 않는다
고향을 떠나 부산의 대표적인 자수성가 기업인으로 자리잡은 양 회장은 함양이 낳은 자랑스런 출향인이다. 은산해운항공을 이끌어왔던 열정만큼이나 고향에 대한 애정도 뜨겁다. 지난해 11월에는 고향 함양의 인재육성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사)함양군장학회에 1억 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2012년부터 수동중학교, 수동초등학교를 비롯한 관내 2개 고교에 꾸준히 총 1억3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고 지난해 거액의 장학금을 기탁하게 된 것도 극진한 고향 사랑이 반영된 결과이다. 2011년 재부함양군향우회장, 2014년 재부경남향우회연합회 회장, 2018년도부터 현재까지 재부함양군향우회 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남다른 고향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고향을 사랑하고 또 고향을 자랑하지만 우리 함양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유림이 강하고 또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고 예의가 바른 고장입니다.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 경우를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고향은 나를 외면하지도 버리지도 않습니다. 고향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입니다. 내 고향 함양이 행복 에너지의 원천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함양의 앞날을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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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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