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VESTORS]⑤최현만 회장 “성장 과정의 버블 잘 관리하는 게 리더의 역할”
지금도 직접 발로 뛰는 영업통…“제일 큰 영업은 회장인 내가 해야”
“리더십과 경영의 공통점은 호흡 조절”
편집자주 - 한국 자본시장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어느 때보다 혼탁하다. 작전이나 반칙이 판을 친다. 그러나 외환위기부터 닷컴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자신만의 투자 세계를 개척해 개인 투자자들의 모범으로 떠오른 투자가도 많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자본시장의 전쟁 같은 스토리와 그들의 철학, 실패와 성공담으로 돈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한다. 가치투자와 행동주의, 글로벌 '큰 손'으로 거듭난 국내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부터 사모펀드와 자산운용사를 이끄는 리더, 금융사 최고경영자 등 다양한 분야 고수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자본시장의 역할이 뭘까요? 인공지능의 역할이 뭘까요? 오픈AI 창업자인 샘 올트먼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자본시장에 있는 우리들도 다시 생각해 볼 점이 많습니다. 그는 보편적 기본 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이라는 개념을 창업 초기부터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것인데요. 기술로 벌어들인 돈을 일정 금액 이상이 되면 다시 사회에 환원을 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고 하죠. 저는 기본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이, 부자가, 건강한 사람이 그보다 약한 사람을 이끌어주는 사회, 그것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초석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 넘게 자본시장에서 고객들의 투자와 자산 형성을 도운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이 꺼낸 화두는 다소 의외였다. 자본시장의 무한경쟁, 적자생존의 전략을 설파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랐다.
"제가 1993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어느 마케팅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여러분이 돈을 다룰 사람이면 점심시간에 월스트리트에 가 봐라. 길가에 벤츠가 줄 지어 있고 정말 좋다. 지금 거기 앉아서 보면 경치가 좋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당신네가 종사할 업종에서 자살하는 사람도 정말 많을 것이다. 그걸 제가 노트에 적어놨더라고요. 지금도 그 교수님의 말씀을 곱씹고, 새깁니다."
가격, 자산, 사람의 분산이 중요
그런 측면에서 최 회장이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세 가지 분산'이 있다. 가격, 자산, 사람이다. 특히 고객의 투자를 돕는 증권업의 특성상 사람을 뽑을 때 유의한다.
"첫 번째는 가격 분산 즉, 시기의 분산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시점을 나눠서 사고 나눠서 파는 것이 되겠죠. 전문가들도 점쟁이처럼 사고파는 시점을 똑 따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기를 분산하는 것이죠. 두 번째로는 상품의 분산입니다. 자산군을 나눠서 담으라는 것이죠. 세 번째가 중요한데 인적 리스크의 분산입니다. 이것은 윤리적인 부분입니다. 자본시장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투기심리와 유혹에 굉장히 약한 분야입니다. 저는 사람을 뽑을 때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서 품성을 봅니다. 제가 이 업을 오래 하다 보니까 말을 던져보면 특히 전문가라고 하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이 금방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친구는 미안하지만,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같이 일을 못 합니다."
최 회장은 1989년 한신증권에 입사하면서 증권 업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남들과 경쟁할 것은 성실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여의도 전 증권사의 리포트 핵심 내용을 추린 보고서를 만들어 기업에 배포했다. 서초지점장 시절, 사내 영업실적 7위였던 서초지점을 2년여 만에 사내 2위, 전국 증권사 15위 점포로 올려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1997년 최현만 회장은 미래에셋그룹 글로벌전략가(GSO) 박현주 회장의 제안을 받고 미래에셋 창업에 동참했다. 최 회장이 대리, 박 회장이 부장이던 시절 만나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시작은 모험이었다. 최 회장은 "미래에셋도 처음에는 스타트업이었다"고 표현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지금은 영업수익 20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금융그룹이 됐지만 불과 20년 전 미래에셋은 국내 첫 자산운용사, 자본시장의 개척자였다.
