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대만은 태풍 경보따라 휴업·휴교…"우리도 시스템 제대로 갖춰야"
대만, 휴업·휴교 재해 기준 법령 마련
최근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상당한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이번주에도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에 많은 비가 예보됐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커짐에 따라 국민 안전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콩·대만 등 태풍 피해가 잦은 곳들의 경우 경보에 따라 체계적으로 출근·등교를 제한하는 것처럼 우리도 전 국민의 안전을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10일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보되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각급 행정기관에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 교육부도 학생 안전을 위해 개학을 한 학교에 대해 임시휴업이나 원격수업 전환을 검토할 것을 시도교육청에 안내했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과 학교는 정상적으로 출근·등교했다. 일부 기업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고 학교의 경우 학사 운영 일정, 수업방식을 변경했을 뿐이었다.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구 트위터)에서는 ‘정상 등교’, ‘K직장인’ 등이 트렌드(인기)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서울에서 일하는 김모씨(28)는 “재택근무 권장 지침이 회사 구성원 모두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라 각 조직 책임자들에게만 전달이 됐다”며 “일부 팀은 재택을 했지만 그렇지 않은 팀들은 출근해야 했다”고 말했다.
우리와 다르게 해외에서는 태풍과 같은 재난 상황 때 시민들의 외출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홍콩의 태풍 경보 시스템은 T1~T10 단계로 나뉜다. T1 단계는 태풍의 중심이 홍콩의 800㎞ 이내로 들어와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다. T3 단계에서는 해수면 가까이 시속 41~62㎞의 강한 바람이 불고, 시속 110㎞를 넘는 돌풍이 불 수도 있다. T8 단계에서는 해수면 가까이 시속 63~117㎞ 바람이 불 수 있으며 돌풍은 시속 180㎞를 넘을 수도 있다. T9 단계는 돌풍, 강한 바람이 눈에 띄는 강도로 늘어난다. T10 단계는 허리케인 수준의 바람이 불며 시속 118㎞ 바람이 지속되거나 돌풍은 시속 220㎞ 넘을 수도 있다.
홍콩 기상청은 T8 단계가 2시간 이내 발령될 가능성이 있다면 Pre-T8 경보를 일반 시민들에게 보낸다. 고용주가 시차를 두고 노동자를 귀가 조치하고, 귀가에 장시간이 소요되거나 교통이 어려운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대중교통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서다. 재난 상황에서도 고용주는 필수 인력을 운용할 수 있지만, 해당 인력에게 관련 내용이 사전 통지돼야 한다.
T8 단계가 발령된 상황에서는 단계적으로 노동자들의 귀가 조치가 이뤄진다. 만약 T8 단계가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상황을 다시 공지하기 전 2시간 이내에는 안전한 장소에서 머물러야 한다. 만약 노동자들이 업무에 복귀해도 된다는 공지가 내려지면 오후 2시까지는 2시간 이내에만 직장으로 출근하면 되고, 만약 퇴근 시간까지 3시간 이하가 남은 경우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학교 역시 경보시스템에 따라 체계적으로 등교를 결정한다. T3 단계에서는 유치원과 특수학교 등교가 중단되며 T8 단계에서는 모든 학교의 등교가 중단된다.
대만은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의 휴업 및 휴교에 관한 법령을 마련해놨다. 태풍의 경우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만 부합하더라도 출근 및 등교가 중지된다. 구체적으로 ▲기상예보에 따라 태풍의 반경이 4시간 이내에 이 지역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며 평균 풍속은 초속 13.9~17.1m 이상, 돌풍의 경우 초속 24.5~28.4m 이상인 경우 ▲기상예보 또는 실제 관측에 따라 강우량이 출근 및 등교중지 기준에 도달해 재해를 일으켰거나 재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경우 ▲바람 또는 강수량이 출근 및 등교 중지 기준에 맞지 않는 지역에서는 지형 및 강우량의 영향으로 교통, 수도 및 전기 공급이 중단되거나 공급이 곤란해 교통, 출근 및 등교에 영향을 미쳐 재해 위험이 있는 경우다.
특히 하루 혹은 오전 출근 및 등교 중지 공고는 전날 오후 7시~10시 사이에 공고하고 오후 11시 이전에 방송되도록 언론에 통보해야 한다. 전날 공고가 이뤄지지 않아도 당일 0시 이후 기준을 충족할 경우 오전 4시30분 이전에 공고하고 오전 5시 이전에 방송하도록 하고 있다. 오후나 야간 업무, 수업을 중단하는 경우 당일 오전 10시30분 이전에 이를 공지하고 오전 11시 이전에 보도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관련 규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대규모 재난의 대응 및 복구를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두고 관할구역 재난 수습 등에 관한 총괄·조정은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시·도지사 혹은 시장·군수·구청장이 맡으며, 필요한 경우 대통령령에 따라 회의를 소집하고 행정 및 재정상의 조치나 그 밖에 필요한 업무협조 요청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휴업명령이나 휴교 조치 등도 포함돼 있다.
다만 대부분 권고 수준에 머무르는 데다 상황에 따른 구체적 대응 시스템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은 "지자체에서 논의해 조치를 취하면 되지만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재난 발생 지역이 지역별로 다른 만큼 지자체 재난안전대책본부의 판단하에 출퇴근 시간 등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난의 단계별 세부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재난의 정도를 정량화, 수치화해서 개발해 국민들이 판단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스위치'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제는 표준 매뉴얼이 아닌 특화 매뉴얼이 있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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