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요즘 뭐 봐?]‘무빙’, 한국의 슈퍼히어로는 능력보다 마음에 방점을 찍었다

김은구 2023. 8. 21.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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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 포스터(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슈퍼히어로라는 판타지는 그 탄생하는 곳의 열망과 결핍을 담기 마련이다. 슈퍼맨의 탄생은 초국적인 강력한 힘에 대한 미국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고, 배트맨의 탄생은 갖가지 폭력이 위협하고 부정이 판치는 세상에 강력한 정의에 대한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탄생한 슈퍼히어로에는 어떤 열망과 결핍들이 담겨 있을까. 본격적인 한국적 슈퍼히어로의 세계를 들고 온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에는 그 답들이 들어있다. 

“나도 날고 싶단 말이야, 엄마!” 날 수 있는 공중부양 능력을 가졌지만 그걸 숨기기 위해 살을 찌우고 발에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가방에는 무거운 바벨을 넣고 다니는 봉석(이정하)이 끝내 엄마 이미현(한효주)에게 외치는 이 말에는 입시 경쟁 속에 살아가는 한국의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날 수 있는 능력을 숨기는 건, 한국 사회에서 남들과 다른 존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와 연결돼 있다. 초능력이라고 해도, 소수의 다른 존재들은 이상한 것으로 취급받으며 배척된다. 모두가 입시 준비를 하는 고3이라면, 모두가 그 길 위에 서 있어야지 허공에 떠있으면 안되는 게 바로 한국 사회라는 것이다.

이미현이 아들 봉석에게 그 남다른 능력을 숨기며 살아가게 하는 건, 자신 또한 초능력자로서 겪었던 과거사와 연결돼 있다. 안기부의 민용준(문성근) 차장이 초능력을 가진 이들을 관리하는 특별부서에서 관리됐던 이미현은,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진 김두식(조인성)에게 접근해 그의 사상검증을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김두식은 자신에게 접근하는 이미현의 작전을 일찌감치 간파한다. 그래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김두식은 이미현을 사랑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그래서 봉석이 탄생한 것이지만, 이들은 민용준 차장의 비정한 명령들을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무고한 이들을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살상해야 하는 일들이 그것이다. 이미현도 김두식도 자신들의 초능력이 그런 식으로 쓰이길 원치 않는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살리고 싶고, 권력에 이용되기보다는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싶어 한다. 초능력자로서 이용당하며 사느니 차라리 그 능력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미현과 김두식이라는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어떻게 이용되며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그런 능력자들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낫게 해주는 방식으로 그 능력을 써야 하는 게 맞지만, 실제로는 특정 권력 집단을 위해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아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권력의 욕망 속으로 뛰어들어 괴물이 되든가, 아니면 이용가치가 떨어져 폐기되는 게 이들의 운명이다. 능력을 가진 자들은 권력에 복무하고, 평범한 이들은 소외되는 부조리한 사회를 이미현과 김두식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슈퍼히어로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무빙’은 이들의 좌절만을 그려내기 위한 작품은 아니다. 결국 이렇게 이용당하다 폐기될 위기에 처한 인간적인 슈퍼히어로들이 어떻게 그간 웅크리고 있던 날개를 다시 펴고 날아오르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려 한다. 전 세대의 좌절을 후 세대인 봉석이나 희수(고윤정), 강훈(김도훈) 같은 초능력을 물려받은 이들이 어떻게 뚫고 나가는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결국 이들 한국적 슈퍼히어로들이 그리고 있는 열망과 결핍은 ‘휴머니즘’이다. 제아무리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타인을 위하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으면 오히려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아무런 인간적 고민 없이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은퇴한 초능력자들을 찾아가 하나하나 살해하는 프랭크(류승범) 같은 괴물이나, 무엇보다 필요에 의해 쓰고 버리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민용준 같은 괴물이 바로 그들이다. 하늘을 나는 능력으로 사랑하는 이를 위해 야식배달을 해주고, 초감각 능력으로 타인의 진심을 들어주는 이 인간적인 슈퍼히어로가 유독 우리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는 건 그래서다. 우리에게 결핍된 건 능력이 아니다. 그 능력을 따뜻하게 쓰는 마음일 뿐.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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