"우리 회사도 한때는 벤처였고, 저는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였죠. 직원으로 시작해서 회장까지 했으니 굉장한 명예죠(웃음)? 창업 초기에는 회사를 알리려고 방송 출연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당시에도 기라성 같은 회사가 많이 있었는데, 미래에셋은 그때 증권사도 아니고 자산운용사였는데 방송국에서 감사하게도 자꾸 불러주셨어요. 회사가 이름 없고 신선하고 순수하다면서. 제가 1년간 방송사고 한 번도 안 내니까 나중에는 마감 뉴스에서 생방송으로 시황도 맡겨 주시고. 심야토론에도 불러주시고. 다 나가서 열심히 했죠. 그때 경험이 지금도 강연하고 세미나 하고 영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미래에셋도 처음에는 스타트업이었다"
최 회장은 창업 당시 국내 첫 자산운용사였던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를 맡아 2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1999년에는 미래에셋벤처캐피탈 대표이사를 맡았다. 박현주 회장의 당시 숙원이었던 미래에셋증권이 그해 12월에 출범하자 첫 CEO를 맡았다. 2005년 미래에셋증권의 기업공개(IPO)를 이끌었고 2007년 홍콩에 법인을 내면서 해외 사업도 시작했다. 2012년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에 올랐다. 미래에셋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연금사업을 크게 확대했고, 2009년부터 끌어오던 기업공개도 성공했다. 2016년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로 복귀해 당시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통합작업을 총괄했다. 박현주 회장이 두 회사의 빠른 화학적 결합을 끌어낼 적임자로 최현만 회장을 꼽았다.
박현주 회장이 2018년 미래에셋증권 홍콩 회장으로 가면서 본인의 집무실을 최 회장에게 내줬다. "어떻게 하면 그룹 회장이 자기 방까지 내어주냐"는 '농반진반'의 질문에 최 회장은 "서로 믿는다"고 답했다. "돈도 없는 나한테 창업하자고 했잖아요.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서로 믿음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죠. 이제 회장까지 된 마당에 내 역할 해주는 것으로 자본시장맨으로서 큰 명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는 36층에 있는 집무실까지 걸어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혼자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서 올라가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리더십과 운동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바로 호흡입니다. 어떤 운동이든 호흡이 중요합니다. 리듬에 맞게 호흡에 맞게 하면 어떤 운동이든 할 수 있습니다. 수영, 요가, 등산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등산할 때 오르막을 오르게 되죠. 남녀노소 생각 없이 막 힘차게 올라가 버립니다. 그러다가 금방 지치고 헉헉거리게 되죠. 저는 등산할 때 처음에는 앞에 서서 출발합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지치면 다시 뒤로 갑니다. 맨 뒤에서 밀고 올라가는 거죠. 그러다가 다시 앞으로 갑니다. 또다시 뒤로 가고. 이렇게 하다 보면 다 함께 정상에 도착하죠. 이게 호흡이 돼야 가능한 겁니다. 일할 때도 똑같습니다. 모든 것이 호흡 조절입니다."
최현만 회장은 증권 업계에서 소문난 직접 발로 뛰는 영업통이다.
"저는 리더가 아니라 영업맨이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지금도 제일 큰 영업은 회장인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업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속된 말로 좀 가볍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정말 영업을 잘하려면 계획을 잘 짜야 합니다. 계획 있는 영업을 못 하는 사람이 조직관리에서 전략이 있을 수 없죠. 계획을 잘 세우면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늘려서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조직을 이길 순 없다는 것입니다.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기업 운영에서 조직된 힘은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성장은 버블이 쌓여가는 과정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증권사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 달성(2020년), ESG 경영 3관왕 달성 등의 성과를 거뒀고, 2023년 5월 말 기준 11조2000억원의 자기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증권사로 성장했다. 모든 부분에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 현만 회장이 생각하는 성장이란 것은 냉정하게 말해 버블이 쌓여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버블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경영자이자 리더가 고객과 조직원들을 위해 해야 할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객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여러 가지 지수들을 보잖아요. 이것이 6개월 후에 실물에 영향을 주고, 그 전에 주가지수에 반영이 되죠. 이런 것들을 잘 분석해서 고객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우리 임무입니다. 이 임무에 충실해야지, 고객들에게 특정 종목을 설명하면서 지금 안 사면 후회한다는 식으로 감각적으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업계에서 1등을 한 번 하게 되면 우쭐하기 쉽습니다. 그것도 정신적인 버블이죠. 더욱더 겸손하게 고객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제가 지금 대표이사만 27년째 하잖아요. 능력이 특출나서? 천만의 말씀입니다. 능력보다 책임감입니다. 저는 영업능력, 운용 능력, 마케팅 능력, 구조를 짜는 능력 그런 것을 다 갖추거나, 탁월한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직원들이 마음껏 일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던 '아 저 사람이, 회장이 저 자리에 있으니 책임을 져 주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게 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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