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마로니에 공원과 칠엽수의 상관관계
장마가 그치며 본격적인 여름 날씨가 시작되었지요. 바깥에 나가 걷거나 일할 때면 이 더위가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식물에게 여름은 광합성을 하기에 좋은 계절이고, 이를 통해 생산한 많은 양분을 열매에 보내 쑥쑥 키워내는 때죠. 나무마다 초록의 열매들을 매달고 살찌워나가는데요. 그런 식물들 가운데 이번에는 길가나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칠엽수에 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칠엽수는 잎이 일곱 장이라 그런 이름을 갖게 됐어요. 물론, 다섯 장짜리도 있긴 합니다만 주로 일곱 장을 매달고 있죠. 잎과 잎자루가 커서 나무의 수형은 좀 단순한 편인데요. 겨울이면 뾰족한 나뭇가지 끝에 창처럼 뾰족한 겨울눈을 달고 있어서 눈에 띕니다. 칠엽수와 비슷하게 생긴 나무로는 유럽칠엽수가 있어요. 서양칠엽수 혹은 가시칠엽수라고도 하는데 흔히 프랑스 등 남유럽 국가에서 가로수로 많이 심으며 ‘마로니에(marronier)’라고도 부릅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는 ‘마로니에공원’이 있죠. 마로니에 나무가 많아서 마로니에공원이라고 불려요. 그런데 정작 가보면 새로 심은 나무는 마로니에가 맞는데 오래전부터 있던 큰 칠엽수는 가시가 없는 일본칠엽수입니다. 이곳의 칠엽수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시절에 심은 것이라고 하는데, 일본칠엽수와 가시칠엽수가 비슷하게 생긴 데서 착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나중에라도 마로니에를 심었으니 본래의 이름에 맞는 공원이 된 것이지요.
마로니에, 즉 가시칠엽수는 이파리에도 살짝 톱니가 있어서 구분이 되지만 특히 열매에도 가시가 나 있어서 열매가 열리면 더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13년에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에게 선물한 것으로 지금도 덕수궁에 가면 볼 수 있죠. 일본칠엽수는 1925년에서 1933년 사이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해요. 유럽에서 왔든 일본에서 왔든 모두 칠엽수의 한 갈래이니 너무 나누지 않고 다 칠엽수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칠엽수 꽃은 5월에 하얗게 피는데, 마치 콘 아이스크림처럼 뾰족하게 다발로 핍니다. 그래서 열매도 주렁주렁 다발로 매달리게 되는데요. 밤알처럼 들어있어 정말 탐스럽습니다. 하지만 열매는 겉으로는 밤과 닮았지만 안에 글루코사이드를 함유하고 있어 생과로 먹으면 구토와 설사를 하게 되고, 심하면 위경련 등 위장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저도 한번 열매를 씹어 보았는데 엄청 떫고 써서 바로 뱉고 말았죠.
칠엽수 열매에 이처럼 독이 있는데도 말은 몸이 안 좋을 때 스스로 이 열매를 찾아서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Horse-chestnut’이라고 쓰지요. 사실 사람도 치질이나 염증·부종 등의 치료제로 칠엽수 열매 추출물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침팬지도 몸이 아플 때 치료를 위해 쓰고 맛없는 잎을 먹을 때가 있다고 하죠. 동물들이 치료를 위해 먹는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독이 되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약이 되기도 하는 거죠.
우리가 약국에서 사 먹는 대부분의 약은 사실 자연에서 온 것들입니다. 그러면 식물은 그런 성분들을 왜 만들었을까요? 초식동물들이 자기 잎이나 덜 익은 열매를 먹지 못하게 독을 만들어낸 것이지요. 그런데 그 독을 우리 사람이 약으로 사용하게 된 거예요. 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독은 적정량을 사용하면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약과 독의 경계는 참 미묘하지요. 그런데 그게 식물의 독에만 해당할까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과 사건들도 잘 알고 보면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가 아주 미세한 차이로 생깁니다. 그리고 어떤 사물도 한 가지 모습만 갖고 있지는 않죠. 사물을 바라볼 때도 사람을 볼 때도 다양한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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