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카카오' 사옥 앞엔 "아무리 기다려도..." 김범수 노래만 [현장에서]
지난 17일 오후 12시,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카카오 사옥 앞. 지난달에 이어 이날 카카오 노동조합이 개최한 두 번째 집회는 ‘MZ세대 감성’으로 가득했다. 다른 민주노총 집회와 달리, 이날 250여명의 참석자 대부분은 단체 조끼 대신 단체 티셔츠를 입었고, 피켓 대신 흰색 양산을 손에 쥐었다. 노조는 이날 참석자들에게 ‘한정판 피규어’를 나눠줬다.
분위기는 명랑했지만 요구사항은 가볍지 않았다.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미래 이니셔티브센터장이 직접 최근 카카오의 경영난에 책임지고 사과하라는 것. 지난달부터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카카오의 주요 계열사들은 줄줄이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오치문 카카오 노조 수석부지회장은 “김범수 센터장이 최근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에 임명됐다고 한다. 회사는 곪아 터지고 있는데, 외부 이미지에만 신경 쓰는 모습이 참담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른 노조원들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브라이언(김범수 센터장의 영어 이름) 어디로 숨었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노조만 불안한 게 아니다. 주주들은 이 회사를 계속 믿어도 될지 불안하고 불만이다. 지난 2분기 카카오 실적은 암담했다. 신규 편입된 SM엔터테인먼트의 실적을 빼면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대비 41% 하락해 반 토막에 가깝다. 주가도 1년 전의 65% 수준(18일 종가 4만8450원). 한때 코스피 시총 3위(2021년 6월)까지 올랐던 카카오의 시총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문제는 카카오의 미래다. 전 세계가 AI 기술 경쟁으로 치열한 가운데, 카카오는 최근에야 AI 조직을 정비했다. IT업계 안팎에서는 지난해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 카카오가 기술 리더십을 잃어버린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풍랑이 거센 바다에선 선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IT 업계에서나 주주들, 혹은 카카오 이용자들에게 카카오라는 기업의 선장은 누굴까. 창업자이자, 카카오 지분 24.17%(지난 6월 말 기준·케이큐브홀딩스 등 특수관계인 포함)를 가진 최대주주 김범수 센터장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3월 회사의 글로벌 전략을 재편한다며 이사회 의장에서 사임한 이후 공식 직함은 미래 이니셔티브 센터장만 맡고 있다. 해외에서 카카오의 먹거리를 찾겠다고 했다. 전년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플랫폼 갑질’ ‘해외 안 나가고, 골목상권이나 침해하는 내수 대기업’으로 호되게 비판받은 이후였다.
그러나 1년 뒤 국감에 그는 또 불려 나왔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수일간 카카오톡 ‘먹통 사태’가 벌어진 직후였다. 카카오의 리더십 부재가 도마에 올랐다. 경영 복귀 의사를 묻는 국회의원의 질의에 그는 “전문적인 영역에서 시스템적으로 (경영을) 하는 부분이 저보다 더 역량을 나타낼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말은 맞다.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창업자의 카리스마보다 전문경영인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카카오가 ‘당장의 살림’과 ‘미래의 먹거리’를 분리할 수 있는 상황인지 우려스럽다. 게다가 카카오의 핵심 의사결정을 김 센터장이 직접 챙긴다는 건 IT업계 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최근 금융 당국은 김 센터장이 지난 2월 SM엔터의 주식 시세를 조종한 혐의에 관련이 있다고 보고 그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카카오호의 구멍이 점점 더 커지는 모양새다.
다시 판교의 현장. 이날 집회에선 민중가요 대신 가수 김범수의 대중가요 ‘보고 싶다’ ‘나타나’ ‘제발’ 등이 흘러 나왔다. 동명이인인 김범수 센터장을 겨냥한 선곡이었다. 노조는 사과를 바란다지만, 주주들과 사회는 카카오의 성장을 더 바란다. 김 센터장의 답가는 언제쯤 들어볼 수 있을까.
윤상언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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